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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l 23. 2024

납작하고 안일한 각본, 맥없이 붕괴되는 긴장감

영화 <탈출:사일런스 프로젝트> 리뷰, 후기 / 한국 재난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PROJECT SILENCE, 2024)

납작하고 안일한 각본, 맥없이 붕괴되는 긴장감

개봉일 : 2024.07.12.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스릴러

러닝타임 : 96분

감독 : 김태곤

출연 : 이선균, 주지훈, 김희원, 문성근, 예수정, 김태우, 박희본, 박주현, 김수안

개인적인 평점 : 3 / 5

쿠키 영상 : 없음

극장 여름 성수기의 정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8월. 작년(2023년) 8월엔 꽤 다양한 한국 영화들이 스크린에 걸렸다. 그중에 오래 기억에 남은 영화가 두 편 있는데 하나는 <더 문>, 하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이 두 영화는 지상, 우주에서 일어나는 재해 속에서 살아남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생존 영화라는 공통점과 딱 내가 생각하는 한국영화다운 영화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 영화다웠다’는 말은 두 영화의 공통점이기도 하고 차이점이기도 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국다운 주거 공간과 (CG가 대부분이라해도) 가장 한국스러운 풍경들을 담아낸 한국영화다운 영화였다. <더 문>은 아쉽게도 내가 생각하는 좋지 않은 한국 영화, 딱 10-15년 전쯤에 통했던 흥행 공식을 따라 달리려는 납작하고 공감하고 싶지 않은 한국 영화였다.

그래서 <더 문>과 같은 제작사, <더 문>의 감독인 김용화 감독이 각본에 참여했다는 사실 때문에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에 대해 큰 기대를 품진 않았다. … 그러길 잘했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안개가 짙게 낀 공항대교를 배경으로 한 재난 블록버스터다. 기상악화로 인해 수십 대의 차가 연속으로 충돌하고 대교 위 사람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된다. 이들이 상황을 파악하려 하나 둘 차 밖으로 나올 때쯤, 커다란 군사 차량에 묶여있던 비밀스러운 존재들이 풀려나고 공항대교는 비명으로 가득 찬다.


주인공 정원은 딸과 함께 공항으로 향하다 이 재난에 휘말린다. 그는 리더십을 발휘해 생존자들을 모으고 ‘국가 안보실 행정관’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상황을 판단하고 벗어나 보려 하지만 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와중에 정원은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되고 윤리적 가치와 직업정신 사이에서 갈등한다.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시작은 좋았다. 상영 후 아쉽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어찌 됐든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초청작에 이름을 올렸고 이선균 배우의 새로운 생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팬들의 관심도도 상당히 높았다.

실제로 영화의 시작도 좋은 편이었다. 짙은 안개가 주는 미스터리함과 불안감으로 분위기를 제대로 찍어누르고 기깔나는 차량 사고 연출로 기대감을 올린다. 초반 몰입도는 좋다. 그런데 군사 차량 안에 있던 존재들이 풀려나고 등장인물들이 하나둘씩 늘어가며 슬슬 복장이 터지기 시작한다. 공항 대교의 일부가 뻥뻥 터져나갔던 것처럼 내 속도 뻥뻥 터진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가장 큰 문제는 기술, 배우, 연출 스타일, 마케팅, 대진 운 같은 것이 아닌 영화의 중심인 각본 그 자체다. 이 이야기는 너무 납작하다. 인물의 앞뒤가 전부 잘려있으니 행동과 변화에 공감하기 어렵고 왜 이 인물이 이런 성격, 이런 직업을 가졌는지 생각해 볼 부분도 없다. 그냥 마지막 탈출 작전을 최대한 멋지고 독특하게 짠 후에 이 작전에 이런 능력치, 이런 눈물벨이 필요할 것처럼 보이니 인물들을 이렇게 설정하자!하고 스케치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영화는 약자의 민폐, 무능한 권력자(어이없게 희생되는 수색팀, 국가 안보실)를 통해 위기감을 만들고 어린아이, 노인의 연약함을 통해 불안감을 만든다. 그리고 가벼운 캐릭터의 알맹이 없는 희생으로 눈물과 감동을 만들려 한다. 난 아직 그를 모르고 공감할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의 희생에 감동하라고 하니 당황스러울 뿐이다.

주인공 정원은 국가 안보실 행정관이다. 정원은 차기 대통령감 정현백을 보좌하는 일을 주로 맡고 있으며 감정과 양심보단 일의 결과만을 중시하는 차가운 사람이다. 정원을 약하게 만드는 건 그의 딸 경민, 먼저 떠난 아내와 그녀의 마지막 책뿐이다. 딸을 지키고 싶었던 정원은 갈등을 반복하다 마지막엔 행정관 차정원이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아빠 차정원다운 행동을 하게 된다.


차정원은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인물이다. 원래의 그가 추구했던 것과 대교 위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분이 극 중에서 큰 부족함 없이 표현됐고, 붕괴된 대교 끝에 걸쳐있는 순간에도 딸을 살리기 위해 구조물을 필사적으로 붙잡던 정원의 모습과 새끼를 쫓아 바다로 뛰어드는 E9의 모습이 함께 담긴 부모의 사랑이 느껴지는 좋은 장면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그 외의 인물들은 어떤 사연과 마음을 갖고 이 대교에 있는지, 이 이야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희생하기, 복장 터지게 하기, 하지 말랬잖아!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들기 담당. 또는 마지막 작전을 위한 도구, 분위기를 재밌게 업 시켜주는 도구. 그 이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만 든다.

재밌는 영화든 재밌지 않은 영화든 상관없이 영화엔 수많은 사람들의 열정과 시간이 담겨있다는 것, 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개봉하는 게 기적에 가까운 일이란 것 또한 알고 있다. 각본 제작도 굉장히 어렵고 엄청난 일이란 것도 안다. 하지만 아쉬웠다는 이야기는 꼭 하고 싶다.


극 중에서 조박은 이렇게 말한다.

“개가 미치면 견주 잘못이지.”

개가 미친 건 그 개를 키운 견주의 탓인 것처럼 개인적으로 영화가 재미없으면 그건 높은 확률로 이 영화의 시작점인 각본 탓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안에 있는 배우들과 기술자들에게 안 좋은 말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각본에 있어선 이런 ‘뻔하고 별로인 한국 영화’의 이미지를 고착화 시키는 각본은 자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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