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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l 20. 2024

비밀을 덮은 솜털 같은 거짓말

영화 <비밀의 언덕> 리뷰, 후기, 해석 / 한국 독립 영화 성장 영화

주요 내용

- 영화 <비밀의 언덕> 소개, 줄거리

- 금색, 핑크색 리본의 의미

- 명은의 글과 혜진의 글의 차이

- 명은이 글을 쓰며 알게된 것

비밀의 언덕 (The Hill of Secrets, 2023)

비밀을 덮은 솜털 같은 거짓말

개봉일 : 2023.07.12.

관람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드라마, 성장

러닝타임 : 122분

감독 : 이지은

출연 : 문승아, 임선우, 장선, 강길우, 장재희, 곽진무, 이동찬, 최현진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나에게 <비밀의 언덕>은 작은 언덕에 파묻고 싶은 나의 어린 시절을 파낸 것 같은 영화, 서툰 진심이 그대로 다가오는 영화였다.

요즘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땐 (이 영화처럼) 새 학기가 되면 가정환경 설문지라는 걸 나눠줬다. 설문지엔 가족 구성원의 나이, 연락처, 직업 등을 써냈어야 했는데 나는 그 설문지를 쓰는 게 조금 어려웠다.

지금은 다양한 직업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아이들의 장래희망 리스트도 정말 다양해졌지만, 예전엔 장래희망으로 선생님, 회사원, 과학자 같은 화이트칼라 직업들이 주를 이루곤 했다. 나도 그땐 화이트칼라 직업이 가장 멋진 직업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자영업, 서비스업을 했다. 정장이 아닌 편한 옷차림으로 집을 나서는 엄마 아빠. 멋지고 날씬한 차가 아닌 트럭 조수석에 나를 태워 학교에 데려다주던 아빠. 막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땐 이게 참 이상하게 부끄럽고, 어려웠다.

영화의 주인공인 명은이는 그때의 나와 비슷한 아이였다. 혼자만의 비밀과 부끄러움을 만들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작은 구덩이를 파고 또 파는 아이.

투명한 명은의 얼굴에 사랑에 대한 열망, 경쟁심, 부끄러움이 떠오른다. 이 복잡하지만 순수한 명은이의 말과 행동을 통해 깊이 묻어둔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한번 들여다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비밀의 언덕>이라는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힘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아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순수함과 진솔함이 아닐까 싶다.

금색보다는 핑크색
1등이 되길, 사랑받길 바라는 명은


영화는 문구점에서 여러 잡화들을 손으로 어루만지는 명은이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마침내 컵 하나를 집어 든 명은은 사장님에게 야무지게 선물 포장까지 부탁한다. 금, 은, 동. 1등을 뜻하는 금색이 당연히 세상에서 최고 좋은 색이라 생각하는 명은은 무릇 여아라면 좋아할 만한 핑크색 리본 대신 금색 리본을 골라 포장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며 다시 보니 왠지 핑크색 리본이 더 좋을 것 같아 다시 문구점으로 달려가 핑크색 리본으로 바꾼다.


"그냥, 선생님은 핑크색을 더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명은이는 선생님이 1등을 뜻하는 금색보다 다른 색을 좋아하길, 1등 학생이 아닌 자신에게도 사랑을 나눠주길 바란다. 그런데 명은이는 딱히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것도 아니고, 특출난 끼를 뽐내는 아이도 아니다.

명은의 반엔 소위 말하는 엄친아 같은 친구 경수가 있다. 경수는 공부도 잘하고 학급 반장을 도맡아온 학생이며 명은이가 그토록 바라는 직장인 아빠와 우아하고 책도 잔뜩 읽는 지적인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다.

명은은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인정받는 경수를 질투하고 부러워한다. 그래서 경수가 가진 것들을 조금씩 따라 해 보려고 한다. 아빠는 출판사 직원, 엄마는 가정주부라는 경수의 면담 내용을 들은 명은은 아빠는 종이 만드는 회사에 다니며 엄마는 아주 평범한 가정주부라는 첫 번째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경수의 자리로 인식되었던 반장 자리를 얻어내고 혼자 비밀 편지 통을 채워가는 두 번째 거짓말을 한다.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거짓말을 하며 일단 선생님의 관심을 얻어내는 덴 성공했으나 명은에겐 지금 상황이 버겁기만 하다. 가족들은 여전히 명은을 불안하게 하고 반장 아래 직급인 회장이 된 경수는 과학 경시대회를 이유로 선생님과 꼭 붙어 나는 모르는 대화를 나누고 동급생들에게 호감을 살만한 햄버거 간식을 돌린다. 경수를 끊임없이 견제해도 경수는 여전히 명은이가 부러워한 그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경수의 아빠는 책을 만들고 거짓말로 지어낸 명은의 아빠는 책을 만드는 재료인 종이를 만든다. 경수는 간식으로 햄버거를 돌리고 명은은 바나나를 돌린다. 경수와 명은 사이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느낌이다. 명은도 그걸 어렴풋이 느낀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오래가지 못한 거짓말로 이뤄낸 성취
거짓말로 지어낸 명은의 글과 솔직하게 쓴 혜진의 글


명은에겐 숨기고 싶은 비밀이자 콤플렉스가 있다. 성격, 성적 같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닌 ‘콩가루 가족’이라는 여러 가족 구성원들이 얽힌 넓은 영역의 비밀이다. 명은의 가족은 엄마, 아빠, 1살 차이 오빠 민규, 명은으로 구성된 4인 가족이다. 폭력이나 불화 같은 큰 문제는 없지만 명은이 생각하는 우리 가족은 정상적이지 않고 부끄러운 존재다.


엄마는 교양 없이 소리를 빽빽 지르고 헝클어진 모습으로 시장을 누빈다. 아빠는 악착같이 돈을 버는 엄마에게 빌붙어 살아가고 오빠는 효자인 척하면서 뒤에선 가족을 욕한다. 명은은 이런 가족이 부끄럽다. 그래서 명은은 가족을 숨기고 싶어 하고, 자신과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란 경수와 그의 가족을 부러워하고 닮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명은이 경수를 따라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지쳐가던 명은에게 글짓기 대회라는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경수는 과학 경시대회를 준비하고 있으니 글짓기는 경수를 이기지 않아도 충분히 상을 받을 수 있는 종목이다. 명은은 열심히 글을 써 상을 받고 가족들과 선생님에게 칭찬도 받는다. 기세를 탄 명은은 경수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가족에 대한 거짓말을 술술 늘어놓는다.

명은이는 몇 번의 거짓말과 노력을 통해 자신이 원하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학급을 위해 노력하는 반장, 멋진 가족을 가진 친구, 선생님께 상도 받는 친구. 그런데 이 행복도 그렇게 오래 가진 못한다.

명은이 글짓기에 재미를 붙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학생 혜진이 등장한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아빠는 없고, 엄마는 아가씨 골목에서 일한다고 말하는 전학생 혜진. 혜진은 명은보다 더 복잡하고, 부끄럽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러울만한 가정환경을 시원하게 오픈해버린다.

혜진은 명은과 다르게 신기할 만큼 솔직한 아이다. 혜진과 이복자매 하얀은 자신의 솔직한 마음과 흥미진진한 경험들을 원고지에 적었고 단시간에 가뿐히 명은을 넘어서는 멋진 글을 완성해 상을 받는다.

솔직하게 글을 쓰며 명은이 깨달은 것
가족, 글짓기 상의 의미와 명은이 가진 능력
결말 엔딩 해석


명은은 혜진의 비법을 따라 솔직하게 글을 써본다. 그 결과 엄마, 아빠, 오빠의 미운 점. 엄마와 할아버지의 갈등, 막내 삼촌에 대한 이야기 등. 솔직하지만 안 좋은 말들로 가득한 글이 완성되고, 그 글은 혜진보다 더 높은 대상 수상이라는 성적을 낸다.

하지만 대상을 받으려면 글을 공개해야 하기에 명은은 고민 끝에 진심이 담긴 원고지를 언덕에 묻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진심이 담기지 않은 다른 출품작을 통해 입선 상장 한 장을 받는다. 큰 상을 받은 아이들은 무대 중심, 앞쪽에 자리 잡고 명은은 팔락이는 상장 한 장을 들고 앞쪽에 자리 잡은 아이들의 그림자 뒤에 선다. 그런데 명은의 얼굴엔 편안한 웃음이 번진다.

명은은 이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가족이 어떤 존재인지, 자신이 얼마큼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존재인지 조금 더 알아간다. 명은은 솔직하게 글을 쓰기 전까진 자신이 가족들을 미워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글이 신문에 공개될 것을 생각하니 대상이라는 감투보다 가족들이 받을 상처가 더 먼저 떠오른다.

명은은 지금껏 주목받는 학생이 되고 싶어서 온갖 노력을 해왔지만 가족들을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 커다란 성취를 포기한다. 이러한 이유로 대상을 포기하겠다는 명은을 본 선생님은 명은이가 가족들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며 명은의 뜻을 존중한다. 명은에게 가족은 한심하고 지겹고 부끄럽지만 어쨌든 상처받지 않도록 지켜주고 싶은 존재다.

그리고 명은은 자신이 누군가를 모방하거나 거짓말하지 않아도 글짓기 대상이라는 큰 성취를 해낼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된다. 명은이가 앞서 거짓말로 글을 썼을 땐 입상, 최우수상에 그쳤지만 마지막에 진심을 담아 쓴 글은 최고 상인 대상에 선정된다. 그저 이명은의 이야기를 이명은답게 솔직하게 썼을 뿐인데 말이다.


새 학기를 맞이한 명은은 이번엔 가족이 아닌 나에 대해 써보라는 설문지를 받는다. 거짓말이라는 무거운 짐을 모두 털어낸 명은의 손이 가볍게 설문지 위를 누빈다. 그 설문지는 이명은의 부끄러운 비밀과 거짓말이 아닌 이명은의 장점과 이명은에 대한 여러 이야기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명은이의 거짓말과 성장을 보며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많이 떠올랐다. 나는 글짓기 대상이나 반장 같은 커다란 성취, 변화를 겪으며 성장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때의 나도 명은이도 성장하느라 여러모로 참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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