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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Sep 27. 2024

가족. 어쩔 수 없는 불협화음

영화 <도쿄 소나타> 리뷰, 후기, 해석 / 구로사와 기요시의 가족 영화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류헤이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의 특징

- 지하철이 지나갈 때마다 흔들리는 집의 의미

- 엔딩 해석

도쿄 소나타 (Tokyo Sonata, 2009)

가족. 어쩔 수 없는 불협화음

개봉일 : 2009.03.19.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19분

감독 : 구로사와 기요시

출연 : 카가와 테루유키, 코이즈미 쿄코, 코야나기 유, 이노와키 카이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그저 밥을 함께 먹는 식구라기엔 조금 더 각별한 것 같으면서도 단단한 가족이라기엔 모자란 느낌이 드는 사사키 가족은 각자의 비밀을 숨긴 채 불편한 생활을 이어간다. 가부장적인 가장 류헤이는 아버지의 위엄에 집착하며 정리 해고된 사실을 숨기고 외로운 주부 메구미는 허공에 손을 뻗으며 누가 나 좀 일으켜달라고 중얼거린다. 첫째 아들 타카시는 가족 몰래 미군 입대를 지원하고 둘째인 켄지는 부모님 몰래 급식비를 빼돌려 피아노를 배운다.


서로를 이해할 마음도 여력도 없는 네 사람은 형식상 함께 밥을 먹는 식구이자 피를 나눈 가족이긴 하지만 이들 사이엔 거짓말이 난무하고 어쩔 땐 남보다 못한 사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도쿄 소나타>는 이 삐걱대는 가족의 구성원들이 벌이는 탈출과 복귀를 통해 불완전하지만 질긴 가족이라는 관계를 보여준다.


<도쿄 소나타>는 가족 영화이면서도 전혀 감동적이지 않고 퍼석하고 미적지근하다. 그런데 그래서인지 더 가까이 다가온다. 말 그대로 영화에 나올법한 ‘문제를 함께 극복하고 성장해가는 가족’을 보는 감동은 딱 그때뿐이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생각을 이어갈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준다. 고양된 감정 없이 봉합되지 않은 갈등과 잠깐의 위로만으로 구성된 영화 <도쿄 소나타>는 마음과 머리 그 중간 어딘가를 간지럽힌다.


- 아래 내용부터 스포 有


타인보다 먼 가족
류헤이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의 특징


류헤이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각 공간(2층 켄지의 방, 1층의 주방과 작은 거실) 사이에 계단이 있어 높이가 다르고 공간마다 조명의 색도 다르다. 각자 다른 특징을 가진 집안의 공간들처럼 류헤이 가족 구성원들에겐 각자의 구역과 비밀이 있다.


류헤이는 실직, 메구미는 우울감, 타카시는 자원입대, 켄지는 주워온 피아노와 피아노 레슨. 이들은 이 비밀을 가족이 아닌 먼 사람들에게만 털어놓는다. 류헤이는 고등학교 이후론 만난 적 없는 동창 쿠로스에게 실직 사실을 털어놓고 메구미는 집을 털러 들어온 강도와 대화를 나눈다. 켄지는 피아노가 있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집에 작은 피아노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타카시는 연락도 제대로 되지 않는 먼 땅에서 나름의 꿈을 찾는다.


류헤이 가족은 자신의 비밀을 숨기느라 급급하다. 그래서 다른 가족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이들은 저녁 식사 시간이나 중대한 문제(타카시의 입대, 켄지의 피아노 레슨 발각)가 발생했을 때 잠시 식탁 앞으로 모이며 얼굴을 마주하지만 이내 다툼을 벌이거나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진다.

결국 돌아올 곳은 가족들이 있는 집뿐
지하철이 지나갈 때마다 흔들리는 집의 의미


비밀을 숨기고 관계를 유지하는 건 불편한 일이다. 게다가 상대가 비밀을 털어놔도 인정해 주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라면 더욱 힘들어진다. 그래서 류헤이, 메구미, 켄지는 내가 원하는 길을 따라 짧은 탈출을 꾀한다. 그리고 각자의 밤을 보낸 후 다시 같은 공간으로 돌아온다.


류헤이는 우연히 주운 돈 봉투를 품고 고민하다 쇼핑몰에 온 메구미를 마주친다. 그는 돈을 그대로 품은 채 뛰쳐나갔다 접촉사고를 당하는데 낙엽이 소복이 쌓일 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눈을 뜨게 된다. 바닥에서 일어난 류헤이는 돈 봉투를 반납하고 작업복을 입은 채 집으로 돌아온다.

메구미는 이상한 강도와 함께 그가 훔친 파란 차를 타고 바닷가로 향한다. 메구미는 이왕 출발했으니 끝을 보자는 심정으로 차를 몬다. 그리고 마치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는 곳에서 기묘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켄지는 가출한 친구 타구치와 함께 있다가 타구치가 아버지에게 잡혀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타구치처럼 잡히지 않기 위해 시외버스를 몰래 타려다 무임승차로 발각돼 하루 동안 유치장 신세를 지다 집으로 돌아온다.

류헤이의 집 옆엔 지하철이 지나간다. 지하철이 지나갈 때면 집안까지 지하철의 소음과 진동이 전해진다. 그러다 지하철이 지나가고 나면 집안은 언제그랬냐는 듯 다시 고요해진다. 류헤이 가족은 여러 사건으로 인해 잠시 흔들리다 각자가 원하는 방향을 향해 탈출을 시도하지만 결국 같은 색의 옷을 입고 같은 길을 걸어와 한 식탁에 모여앉는다. 내가 언제 흔들리고 또 언제 탈출을 시도했냐는 듯이.

엔딩에서 켄지가 연주하는 드뷔시의 달빛은 잠시 이 가족과 관객에게 아름다운 순간을 선사하지만 고운 꿈같았던 켄지의 연주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에선 다시 분주하고 무질서한 소리가 들려온다.

류헤이 가족은 언젠가 다시 무질서한 흔들림을 경험할 것이다. 가족의 형태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진 말이다. 우리들의 가족도 그렇다. 완벽히 행복하고 단단한 가족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고요하고 안정적이다가도 흔들리고 흔들리다가도 다시 같은 자리에 모이며 안정을 찾아가는 것. 어쩌다 생겼으면서 또 어떻게 떼어놓을 수는 없는 불협화음. 언젠가는 미친 듯이 거슬리다가도 듣다 보면 또 들을만한 불협화음. 가족이란 이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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