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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l 30. 2024

꿀이 가득했던 유년 시절에 바치는 헌사

영화 <더 원더스> 리뷰, 결말 해석 / 알리체 로르바케르 성장 영화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로르바케르 감독의 보물지도 같은 영화 <더 원더스>

- 새로운 세상으로의 초대. 비바람과 뚜껑이 열린 벌집

- 벌과 꿀의 의미. 넘쳐버린 꿀 양동이

- 오래된 집, 침대 위 남겨진 자리와 같은 유년 시절

더 원더스 (The Wonders, 2014)

꿀이 가득했던 유년 시절에 바치는 헌사

개봉일 : 2024.07.31.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성장

러닝타임 : 111분

감독 : 알리체 로르바케르

출연 : 알렉산드라 마리아 룽구, 샘 루윅, 알바 로르바케르, 모니카 벨루치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더 원더스>는 <천상의 몸>에 이어 발표한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이자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다수 반영된 자전 영화다. 이 영화엔 소녀의 성장과 더불어 이젠 사라져버린 공간과 다신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미움, 감사가 모두 들어있다.


<더 원더스>는 초월적 존재와 종교, 설화가 중심을 이뤘던 <천상의 몸>, <행복한 라짜로>, <키메라>와는 다른 결의 영화지만 <키메라>이야기의 중심이었던 에트루리아 문명과 물에 비친 뒤집힌 세상, <행복한 라짜로>의 배경이었던 이탈리아 농가의 목가적인 풍경 같은, 이후 발표한 영화의 키워드들이 묻혀있는 보물 지도 같은 작품이다.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흥미롭게 봤다면 <더 원더스>도 꼭 한번 감상하길 추천한다.

영화의 주인공 젤소미나는 밤이 되면 모든 빛이 사라지는 조용한 시골 농가에 사는 12살 소녀다. 그녀는 아버지의 양봉일을 가장 야무지게 돕는 딸이자 세 명의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언니다.

평소와 같이 아버지를 도와 일을 마치고 물가에 놀러 간 늦은 오후, 젤소미나는 외지에서 온 TV프로그램 촬영팀을 보게 된다. 수십 번도 더 와본 장소인데 그곳에 커다란 카메라, 조명, 반사판, 아름다운 모델 밀리가 서있는 걸 보니 마치 새로운 세상처럼 느껴진다.

촬영이 끝난 후 밀리는 젤소미나와 아이들을 불러 TV프로그램 홍보물을 나눠주고 아이들은 그것을 받아 집으로 돌아온다. 홍보물에 적힌 TV프로그램의 내용은 대략 ‘옛 시절의 삶을 고수하는 가족들을 찾아 큰 상금이 걸린 토너먼트를 진행한다.’는 것. 젤소미나는 넌지시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던져보지만 아버지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시골 농가의 풍경은 고즈넉하고 아름답지만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싶어 하는 소녀에겐 다소 답답하고 건조한 환경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소녀는 모험심과 기대감. 안정감과 가족들 사이에서 고민을 반복하고, 짧은 성장통과 가족의 사랑을 경험하며 성장한다.


<더 원더스>는 그 성장을 이루게 해준 지금은 사라진 장소와 그 시간에 바치는 헌사이자 이젠 무슨 일이 있어도 사라지지 않을 소중한 기록이다.


- 아래 내용부터 스포 有

새로운 세상으로의 초대
TV 프로그램, 마틴과의 만남. 비바람과 뚜껑이 열린 벌집


젤소미나의 아버지 볼프강은 외지인, 사회에 대한 큰 경계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볼프강은 사냥꾼의 총소리가 들릴 때마다 꺼지라고 소리를 지르고 TV 프로그램 관련인들을 경계한다. 그는 도시적인 삶에 대한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인다.


우연히 촬영장을 구경하러 갔던 장면을 보면 젤소미나 가족보다 더 먼저 촬영장에 와서 그걸 구경하던 다른 주민들이 나온다. 그들은 볼프강에게 “이 집엔 아들은 언제 태어나냐.”라며 말을 거는데 이때 다른 주민들은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있고 막 물놀이를 하다 달려온 볼프강과 아이들은 속옷만 입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TV 프로그램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참여하며 문명을 즐기는 문명인의 삶을 살고 있는 동안 이 가족은 가장의 뜻을 따라 문명인보단 미개인에 가까운 고립된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젤소미나에겐 더 넓은 세상을 볼 기회가 없었다. 집안에 있는 거라곤 아마 침대에 드러누운 아버지의 전유물일듯한 작은 TV 하나뿐이고 아버지가 차에 태워 데려다주는 장소라곤 양봉장, 바닷가가 전부다.

그런데 젤소미나가 12살이었던 그 해. 그녀의 작은 세상에 변화가 찾아온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아름다운 머리칼을 가진 밀리. 그녀가 준 액세서리와 이상한 나라로의 초대장 같은 홍보물. 그리고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처음 만나보는 남자아이 마틴까지.

젤소미나는 갑자기 다가온 새로운 세상을 궁금해하면서도 자신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가족을 생각하며 궁금증을 접는다. 그녀는 밀리가 준 액세서리를 빼고 전원의 기적 홍보물을 접고, 마틴과 함께 일을 할 땐 가득 찬 꿀병을 그의 손이 아닌 옆 양동이에 올려놓으며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마음속에 자리 잡은 모험심과 궁금증은 아무리 눌러도 사그라들긴커녕 점점 몸집을 키워간다. 그리고 비바람이 치던 날. 아무리 덮어도 다시 열리던 벌집 뚜껑처럼 젤소미나의 진심도 활짝 문을 박차고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우리 거기 참가해요.” 젤소미나는 볼프강에게 다시 프로그램 참가를 제안한다. 볼프강은 “5분이면 지나갈 거야.”라며 젤소미나의 모험심을 다시 자제시키려 하지만 이미 활짝 열려버린 젤소미나의 마음을 닫진 못한다.

결국 넘치고 만 소녀의 호기심
벌과 꿀이 가진 의미


벌들은 새로운 꽃을 찾아다니며 꽃 속의 꿀을 빨아들이고 벌집으로 돌아와 꿀을 저장한다. 벌들이 꽃을 찾아다니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면, 벌집보다 더 넓은 세상을 여행하지 않는다면 꿀이라는 결과물을 얻을 수 없다.


아버지 볼프강의 인생은 영화 초반에 나왔던 텅 빈 벌집과 같은 상태다. 그의 마음속엔 집 밖에서 꿀을 날라다 줄 벌도 그 결과물인 꿀도 없다. 즉 세상을 향한 모험심과 호기심,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넓은 세상을 보는 눈. 볼프강의 인생엔 그런 것들이 없다.

반대로 현재 젤소미나의 인생엔 당장 집 밖에서 꿀을 길어올 벌들, 즉 세상을 향한 모험심과 호기심이 가득한 상태다. 젤소미나는 밀리, 마틴과의 만남을 통해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만났고 그녀의 인생엔 달콤한 꿀이 조금씩 생기게 된다.


그런데 볼프강은 매일 벌집과 양동이에 찬 꿀을 털어내듯이 젤소미나의 호기심도 남김없이 탈탈 털어내려 한다. 하지만 한 방울 한 방울 똑똑 떨어지던 꿀들은 양동이를 넘어 작업장 바닥을 가득 채우고 젤소미나의 입에선 몇 마리의 벌이 기어 나온다. 소녀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호기심이 본격적으로 움트기 시작한 것이다.


가족들은 젤소미나의 신청서 덕분에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젤소미나 가족은 프로그램에서 1등도 하지 못했고 마틴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그 경험은 젤소미나와 가족들을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는 초석이 되었고 가족들은 간신히 화해의 길을 걷게 된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원래 있던 집 한 채와 침대 위 젤소미나의 자리


어두운 시골길. 사람들이 작고 동그란 손전등 빛으로 오래된 농가 한 채를 비춘다. 이제는 젤소미나 가족들이 살았던 흔적도 없어졌고 사람들은 이 농가가 언제부터 있었는지조차 모르지만 그 집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족들이 돌아온다면 언제든 그곳에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만큼 굳건하게.

젤소미나가 마틴을 찾아 말없이 하룻밤 외출을 했던 날. 가족들은 젤소미나가 돌아올 것이라 믿고 돌아온 그녀가 가족들의 따뜻한 온기 속에서 잠들 수 있도록 자리를 남겨놓은 채 서로를 껴안고 잠에 든다.


유년 시절이란 오래된 집, 침대 위에 남겨진 내 자리 같은 것이다. 뒤돌아보면 그 자리에 있고 언제든 따뜻하게 나를 감싸주는 것. 이 영화는 그 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더 원더스>는 동화 같기도 하고 답답한 현실 같기도 하고 또 아름다운 성장기 같으면서도 작은 아쉬움을 남기며 끝이 난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흔적뿐이지만 그 시절은 젤소미나의 마음과 이 영화 속에, 그 땅 위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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