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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l 16. 2024

우울의 심연에서 길어올린
아름다운 종말

영화 <멜랑콜리아> 리뷰, 결말 해석 /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주요 내용

- 영화 <멜랑콜리아> 소개, 줄거리

- 2개의 챕터

- 3개의 달이 의미하는 것

- 안타레스와 멜랑콜리아

멜랑콜리아 (Melancholia, 2012)

우울의 심연에서 길어올린 아름다운 종말

개봉일 : 2012.05.17.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SF, 미스터리, 판타지

러닝타임 : 136분

감독 : 라스 폰 트리에

출연 : 커스틴 던스트, 샤를로트 갱스부르,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키퍼 서덜랜드, 브래디 코베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대략 3년 전, <안티크라이스트>를 통해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를 처음으로 접했다. 그래서 두 번 다시는 그의 영화를 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1회 감상 이후 아예 마음을 접었기에 그 영화 안에 담긴 것이 어떤 것인진 여전히 잘 모르지만 아무튼, 무엇이 담겨있든 간에 영화 자체를 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정신으로 다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를 선택하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반은 여전히 남아있는 감독에 대한 궁금증, 반은 도전정신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멜랑콜리아>는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영화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약간은 공포스럽고 철저하게 우울하긴 했지만 의외로 아름답고 감성적인 영화였다. 살면서 우울감을 크게 느껴본 적 없는 이라면 이 영화가 조금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우울에 깊이 빠져본 이라면 이 영화에 담긴 불안과 우울을 아주 긴밀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 저스틴과 클레어. 두 자매가 살고 있는 각자의 세계에 추상적인 공포와 실체적인 공포를 던져놓고 그들을 아주 가까이서 관찰한다. 18홀 골프장까지 있는, 방이 몇 개인지도 모를 대저택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영화는 배경에 크게 집중하지 않는다. 초지일관 흔들리며 인물의 앞에 딱 붙어 있을 뿐이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호화로운 대저택, 광활한 골프장 같은 배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배경 연출 자체는 상당히 아름답다.) 웬만해선 가까이 붙어 떨어지지 않는 카메라는 자연스레 답답함과 불안감을 끌어올리고, 대저택이라는 공통된 하나의 세계가 아닌 각 인물의 표정, 심리를 통해 추측할 수 있는 ‘인물의 눈에 비치는 그 세계’ 안에 온전히 빠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2개의 챕터


챕터 1을 채우고 있는 저스틴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건 우울감이다. 나를 사랑하는 남편과 호화로운 예식,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 능력을 인정해 주는 직장 상사까지. 저스틴은 많은 걸 가졌다. 하지만 저스틴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남편 마이클은 과수원 이야기를 하며 행복한 미래를 그리지만 저스틴은 “그때가 오면 얘기하자”라며 말을 피한다. 우울감으로 가득 찬 그녀는 그저 오늘을 혐오하고 내일을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다.

예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앞으로 행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스틴은 그들의 기대와 격려가 버겁다. 그녀는 이 부담감과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해 보통의 신부라면 하지 않을 기행(식 중에 샤워하기, 골프장에서 소변보기, 신입 직원과 관계 맺기 등)을 행하지만 주변인들은 그녀를 걱정하기보단 그저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챕터 2를 채우고 있는 클레어의 세계의 중심이 되는 건 종말, 죽음에 대한 공포다. 클레어는 권위 있는 천문학자인 남편 존을 통해 ‘멜랑콜리아’라는 행성이 지구와 근접해 지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된다. 존은 그냥 가깝게 지나가는 것뿐이라며 클레어를 안심시키지만 그녀는 죽음과 멜랑콜리아를 강박적으로 검색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간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각자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
3개의 달이 의미하는 것


챕터 1에서 저스틴이 우울감에 빠져있을 때, 저스틴의 주변인들은 그녀의 우울을 보듬어주지 않는다. 어머니는 결혼 제도에 대해 욕하기 바쁘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랑 놀아나기 바쁘고 언니 클레어와 형부 존은 예식 비용에 대해 생색내기 바쁘고 신랑 마이클은 저스틴의 몸을 더듬기 바쁘다. 거기에 식장까지 따라온 고용주 잭은 빨리 광고 카피를 뽑아내라며 저스틴을 압박한다. 극 중엔 저스틴처럼 오늘과 내일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두 각자의 방법으로 오늘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챕터 1에서 삶과 죽음에 관련한 공포를 갖고 있는 인물은 저스틴이 유일하다.  챕터 2가 되어 모두가 볼 수 있는 실체적 위협 행성 '멜랑콜리아’가 지구 근처에 도달한다. 그러면서 저스틴을 제외한 모두가 공평하게 공포를 느끼고 불행해진다. 재밌는 건, 챕터 1에선 불안감에 떨던 저스틴이 멜랑콜리아가 도달하는 챕터 2에선 누구보다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는 거다.

저스틴과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불행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때론 무심하고 때론 연약하게 반응한다. 애초에 다른 세계에 살아가고 있던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프닝 시퀀스를 보면 저택 위에 3개의 달(또는 행성?)이 떠있는 장면이 있다. 좌측부터 순서대로 푸른 반달, 노란 반달, 노란 보름달. 그 아랜 저스틴, 레오, 클레어가 서있다.

멜랑콜리아와 같은 파란색을 띤 반달 아래 서있는 저스틴의 세계엔 절망이 가득하다. 그녀는 삶의 종말(죽음)을 원하고 있고 푸른 달빛 아래 알몸으로 누워 시간을 보낸다.

저스틴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클레어는 저스틴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더 살고 싶고 죽고 싶지 않다. 종말이 닥쳐온 그날, 클레어는 푸른 멜랑콜리아가 아닌 보통의 노란 달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푸른 반달과 노란 보름달의 특징을 반반 섞은 노란 반달 아래 서있는 레오는 딱 저스틴과 클레어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레오는 클레어처럼 큰 우울감을 느끼지 않는 인물이면서 동시에 저스틴을 이해하고 그녀에게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물건(단검)을 선물해 주기도 한다.

안타레스와 멜랑콜리아


챕터 1. 저스틴이 갓 식장에 도착한 장면에서 저스틴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별의 이름을 묻는다. 그녀가 본 별은 전갈자리 알파라고도 불리는 안타레스 행성이었다. 챕터 2에서도 안타레스 행성이 언급된다. 클레어는 멜랑콜리아를 얘기하며 ‘태양 뒤에서 안타레스를 가리고 있는 그 행성이 무섭다’고 한다.

저스틴은 저 멀리 있는 안타레스를, 클레어는 안타레스를 가리고 있는 지구와 조금 더 가까이에 있는 멜랑콜리아를 본다. 이는 두 사람이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하다. 클레어는 가까이에 있는 내일을 보고 저스틴은 내일 뒤에 숨어있는 삶의 반대편, 죽음을 바라보며 산다.


각각 다른 것을 바라보며 살아온 저스틴과 클레어는 멜랑콜리아의 지구 도달을 앞두고 한자리에 모인다. 저스틴은 패닉에 빠진 클레어와 레오를 위해 나뭇가지를 모아 함께 앉을 작은 동굴을 만든다. 예전부터 삶 너머의 죽음을 바라보던 저스틴은 누구보다 의연한 태도로 눈을 감은 채 달콤한 죽음을 맞이하고 레오는 저스틴을 믿고 그녀의 손을 잡은 채 눈을 감는다. 클레어는 눈을 뜬 채 멜랑콜리아를 바라보다 저스틴의 손을 놓고 머리를 감싼다. 모두가 같은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 상황 속에서도 저스틴과 클레어는 두려운 삶의 종말과 행복한 고통의 종말이라는 다른 의미의 종말 맞이한다.

가슴이 뻐근하고 무력해지는 경험이었다. 인간이란 비슷한 공포를 눈앞에 두고도 기어이 서로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걸까.


우울이라는 흉포한 것을 잡아다 고고하고 아름답게 가꿔놓은 누군가의 정원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다. 그 안에서 분명 아름다운 것을 목격하긴 했지만 그것을 자주 마주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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