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리뷰,해석 / 여름 영화
주요 내용
- 영화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소개, 줄거리
- 어른 몰래, 처음. 짜릿하고 떨리는 비밀 여정
- 히사다와 타케모토의 관계, 감정을 보여주는 연출
- 순수한 아이들과 좋은 어른들
- 통조림, 돌고래 이야기의 의미
개봉일 : 2023.07.05.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성장, 청춘
러닝타임 : 96분
감독 : 카나자와 토모키
출연 : 반카 이치로, 하라다 코노스케, 쿠사나기 츠요시, 오노 마치코, 타케하라 피스톨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막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 이제 공부해야 돼. 그런데 놀기도 해야 돼. 어릴 때 기억은 평생가."
그땐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14살 때 친구랑 놀았던 기억이랑 24살 때의 기억이랑 뭐가 다르다고. 오히려 어릴 때 기억이면 나중에 더 빨리 잊히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보니 그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
세상에 태어난 지 2,000, 3,000일 됐을 때쯤의 하루와 대략 10,000일이 됐을 때쯤의 하루는 다르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남아있고, 조금이라도 더 순수할 때. 그때 겪는 하루는 어른이 되었을 때의 하루와 확실히 다르고 기억의 선명도, 채도도 다르다. 어른이 되어도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추억을 쌓을 수 있지만 어린이의 하루와 그때 만들어지는 추억은 더 특별하고 명료하다.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은 불혹을 넘긴 주인공 히사다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그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히트작도 없고, 출판사로부터 대필 작업만 요청받고 있는 상황이다. 어른이 되어 이룬 가정은 어떠한 이유로 깨져있는 모양이고 그의 노트북 화면은 수려한 글이 아닌 커서 하나만 깜빡이고 있다.
무엇 하나 풀리는 게 없는 여름. 히사다는 주방에 있는 고등어 통조림을 보다가 자연스레 떠오른 1986년 여름의 추억을 써 내려가기로 한다. 시간이 지나도 같은 맛과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그 고등어 통조림처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여름의 모험기에 대해서. 에세이 대필은 작가로서 하고 싶지 않고 출판사 담당자는 히사다의 소설은 인기가 없을 거라고 했으니 이번엔 대필도 소설도 아닌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써볼 차례다.
1986년. 초등학교 5학년 히사다는 글짓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그는 엉망이 된 자전거를 고쳐준 아빠와 아침마다 유쾌한 전쟁이 벌어지는 집안에 대해 쓴 글을 발표하고 있다. 아이들은 히사다의 발표를 조용히 들어주고 선생님은 그의 글에 큰 박수를 보낸다.
히사다는 눈에 띄게 뛰어난 학생까진 아니지만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적당한 호감을 받고 자연스레 그들 사이에 어울려 노는 평범한 장난꾸러기 소년이었다.
어느 날, 히사다의 눈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책상에 물고기 그림을 그리고 있는 타케모토의 모습이 들어온다. 집안 사정이 어려운 것인지 타케모토는 학급 친구들 모두가 다 아는 러닝 두벌을 번갈아 입으며 한 해를 나고, 지우개 대신 침으로 그림을 수정하며 자신의 책상을 채워간다. 아이들은 타케모토의 가난을 눈치채고 그를 놀리지만 타케모토는 그림을 그릴 때를 제외하곤 아이들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히사다는 당당한 타케모토가 멋있다고 생각한다. 이후 타케모토의 집이 반강제로 공개당하고 히사다가 서점 앞에서 100엔을 줍는 해프닝이 연달아 벌어진다. 그리고 두 사건이 지나간 후 타케모토가 히사다의 집 앞에 찾아오며 연결점이라곤 '서로의 약점을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두 친구의 모험이 시작된다.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은 예쁜 영화다. 한껏 멋진 체하거나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예쁘다. 극적이지도 않고 심오하지도 않지만 짧은 모험 안에 옹골차게 차있는 아이들의 웃음과 우정만으로도 충분히 예쁘다. 더불어 서툰 아이들에게 천천히 발걸음을 맞춰주는 좋은 어른들의 모습은 이야기에 작은 감동을 더해준다. 히사다와 타케모토의 모험기엔 그들의 우정뿐만이 아니라 어린 시절엔 어떤 경험을 해보는 게 좋은지, 어른들은 아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올바른 예시가 들어있다.
순수한 설렘이 가득한 첫 번째 비밀 여정
히사다와 타케모토는 대화 한번 제대로 나눠본 적 없는 사이다. 두 사람이 하교 후 만났던 건 아이들이 타케모토를 몰고 가 그의 집이 반강제로 공개되던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집이 공개된 후 아이들의 괴롭힘은 더욱 심해졌고 히사다는 껄끄러움을 느끼며 타케모토에게 거리감을 두고 지낸다. 시간이 지나 찾아온 여름방학. 히사다의 집에 예상치 못했던 손님 타케모토가 찾아온다.
타케모토는 길을 지나가다 양아치들의 대화를 통해 들었다는 저 산 너머 해안에 나타난 돌고래 소식을 전한다. 히사다는 돌고래를 보고 싶지만 멀리 다녀오는 건 엄마가 허락하지 않을 거라며 타케모토의 제안을 거절하려고 한다. 타케모토는 히사다가 망설일 거란 걸 예상이라도 한 듯이 곧바로 자신이 목격한 히사다의 약점을 들이민다. 서점 앞에서 주워 꿀꺽한 100엔. 천체 망원경을 위해 그 100엔을 저금통에 넣은 히사다는 혹시 타케모토가 경찰서에 그 행위를 신고할까 두려워 타케모토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뭐든 처음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여정은 히사다와 타케모토에게 여러모로 처음인 경험이다. 히사다는 처음 엄마 몰래 친구와 떠나는 모험, 처음 보게 될 돌고래를 떠올리며 설렘을 느낀다. 타케모토는 히사다가 첫 친구나 다름없기에 히사다를 통해 '친구와 함께한 추억' 자체를 처음으로 만들게 된다. 어른 몰래, 처음. 상상만 해도 짜릿하고 떨리는 단어다.
서로의 약점을 알고 있는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사이로
히사다와 타케모토의 관계, 감정을 보여주는 연출
히사다는 돌고래에 대한 기대와 100엔에 대한 걱정 때문에 타케모토의 제안을 수락했지만 타케모토가 왜 자신에게 모험을 제안했는지 알지 못한다. 아무튼 즐겁게 하루를 즐기고 나니 히사다는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나를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고 비슷한 점도 없는데 왜 나를 골랐을까. 부메랑 섬을 찍고 돌아온 후 히사다는 타케모토에게 왜 함께 돌고래를 보러 갈 사람으로 자신을 골랐는지 물어본다.
타케모토는 '모두가 우리 집을 보고 웃을 때 너는 웃지 않았기 때문에' 히사다를 골랐다고 답한다. 타케모토의 답을 듣고 히사다는 타케모토의 마음을 알게 된다. 타케모토에게 중요한 건 돌고래도 자전거도 아닌 나를 이해해 줄 만한 친구였음을.
이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 카메라는 히사다, 타케모토의 모습을 멀리서 3인칭 시점으로 담거나 히사다의 눈에 보이는 타케모토의 모습을 주로 담는다. 중후반부까지는 타케모토가 바라보는 히사다의 모습이나 타케모토의 심리를 알만한 화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타케모토가 무슨 생각을 하고 모험을 제안했는지, 이 모험을 하며 그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히사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다 히사다의 물음에 타케모토가 "우리 집 보고 안 웃었으니까."라고 말하는 순간, 타케모토의 속마음이 처음으로 드러나고 타케모토가 바라보는 히사다의 모습이 나온다. 이후 이 이야기는 히사다가 기억하는 추억이 아닌 히사다와 타케모토가 함께한 추억으로 변화한다. 두 사람은 모험이 끝난 후 서로를 친구로 받아들이고 또 보자며 작별 인사를 한다. 그리고 둘은 여름방학 내내 친구로서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한다.
히사다와 타케모토는 서로의 집을 오가며 엄마가 그들을 부르는 애칭을 듣고, 직접 또는 사진과 음식으로 서로의 아빠를 만나고 서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도 공유한다. 처음엔 서로의 약점만 아는 사이였지만 모험을 거치며 친구가 된 둘은 약점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다른 친구들은 모르는 서로의 긍정적인 측면까지 알아간다.
우정이란 게 뭐 별건가 싶다. 발걸음을 맞추고 무거운 것은 함께 밀고, 같은 언덕을 오르면 그게 우정이다. 히사다와 타케모토는 돌고래 모험을 통해 이 모든 걸 함께했다. 또 추억이란 게 뭐 별건가. 같이 땀 흘리고 웃고 넘어져 보면 그게 다 추억이다.
1986년 그 여름에 보낸 히사키와 타케모토의 추억과 서로의 꿈을 응원했던 순수한 우정은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주방을 지키고 있는 고등어통조림처럼 그들이 어른이 된 후에도 오래오래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인생을 살아가는 작은 힘이 되어주고 있다.
순수한 아이들과 아이들을 지켜주는 좋은 어른
서툰 아이들이 모험을 하다 위기에 빠지거나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힘들어할 때 아이들을 건져올리고 껴안아주는 어른들의 큰 손이 얼마나 든든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히사다의 아빠는 철부지 아저씨처럼 보이지만 든든한 히사다의 보호자다. 그는 엉망이 된 히사다의 자전거를 고쳐주고 이른 아침 몰래 떠나는 아이들을 발견하곤 딱딱한 짐칸에 담요를 깔아준 후 주머니에 용돈을 꽂아준다. 그는 히사다를 절대 재촉하지 않는 아빠이며 히사다의 앞이 아닌 뒤, 옆에서 조용히 히사다를 바라본다.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쳤던 유카는 물에 빠진 히사다를 들어 올리고 두 아이에게 장갑으로 감싼 따끈한 소라를 건넨다. 트럭을 몰고 다니는 카나야마는 히사다와 타케모토를 구해주고 찌그러진 타케모토의 모자를 주워준다. 그리고 그 모자가 계속 마음에 걸렸는지 자신이 쓰고 있던 멀쩡한 모자를 타케모토의 머리에 씌워준다.
과수원과 사유지에 대한 개념이 없는 아이들이 '산에서 난 것'이라며 귤을 서리할 때, 최선을 다한 달리기가 아닌 빠른 걸음으로 아이들의 뒤를 뒤쫓던 우치다 할배. 그는 타케모토가 떠나는 길에 달달한 귤을 한 아름 안겨준다.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 통조림>엔 좋은 어른들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이 넘친다. 그 덕분에 히사다와 타케모토의 모험은 안전하고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어른이 아이에게, 어른이 된 아이가 또 다른 아이에게
통조림, 돌고래 이야기의 의미
엔딩 결말 해석
부메랑 섬을 찍고 돌아온 해변. 타케모토는 아빠에게 들은 "돌고래는 잠에 들면 물에 빠진다."라는 말을 히사다에게 해준다. 오랜 시간이 지나 아빠가 된 히사다는 돌고래 쇼를 보고 자신의 딸 요시카에게 그 말을 그대로 전해준다. 어른이 아이에게 어떠한 말을 해주고 아이는 그걸 기억한다. 그리고 어른이 된 아이는 자신의 아이에게 다시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시카도 아빠 히사다가 해준 돌고래 이야기를 기억하고 나중에 자신의 아이에게 아빠에게 들었다며 똑같은 말을 전해주게 될 것이다.
히사다는 1986년의 추억을 책으로 쓰고 책을 읽은 요시카는 아빠의 고향 나가사키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세 가족이 함께 가게 될진 모르지만 어쨌든 요시카는 나가사키에서 아빠의 고향에서 요시카만의 추억을 쌓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 나가사키에서 있었던 그 여름의 추억을 전해줄 것이다.
말과 추억엔 유통기한이 없다. 누군가 계속 전해주기만 한다면 영원에 가깝고 만일 유통기한이 있다 하더라도 좋은 추억은 애써 지워내지 않는 이상 아주 오래 기억된다. 어른이 아이, 또 다른 아이에게 전해지며 쭉 이어지고 있는 말과 추억처럼 이 영화가 주는 잔잔한 감동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나를 통해,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을 통해 또 다른 이에게 전해질 것이다. 변치 않는 고등어통조림처럼 온전하고 생생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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