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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Sep 27. 2024

필멸의 삶 속에서
무한히 재생될 그 해 여름

영화 <썸머85> 리뷰, 후기, 해석 / 프랑스 퀴어 청춘 영화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거센 파도가 담긴 첫사랑

- 알렉스, 다비드의 배 이름

- 오디세우스, 칼립소 신화와 닮은 알렉스, 다비드의 사랑

- "무덤 위에서 춤을 추자"는 약속의 의미

- 엔딩 해석

썸머 85 (SUMMER OF 85, 2020)

필멸의 삶 속에서 무한히 재생될 그 해 여름

개봉일 : 2020.12.24.

관람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01분

감독 : 프랑소와 오종

출연 : 펠릭스 르페므르, 벤자민 부아쟁,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 멜빌 푸포, 이사벨 낭티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썸머85>는 원작 소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로 제목부터 알 수 있듯이 85년 여름, 두 소년에게 일어난 사건을 주제로 한 이야기다.


여름, 소년의 사랑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을 것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사실 난 <썸머85>의 사전 정보를 찾아보지 않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같은 영화를 기대하며 그들의 여름 바다로 냉큼 뛰어들었다.

다행히도 그들의 바다는 적당히 깊었으나.. 파도는 거셌다. 첫사랑의 조심스러움과 강렬함, 불안정함, 여름 햇살의 맑은 따가움, 아렴풋이 느껴지는 정의 못할 감정들. 꽤 많은 것들이 거칠게 밀려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속 첫사랑이 문득 떠올라 가끔씩 바라보게 되는 예쁜 모양의 흉터 같았다면 <썸머 85>속 첫사랑은 어떠한 사고로 뽑혀버린 손톱 같았다. 그리고 전자가 비밀스러운 신화를 읽는 느낌이었다면 후자는 신화 속 인물이 휘갈긴 날것의 기록을 읽는 느낌이었다. 둘 다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여름의 순간이라는 점은 같지만 이야기의 소란함과 강렬함의 정도, 색채가 확실히 달랐다.

<썸머85>는 알렉스와 다비드라는 이름의 두 소년이 나온다. 영화는 처음부터 두 사람의 결말을 제시하며 시작된다. 교도관으로 추정되는 남자에게 끌려가는 금발의 소년 알렉스가 보인다. 알렉스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른 소년은 어떠한 사건으로 사망했고 알렉스는 그 사망 사건과 연관되어 있는 듯 보인다.

죽음이 취미지만 다른 소년의 시체는 보기 싫었다는 소년 알렉스는 우리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다면, 다른 소년이 왜 죽었는지 궁금하지 않다면 여기서 멈추라며 카메라를 노려본다. 그는 이것이 누군가에겐 이해하기 힘든,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음을 알고 있는듯하다.

하지만 슬픔과 분노, 회한이 담긴 강렬한 알렉스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나는 절대 두 사람의 이야기를 외면할 수 없을 거란 걸 직감했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날, 알렉스는 친구의 배를 빌려 홀로 바다로 나간다. 주변에 있는 거라곤 어여쁘게 넘실거리는 파도뿐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파도가 거칠어진다. 당황한 알렉스는 배를 돌리려다 전복 사고를 내고 만다.

알렉스가 허둥대고 있는 순간. 갑자기 다비드라는 소년이 등장해 알렉스를 구해준다. 알렉스와 다비드의 짧은 여름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다비드는 일렁이는 파도에 잠긴 알렉스를 끌어올려 구해줌과 동시에 또 다른 폭풍 속으로 휘말리게 만든다.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여유 넘쳐 보이는 어른 같은 다비드. 알렉스는 다비드에게 속절없이 휩쓸린다. 어딘가 한쪽으로 기운 시소 같은 모양새지만 아무튼 알렉스는 자신이 느끼는 이 감정을 ‘내가 이해한 만큼의 사랑’이라 생각한다.

과거, 현재. 선명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순간을 되짚으며


다비드가 사망한 후, 홀로 남겨진 알렉스는 그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누가 먼저 죽으면 그 무덤 위에서 춤을 추자’고 했던 실없는 약속을 기억해 낸다. 알렉스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몇 가지 일탈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체포되고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하지만 알렉스는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고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알렉스의 상황을 전해 들은 문학 선생님은 알렉스에게 글쓰기를 제안하고 알렉스는 천천히 다비드와 함께한 순간들을 글로 써 내려가며 회복의 단계를 거친다. 우리는 그렇게 알렉스가 써낸, 선명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 아래 내용부터 스포 有


오디세우스와 칼립소, 알렉스와 다비드
알렉스, 다비드의 배 이름


알렉스와 다비드가 타고 있던 배엔 이름이 있다. 알렉스의 배는 Tape-cul (시소), 다비드의 배는 칼립소(Calypso)다. 이 두 배의 이름은 두 사람의 관계를 은유하고 있는듯하다.


칼립소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바다의 여신이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등장한다. [오디세이아]에서는 제우스의 번개에 오디세우스의 배를 내리치고 바다에 표류하던 오디세우스는 칼립소가 다스리는 섬에 불시착한다. 오디세우스를 발견한 칼립소는 그를 거둬 치료하고 간호해 주며 그에게 빠지게 된다.

위험에 빠진 인간, 힘을 가진 신. 처음 칼립소와 오디세우스가 만났을 땐 칼립소가 완전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칼립소가 오디세우스를 사랑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위치는 한쪽의 무게가 달라진 시소처럼 변한다.


더 무거운 마음을 가지게 된 칼립소는 납작 엎드린 채 오디세우스에게 사랑을 호소한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죽지 않는 삶을 선물해 주겠다며 함께 섬에서 살기를 요청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고향과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신인 칼립소를 완전히 거절하지 못하고 섬에 머물다가 다른 신들의 도움을 받아 섬을 벗어난다. 그리고 칼립소는 끝내 오디세우스가 섬을 떠나게 된 순간에도 오디세우스의 뗏목을 만들고 식량을 실어주며 그를 떠나보낸다.


알렉스와 다비드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벼락이 치는 하늘 아래 알렉스가 바다에 빠진 순간 칼립소를 탄 다비드가 구세주처럼 나타난다. 다비드는 알렉스를 집으로 데려가 욕실과 옷을 빌려주고, 식사까지 챙겨준다. 알렉스는 다비드의 호의를 받아들이고 그를 사모하게 된다. 하지만 반복되는 갈등에 지친 알렉스는 다비드와 함께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 순간 마음의 무게가 확 달라지고 두 사람의 위치도 변하게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저 위에서 알렉스를 다루던 다비드는 떠나는 알렉스를 붙잡으려 한다. 마치 영생을 주는 음식으로 오디세우스를 섬에 붙잡아두려 했던 칼립소처럼.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외부의 힘(오디세이아에선 신들의 개입, 썸머 85에선 오토바이 사고)에 의해 깔끔히 단절된다.

필멸의 삶을 바라는 알렉스와 필멸을 바라지 않는 다비드
“무덤 위에서 춤을 추자”는 약속의 의미


오디세우스와 칼립소, 알렉스와 다비드에겐 비슷한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건 바로 죽음, 유한함에 대한 생각이다. 오디세우스는 인간이고 칼립소는 신이다. 인간은 유한한 삶을 살고 신은 무한한 삶을 산다. 칼립소는 신으로서 오디세우스에게 영생을 선물하고 함께 살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고향에 돌아가 가족들과 필멸의 삶을 살고 싶다며 칼립소의 제안을 거절한다.


알렉스는 평소에도 죽음에 관심이 많으며 죽음을 두려운 것이라기보단 언젠가 맞이하는 것, 신기하고 흥미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오디세이아처럼 정해진 필멸의 삶을 받아들인다. (이건 아마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겪어보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다비드는 얼마 전에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는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삶이 유한하기보다는 무한하기를, 사랑하는 이와 무한히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죽음을 걱정할 필요 없는 신화 속 신처럼 말이다.


다비드는 슬픈 표정으로 ‘누가 먼저 죽으면 그 무덤 위에서 춤을 추기’를 약속해달라 말하고 알렉스는 처음엔 그것을 실없는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약속엔 농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다비드는 쉽게 지키지 못할 “무덤 위에서 춤을 추자”는 약속 안에 ‘우리 둘 중 누가 먼저 죽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은 것이다.

맺어진 과거를 품고 나아가기
엔딩 해석


글쓰기와 재판이 마무리된 후 알렉스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해 여름, 다비드와 함께 부축했던 남자를 다시 만나 함께 바다로 향한다. 배가 있냐는 남자의 물음에 알렉스는 “칼립소가 이제 내 배가 됐다.”고 말한다. 알렉스는 칼립소를 타고 넓은 바다로 나아간다. 위에서 언급했듯 칼립소는 다비드다. 알렉스가 칼립소를 몰고 다시 바다에 나가는 장면은 알렉스가 다비드를 마음에 품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해피엔딩 뜻하는 듯하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마음에 품게 된 알렉스는 여전히 필멸을 바라고 있을까. 아니면 다비드처럼 무한함을 바라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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