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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l 07. 2024

저 아래부터 진득하게 엉겨 붙는
수많은 진실

영화 <만천과해> 리뷰, 결말 해석 / 신작, 허광한 추리 영화

주요 내용

- 영화 <만천과해> 소개, 줄거리

- 영화의 장점과 아쉬운 점

- 비의 역할

- 권선징악 그 이상의 의미가 담긴 영화

만천과해 (瞒天过海, 2023)

저 아래부터 진득하게 엉겨 붙는 수많은 진실

개봉일 : 2024.07.03.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범죄, 스릴러

러닝타임 : 106분

감독 : 천줘

출연 : 허광한, 장균녕, 혜영홍, 윤정, 설옥춘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유명 사업가의 아내 조안나와 건축 디자이너가 밍하오 밀회를 즐기던 호텔에서 잔인한 밀실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와 미스터리한 밀실 살인이라는 키워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고 사람들은 살아남은 조안나를 두고 누명을 쓴 피해자인지, 잔인한 살인범인지 열띤 토론을 나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의견이 어떻든 상관없이, 사건 현장에 남은 단서들은 모두 조안나를 가리키고 있으며 죽은 밍하오의 양아버지는 조안나를 잡기 위해 경찰에 압력을 넣고 있다.


재판을 위한 증거 제출이 얼마 남지 않은 늦은 밤, 누군가 조안나의 으리으리한 저택으로 들어선다. 조안나의 저택으로 들어온 사람은 바로 형사 정웨이다. 그는 손에 들린 증거를 내밀며 자신이 이 판을 뒤집을 수 있다고 말한다. 증거 제출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조안나는 처음엔 정웨이를 경계하며 말을 아끼지만 시간이 주는 압박감에 눌려 꽁꽁 싸놓았던 사건의 전말을 조금씩 꺼내놓는다.

<만천과해>는 수많은 진실 속에 묻힌 단 하나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밀실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 뒤엔 여러 사람이 말하고, 추측하는 여러 개의 진실이 따라붙는다. '밀실에서 밍하오가 죽었고 그와 함께 있었던 건 조안나다.'라는 사실을 제외하곤 그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 정웨이는 현재의 상황을 한 번에 뒤집을 디테일한 사실을 찾기 위해 조안나를 설득한다. 카메라는 정웨이와 조안나의 주위를 빙빙 돌며 두 사람의 시선을 번갈아가며 담아낸다. 여러 겹으로 쌓아 올려진 이야기는 반전을 거듭하고 몇 번의 시선이 엇갈린 후, 새로운 진실이 나타난다.

<만천과해>는 2017년에 개봉한 <인비저블 게스트>를 중국판으로 리메이크한 영화다. 한국에선 2022년에 <인비저블 게스트>를 한국판으로 리메이크한 영화 <자백>이 개봉하기도 했다. 원작과 <자백> 모두 영민한 이야기 구성으로 좋은 평을 얻었는데, 같은 이야기를 베이스로 둔 <만천과해> 또한 일단 기본 재미는 보장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추리와 반전의 힘으로 나아가는 영화인만큼 앞서 <인비저블 게스트>와 <자백>을 보고 이 이야기 안에 든 반전을 미리 맛본 관객이라면 그때만큼의 감흥을 느끼긴 어려울듯하다.

영화는 초장부터 밀실 살인사건을 제시하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호기심에 이끌려 스크린 속 세상에 발을 디디면 그 안에 기다리고 있던 여러 진실들이 한꺼번에 엉겨 붙으며 발목을 붙잡는다. 조안나와 정웨이가 주장하는 여러 진실들은 한껏 무겁게 또는 한껏 질척거리며 시선을 빼앗는다. 두 개의 시선이 엇갈리며 배배 꼬여가는 이야기는 흥미와 피로를 동시에 야기한다. 거기에 과도한 연출이 이어지다 보니 피로감을 해소할 틈이 없다. 분명 계속 듣고 싶고, 결말을 알고 싶은 이야기이긴 한데 연속으로 듣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주연인 허광한 배우의 연기가 그나마 극의 중심을 잡아주긴 하지만 영화가 전체적으로 정해진 이야기를 탄탄하게 이어간다는 느낌보단 이야기의 무게감, 힘이 빡 들어간 연출의 무게감에 휘청거리는듯한 느낌이 들어 아쉽다.


여러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는 방식, 한 사건을 여러 번 재해석하는 방식의 추리물을 좋아하거나 원작을 접하지 않았다면 추천하겠지만 앞에 언급한 영화를 모두 본 관객이라면 지루하거나 피로하게 느껴질 수 있을 듯해 추천하긴 어렵겠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진실을 씻어내리는 비


극 중에선 총 두 번의 사건이 일어난다. 밍하오와 조안나가 뤼핑을 살해하고 유기한 것, 호텔에서 밍하오가 죽은 것.

뤼핑이 살해당하던 날엔 비가 왔다. 그 덕에 별다른 증거가 남지 않아 조안나는 그 사건을 쉽게 은폐한다. 이후 호텔에서 조안나가 밍하오를 죽이던 날. 그땐 비가 오지 않았고 실내에서 일어난 일이었기에 여러 가지 증거가 남고 만다. 궁지에 몰린 조안나는 다시 폭우가 쏟아지던 날, 정웨이와 변호사를 통해 또 한 번 앞선 사건의 증거를 없애려 시도한다.


조안나는 지금껏 자신이 설계해둔 계획에 따라 인생을 살아왔고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고 조안나는 새로운 설계를 시작한다. 그녀는 자신의 설계가 옳은 것인지 옳지 않은 것인지 따지는 도덕적인 관점 따위는 애저녁에 버린 상태다. 이미 가짜 사랑을 통해 사밧 그룹의 며느리가 되어 그 돈을 노리고 있는 인물이니 말이다.

밍하오가 죽기 전까진 '부자의 돈을 횡령해 밍하오와 과수원에 집 짓고 살기'가 조안나의 인생 설계였다면 밍하오가 죽은 후 그녀가 세운 설계는 '이 형사가 흘리는 증거들을 이용해 사건에서 빠져나가기'다. 조안나는 정웨이에게 진실을 말하는 척, 댓가를 지불하는 척하며 심리적 거리를 좁힌다. 그리고 정웨이가 제시하는 계획들을 옆으로 빼돌려 스스로 증거를 은폐하려 하지만 정웨이는 이미 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조안나는 역으로 정웨이에게 증거(경찰이 미리 접촉한 뤼핑 사건 목격자를 처리하려고 함, 형사에게 뇌물 혐의)를 제공하는 모양새가 된다.


비 내리는 날엔 비밀을 만들기 좋다. 빗소리가 세상을 뒤덮으니 얘기를 해도 밖으로 세어 나가지 않고 땅에 찍혀있던 발자국도 어딘가 흘린 물건도 쉽게 사라지거나 묻혀버린다. 뤼핑 사건 당시 조안나는 비 덕분에 안전하게 혼자만의 비밀 이야기를 만들었고 또다시 비가 오는 날 정웨이를 만나 새로운 비밀을 만들어 사건을 뒤집으려 시도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실내에서 대화를 나눴고 그들의 대화는 비밀이 아닌 공공연한 진실이 되어 사건을 파헤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낮은 곳에서 자라난 두 개의 뿌리
권선징악 그 이상의 의미를 담은 영화


<만천과해>는 표면적으로 볼 땐 그저 권선징악을 행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부잣집 며느리인 조안나가 살인을 저질렀고 결국 그것이 밝혀져 벌을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조금 더 유심히 살펴보면 권선징악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조안나는 현재 부잣집 며느리지만 그녀는 밍하오와 함께 고아원에서 자랐다. 타고난 부잣집 딸이 아니란 말이다. (잔인한 말이지만 사회적 계급으로 따지자면) 조안나는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태어날 때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고 높이 올라가기 위해 계획적으로 사밧 그룹의 아들(현재 남편)에게 접근한다.

조안나는 사밧 그룹 아들과 결혼하면서 돈과 명예를 얻는다. 이미 많은 것을 얻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고 또 욕심을 부린다. 조안나는 이 돈을 빼돌려 과수원에 집을 짓고 밍하오와 함께 살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돈과 명예, 그리고 진정한 사랑까지 가지려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 거다.


조안나의 욕심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진 알 수 없지만 현재 조안나는 이미 욕심에 눈이 멀어있는 상태다. 그녀는 뤼핑을 죽이고 그를 횡령범으로 몰고 간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조안나에게 뤼핑은 사회적으로 저기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목숨을 빼앗은 대가로 뤼핑이 운영하는 학교에 더 많은 돈을 기부하면 그게 더 좋은 일이 아니냐고 뻔뻔하게 말한다. 엄마와 밍하오의 죽음 또한 자신의 성공의 발판이 됐다면 의미가 있는 거라며 합리화한다.

뤼핑, 뤼칭, 홍제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태다. 아들 뤼칭이 병을 앓은 이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고 뤼핑은 가족들을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하루 종일 과수원을 가꾼다. 이들 또한 어릴 적 조안나처럼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뤼핑 가족은 조안나처럼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조안나가 가짜 봉사활동을 할 때 뤼핑은 여러 선행을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신임을 쌓고 가족을 챙기며 성실히 살아왔다. 그 결과 뤼핑이 실종되고 횡령 혐의를 받을 때도 뤼칭, 홍제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무죄를 주장하며 경찰서 앞을 지키는 그림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뤼핑 실종 한 달 후 파티가 열렸을 때 홍제는 요트 회사 직원으로 둔갑해 조안나를 만나려고 한다. 위층에 있던 조안나는 한참 동안 긴 계단을 내려와 아래층에 있는 홍제를 만난다. 조안나는 죄책감이라곤 하나도 없는 얼굴로 범행을 부인하고 홍제는 파티장에서 쫓겨난다. 뤼핑 가족과 조안나 모두 나름의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왔으나 현재 두 가족의 사회적 위치는 하늘과 땅 차이다.

조안나는 뤼핑 가족과 다르게 양심을 버리고 이득만을 취하며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여기까지만 보면 뤼핑 가족보다 훨씬 성공한 인생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조안나가 선을 넘은 흉포한 욕심을 부린 결과,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인생은 이상하게 휘어버리다 못해 부러진 채로  홀로 저 밑으로 추락하게 된다. 반면에 "힘은 네 내면에 있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그 문제와 싸워."라는 아버지 뤼핑의 가르침을 뿌리로 두고 자란 아들 뤼칭은 낮은 곳에서도 굳건하게 자라 결국 진실을 밝혀내고 아버지를 찾아낸다.

높은 곳을 바라보고 그곳을 향해 올라가려 시도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 낮은 곳에 있는 누군가의 등을 밟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가 당연히 등을 내어줘야 한다 생각하는 건 오만하고 뻔뻔한 일이다. 등을 내어준 이가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많은 게 뒤집히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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