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상의 몸/천상의 육체> 리뷰, 결말 해석 / 알리체 로르바케르
- 영화 소개, 줄거리
- <행복한 라짜로>와 남매 같은 <천상의 몸>
- 종교의 그림자. 지중해 오징어와 십자가 상의 의미
- 마르타의 신체적 성장. 호칭의 의미
- 마르타의 정신적 성장. 세족, 이발, 다리와 물웅덩이의 의미
- 영화의 제목이 <천상의 몸(육체)>인 이유? 결말 엔딩 해석
개봉일 : 2024.07.24.
장르 : 드라마, 성장
러닝타임 : 100분
감독 : 알리체 로르바케르
출연 : 실바토레 칸탈루포, 아니타 카프리올리, 레나토 카펜티에리,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 이 영화는 우리말로 <천상의 육체> 또는 <천상의 몸>으로 불리지만 본 글에선 2024년 7월 24일 CGV에서 개봉한 제목을 기준으로 <천상의 몸>이라 표기
- 감독의 이름은 우리말로 주로 ‘알리체 로르바케르’ 또는 ‘알리체 로르와커’라고 불리지만 감독 본인의 발음에 더 가까운 ‘알리체 로르바케르’로 표기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영화들
<행복한 라짜로>와 남매 같은 <천상의 몸>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영화들은 이지적이고 이질적이며 감정보단 이성, 본능보단 이치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영화들은 믿음과 감정에 휩쓸려 울부짖는 모순적인 등장인물들과 그들을 초월한 듯한 존재인 주인공의 대비를 통해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시대에 몇 가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나는 <천상의 몸>을 보며 이 영화가 앞서 국내에 개봉한 <행복한 라짜로>와 남매 같은 관계성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행복한 라짜로>의 주인공과 <천상의 몸>의 주인공의 이름은 라짜로와 마르타로 실제 성경 속에 나오는 남매 라짜로, 마르타와 이름이 같기도 하고 영화의 주제 또한 비슷하다. 다만 <천상의 몸>이 아직 덜 성장한 어린 여동생 같은 뭉툭한 영화라면 <행복한 라짜로>는 여동생과 닮았지만 조금 더 대중적이고 명료하게 성장한 오빠 같은 영화였다.
<행복한 라짜로>는 순수한 영혼 라짜로가 현실에서 겪는 핍박과 종교를 믿으면서도 눈앞에 펼쳐지는 신성한 존재를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좁은 시선을 대비해 보여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착취와 혐오의 시대, 믿음의 방향성과 실상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천상의 몸>은 육체, 정신적 성장의 기로에 있는 13살 마르타가 정식 신도가 되는 과정인 견진 성사를 준비하며 겪은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마르타가 목격한 종교인들의 모순적인 행동, 종교의 힘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하는 그녀의 모습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행복한 라짜로>는 라짜로가 겪은 비극이 더 가까이 <천상의 몸>은 마르타의 성장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는 작은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둘은 마치 남매처럼 닮아있다.
<행복한 라짜로>, <천상의 몸> 두 영화 모두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있지만 아주 깊거나 어려운 정도는 아니라 비종교인인 나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정도였다. <천상의 몸>이 현재 국내에 개봉한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작품 중 가장 대중성은 낮은 느낌이긴 하지만 <행복한 라짜로>를 재밌게 본 관객이라면 <천상의 몸> 또한 마음에 들것이다.
종교는 구원, 밝은 것인가? 종교의 그림자
밝은 장소와 어두운 장소. 지중해 오징어와 십자가 상
극 중에서 마르타가 처음 성당으로 들어가는 장면. 어두운 배경 속에서 2개의 밝은 십자가가 보인다. 마르타가 십자가 모양 유리창이 난 성당 문을 열자 배경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성당은 넓고 높고 또 밝게 그려진다. 이렇듯 보통 종교는 구원, 옳은 것 종교와 관련된 장소는 밝은 곳이라는 이미지를 가진다.
“여러분이 찾는 답은 바로 성당입니다.”
성당 신도인 산타는 책상에 앉은 아이 마르코에게 기도문을 읽으라 지시한다. 기도문의 내용은 대략 성장, 정체성 혼란을 겪을 땐 성당을 찾고, 성령의 눈을 빌려 세상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성당은 올바른 길을 안내해 줄 것이고 종교는 삶을 이롭게 한다는 게 산타를 포함한 성당 어른들(신도)들의 의견이다. 그런데 마르타의 눈에 비친 성당의 어른들은 마냥 옳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니다.
<천상의 몸>엔 마르타의 눈으로 본 종교의 어두운 면이 많이 담겨있다.
사랑은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의 핵심 가치다. 그런데 이 성당의 어른들은 이웃을 사랑하기보단 본인을 살피는데 급급하고 종교적 계급으로 특권을 누리기도 한다.
마리오 신부는 행사를 통해 좋은 인상을 남기고 더 큰 교구로 가기 위해 무리해 행사를 확장하고 신도들을 찾아가 특정 후보를 찍으라며 투표를 강요한다. 그리고 신도인 산타는 신부를 위해 집안일을 하고 신부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신부와 함께 회의에 참여한 다른 신도는 성당이 노인, 어린아이들 등 할 일 없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며 불평하고 성당 창고에서 탄생한 아기 고양이들을 봉투에 담아 다리 밑으로 던져버리기까지 한다.
또한 로사의 생일날 식사 장면에서 어른들이 오징어 요리에 대해 나눈 대화를 들어보면 아빠가 “지중해 해산물은 안 사. (바다에) 시체가 많아. 다 모로코인이야.”라고 말하는 걸 들을 수 있다. 모로코는 인구의 대부분이 이슬람교고 기독교인은 극소수에 불과한 나라다. 모로코에선 기독교인들을 탄압하거나 개종을 강요하거나 학대, 살해하는 사건들이 적지 않게 발생했는데, 이 말은 모로코에 드리운 종교의 어두운 그림자를 꼬집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성당을 지키는 마리오 신부는 항상 밝은 길만 걸을 것 같지만 그의 방은 작은 조명으로 일부만 밝혀놓은 어두운 상태고 선거 권유를 하러 이집 저집 돌아다닐 때 그는 어두운 계단을 걸으며 신도들의 집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마리오 신부는 불이 꺼지다 못해 폐허가 된 고향의 성당에서 십자가 상까지 끌어내린다. 그는 십자가상을 차 위에 매단 채 도로를 달린다. 동상은 신성한 존재가 아닌 어딘가 팔려가는 재물처럼 보인다. 생각해 보면 십자가 상은 마리오 신부가 더 커다란 교구로 가기 위해 필요한 물건이니 어떤 의미에선 재물이 맞기도 하겠다.
그렇게 마을로 돌아가던 중 갑자기 일어난 사고로 십자가 상이 신부의 차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지게 되는데 어째 그 모습이 안타깝고 걱정되기보단 오히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이동한 것처럼, 진실한 자유를 찾은 것처럼 느껴진다.
신부는 십자가 상 없이 성당으로 돌아온다. 미리 떼어둔 기존의 십자가는 바닥에 내려져있고 견진 성사는 빈 벽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신부를 기다리던 산타는 신부에게 옷을 입혀주며 “얼룩이 있네요”라고 말한다. 신부와 신도들의 욕심의 결과는 신앙심의 추락(바닥에 내려진 십자가)과 옅게 남은 얼룩뿐이다.
믿음이 아닌 부정으로 일궈낸 성장
마르타의 신체적 성장, 호칭
마르타는 13살 소녀다. 그런데 산타의 말을 들어보면 마르타는 그 나이대 소녀들에 비해 발육 상태가 좀 느린 모양이다. 마르타도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지 괜히 언니 로사의 속옷을 훔쳐 입거나 십자가 목걸이가 걸쳐진 앵커의 가슴에 시선을 두거나, 또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르타는 성숙한 소녀, 여자라기엔 애매한 신체를 가졌다. 아이들과 함께 합창곡을 연습하는 장면을 보면 왼쪽은 여자, 오른쪽은 남자아이들이 서로 팀을 나누듯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르타는 딱 그 가운데에서 양어깨를 여자, 남자친구에게 붙인 채 서있다. 마르타는 여, 남 아이들의 구분선이자 정확히 어디에도 분류되지 않는 아이다.
영화의 중반부까지 마르타는 어른들에게 마르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땐 Bambini라고 불린다. 이탈리아어로 Bambino는 남자아이 한 명, Bambina는 여자아이 한 명, Bambini는 남자아이들 또는 아이들이라는 뜻의 복수 단어다. 마르타는 계속 Bambini로 불리다가 초경을 시작한 그 식당에서 처음으로 한 명의 여자아이를 뜻하는 Bambina로 불리게 된다. 드디어 여자아이로 불리게 된 마르타는 초경을 시작하며 신체적인 성장을 이뤄낸다.
마르타의 종교적, 정신적 성장
세족, 이발, 다리와 물웅덩이의 의미
영화의 제목이 <천상의 몸(육체)>인 이유? 결말 엔딩 해석
마르타의 종교적, 정신적 성장은 언제 이루어졌느냐 하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영화가 시작한 순간부터 쭉, 꾸준하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마르타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극 중에서 종교적 의미의 성인(모범적이거나 영적인 인물)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다.
극의 초반엔 마르타가 스스로 자신의 발을 씻는 장면이 나온다. 종교에서 세족 행위는 죄를 회개한다는 의미, 물은 죄를 씻어주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보통의 신도들은 성당을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고 그것을 들어주는 신부의 도움으로 죄를 씻지만 스스로 발을 닦는 마르타는 아기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어두운 다리 밑까지 찾아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도 하고, 애초에 어른들처럼 나쁜 죄를 짓지 않는다.
그리고 마르타는 종교의 도움, 종교를 통한 회개가 아닌 죄책감과 부정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게 되는데 그 속도가 붙은 건 스스로 머리카락을 잘라낸 이후부터다. 고대인들에게 머리카락과 털은 생명력 또는 영혼. 즉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마르타가 스스로 긴 머리카락을 잘라낸 건 종교인으로서의 성장을 준비하던 자신에 대한 부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잘라낸 머리카락을 성녀가 되겠다는 데비에게 주며 “내 머리카락을 잘라 네 머리카락에 붙이면 된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내며 종교에 대한 믿음도 함께 잘라냈고 많은 믿음이 필요한 데비에게 그것을 넘겨준다는 의미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견진 성사를 뒤로하고 다시 어두운 다리 밑을 찾아간 마르타는 드레스 차림 그대로 깊은 물웅덩이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그리고 죄를 씻어주는 물웅덩이를 지나자 마르타의 두 손은 신성한 생명의 기적으로 가득 찬다.
여기서 마르타가 물웅덩이를 지나는 건 죄를 씻는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물웅덩이에 비친 뒤집힌 소년의 모습과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바다가 갑자기 나온 것을 보아 마르타가 다른 세계, 즉 종교인들이 바라던 천국이나 낙원 같은 곳에 닿았다 또는 예수와 가장 가까운 인물로 성장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다.
극 중에서 진짜 종교인들은 자신의 두 손으로 무언가를 끌어내리고 파괴하고 죽이기만 했는데 마르타의 손안에선 생명이 꿈틀거린다. 앞서 견진 성사 준비 수업을 할 때, 산타는 ‘예수는 우리와 다르게 영적이고 신성한 몸을 가졌고 그의 두 손은 신성함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의 제목이 <천상의 몸(또는 천상의 육체)>인 이유는 바로 이 마지막 장면 하나로 모두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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