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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n 14. 2020

<단지 세상의 끝> - '가족은 울타리인가 올가미인가'

[영화 후기,리뷰/ 왓챠, 자비에돌란 영화 추천/결말 해석]


단지 세상의 끝  (It’s Only the End of the World)

개봉일 : 2017.01.18. (한국 기준)

감독 : 자비에 돌란

출연 : 나탈리 베이, 뱅상 카셀, 마리옹 꼬띠아르, 레아 세이두, 가스파르 울리엘, 앙투안느 데로쉬에                                                                               

가족은 울타리인가, 올가미인가


자비에 돌란이 그려내는 가족은 항상 어딘가 불안한 모습이다. 완벽히 행복하지 않지만 또 완벽히 불행한 것은 아닌.. 애매하고 불안정하며 완전하지 않은 것.

<단지 세상의 끝>에 나오는 루이의 가족도 마찬가지다. 12년 전, 가족의 곁을 떠나 홀로 살아온 주인공 ‘루이’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마주한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서로를 숨 쉴 틈 없이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올가미처럼 변질되기 시작한다. 



12년 만에 재회한 루이의 가족은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 짧은 3시간 안엔 재회의 기쁨과 슬픔, 분노와 원망의 감정이 빠른 속도로 회오리치기 시작한다. 주인공 루이와 어머니, 첫째 형 앙투안, 막내딸 쉬잔, 앙투안의 부인 카트린. 서로 다른 시각과 의견을 갖고 있는 5명의 인물은 각자의 이야기를 하며 충돌을 반복한다. 화면에 가득 찬 등장인물들의 고양된 표정이 인상적이다. 




단지 세상의 끝 시놉시스


“이해는 못 해. 하지만 널 사랑해. 그 마음만은 누구도 못 뺏어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유명 작가 루이(가스파르 울리엘)는 자신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고향을 떠난 지 12년 만에 집을 찾는다. 아들을 위해 정성껏 요리를 준비한 어머니(나탈리 베이), 오빠에 대한 환상과 기대로 예쁘게 치장한 여동생 쉬잔(레아 세이두), 못마땅한 표정으로 동생을 맞이하는 형 앙투안(뱅상 카셀), 그리고 처음으로 루이와 인사를 나누는 형수 카트린(마리옹 꼬띠아르)까지.


시끌벅적하고 감격적인 재회도 잠시, 가족들은 루이의 고백이 시작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분노와 원망의 말을 쏟아내는데… 12년의 부재, 3시간 동안의 만남. 이제 그가, 가족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루이는 세상의 끝, 삶의 끝에서 자신의 핏줄이자 인생의 근본인 가족을 찾아간다. 20살이 갓 넘은 나이에 가족들 곁을 떠난 차남 루이는 파리에서 홀로 생활하며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1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루이는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12년 만에 아들이 온다며 아침부터 부산을 떨고 있는 모녀. 엄마는 열심히 음식을 준비하고 파란색 매니큐어를 칠한다. 여동생 쉬잔은 평소엔 안 하던 화장까지 하며 오빠를 기다린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루이에게 쉬잔과 엄마는 택시비가 많이 나왔겠다며, 자신이 데리러 갈 수 있었다고 얘기하지만 루이는 무언가 어색한 듯 말을 피한다. 가족들은 오랜만에 오는 루이를 위해 열심히 음식을 하고, 치장을 하고, 항상 그의 편지를 기다리며, 루이의 기사를 스크랩한다. 루이는 12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가족들의 생일을 챙겼다. 때가 되면 도착하는 루이의 짧은 엽서는 엄마와 쉬잔의 큰 기쁨이었다. 두 세 마디로 끝나는 짧은 엽서였지만, 엽서를 받을 때가 루이가 가족을 생각하고 있음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루이와 가족들은 가깝지 않다. 여동생 쉬잔에 방에서 대화를 나눌 때도 루이는 벽에 기대선 채 여동생과 함께 앉지 않으며 엄마와 대화를 나눌 때도 거리를 유지한다. 그리고 직사각형인 테이블에 앉을 때 두 명이 앉는 자리가 아닌 혼자 앉는 자리에 앉는다.



어찌 보면 단란한 가정 같기도 하다. 여동생은 오빠를 잘 따르고 엄마는 아들을 사랑하고, 몸은 멀리 있지만 연락을 주고받는 가족. 이렇게 아름다운 가족극이 되는 걸까- 싶은 순간, 평화를 와장창 깨는 장남 앙투안의 말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앙투안은 영화의 진행 내내 루이를 적대시하며 모진 말을 반복한다. 처음엔 앙투안이 흐름을 깨는 더러운 성질의 소유자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며 장남 앙투안의 마음을 조금씩 짐작할 수 있었다. 



앙투안은 가족들을 위해 일을 시작한,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장남이다. 차남이 떠나고 모든 책임을 짊어진 앙투안에게 한순간 훌렁-떠나버린 차남 루이는 미움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12년 만에 나타나서는 자신은 장남이 아니라며 책임감은 하나도 느낄 수 없는 말까지.. 앙투안의 속에선 천불이 난다.



루이의 어머니는 아들을 매우 사랑한다.


이해는 못 해. 하지만 널 사랑해. 그 마음만은 누구도 못 뺏어가.


갑작스레 떠나버린 루이를 이해할 순 없었지만, 언제나 아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어머니는 12년 만에 찾아온 아들을 바라보며 네 할 일을 하라고 말한다. 오랜만에 아들이 오는데 후줄근하게 있을 순 없다고 파란 매니큐어를 손톱에 칠하던 엄마. 서양에선 파란색을 불안한 마음이나 차가움, 굶주림의 색으로 인식한다. 루이의 엄마는 언제 다시 아들이 떠날지, 돌아오지 않는 건 아닐지. 어떻게 해야 아들에게 더 잘해줄 수 있을지 전전긍긍한다. 



쉬잔은 앙투안과 루이보다 늦게 태어나 나이차가 꽤 나는 여동생이다. 루이가 가족들을 떠날 때, 쉬잔은 너무도 어렸기에 그녀에게 둘째 오빠에 대한 기억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기억보다는 앙투안과 엄마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와, 미디어에 공개된 루이의 인터뷰로 둘째 오빠의 형상을 만들어가던 쉬잔은 루이의 방문을 애타게 기다린다. 둘째 오빠 루이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쉬잔은 첫째 오빠 앙투안의 날선 말들에 분노를 느낀다.



주인공들 중 유일하게 루이의 가족이 아닌 카트린은 가장 차분하게 루이를 대한다.

루이는 앙투안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기에 카트린과 루이는 이 날 처음 인사를 나누게 된다.

아이 이야기를 하며 ‘아기 가질 일 없을 것 같아서요’라고 실언을 하기도 하지만 카트린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노력한다.



이 가족은 그 짧은 순간에 싸움과 웃음을 반복한다. 순식간에 감정에 휘말려 싸움을 하다가도 엄마와 쉬잔의 에어로빅 시범에 웃음꽃이 피기도 한다.


음식을 준비하며 엄마는 즐거웠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한다. 앙투안과 루이가 어릴 때, 엄마 아빠, 앙투안과 루이는 일요일마다 세차를 하고 교외로 나가 나들이를 했다. 마치 의무인 것처럼. 나들이가 끝나면 ‘피곤하다, 집이 최고네’를 반복하면서도 매주 빠짐없이 나들이를 갔다. 그 나들이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자연스레 뜸해졌고, 늦둥이인 쉬잔이 태어나자 쉬잔만 데리고 가면 의미가 없다며 나들이를 포기한다. 쉬잔은 뒤늦게 태어나 오빠들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고 앙투안은 어린 동생이 커가는 걸 보며 뿌듯함과 책임감을 느낀다. 그리고 엄마는 과거에 사로잡혀 이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루이는 왜 가족의 곁을 떠났을까? 그리고 왜 죽음을 코앞에 둔 순간 다시 가족을 찾아갔을까.


이 집은 너무도 숨이 막힌다. 책임져야 하는 어린 여동생, 의무처럼 느껴질 만큼 사랑을 퍼붓는 엄마, 책임을 떠맡고 날카로워진 장남. 툭하면 감정이 폭발하는 공간. 판잣집 같았던 작은 집에서 이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숨이 막히는 집. 루이는 가족이라는 올가미를 탈출한다. 하지만 왜 이제 와서 다시 가족들을 찾아간 걸까. 루이의 엄마가 말한 것처럼 ‘12년이나 지났으니 바비큐 먹으러 집에 가볼까?’ 같은 이유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죽음을 앞두고 가장 먼저 자신의 가족을 찾게 된다. 내가 태어난 곳이자 탄생의 근원, 나를 키워준 사람, 나를 감싸주던 존재. 그들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고 생을 마감하는 것. 나의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건 본능이다. 하지만 루이는 가족들에게 병을 고백하지 않고 다시 집을 떠난다. 루이가 집을 떠나기 전 새 한 마리가 정신없이 날아다니다 결국 추락하고 가쁜 숨을 내쉰다. 루이는 그 새와 같은 존재다.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이곳저곳, 갈팡질팡 날아다니다 결국엔 추락해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 루이에게 가족은 위로이자 외면하고 싶은 존재다. 그에게 다시 돌아갈 울타리가 있다는 건 축복일까 아니면 빠져나올 수 없는 올가미였을까 



가족이란 존재가 항상 아름답거나, 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간 넘치는 사랑이 폭력이자 무거운 책임으로 돌아올 때도 있으며, 숨이 막히는 순간도 존재한다. 우리는 여전한 비누 냄새에 익숙함을 느끼기도, 지겨움을 느끼기도 한다. 창고 한편에 쌓여있는 버릴 수 없는 추억이 깃든 물건처럼 우리는 이 관계를 놓을 수도 그렇다고 마냥 끌어안고 살 수도 없다. 결국 이 관계를 사랑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 영화가 불편하고 찝찝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쉼 없이 조여드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기도 하고, 왠지 익숙한듯하지만 그걸 인정하기엔 또 찝찝한 감정.. 오버스럽게 표현된 부분이 있지만, 이 가족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가족과 닮아있다.


영화를 볼 때 보다 보고 난 후 더 많은 생각이 드는 영화 <단지 세상의 끝>. 돌란 감독의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를 인상 깊게 봤다면, 이 영화에도 도전해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두 작품을 연이어 감상하는 건 추천하지 않겠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kyung769/

블로그 : https://blog.naver.com/hkyung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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