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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Sep 26. 2024

딱딱한 세상을 삼키지 못한 이들을 위한 담백한 미음

영화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리뷰, 후기, 해석 / 일본 힐링 영화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조급한 이이즈카의 마음. 이이즈카가 회식자리에서 취한 이유

- 이이즈카가 건너던 다리와 커튼의 의미. 결말 해석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

(When Morning Comes, I Feel Empty, 2024)

딱딱한 세상을 삼키지 못한 이들을 위한 담백한 미음

개봉일 : 2024.05.29.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75분

감독 : 이시바시 유호

출연 : 카라타 에리카, 이모우 하루카

개인적인 평점 : 3 / 5

쿠키 영상 : 없음

우리는 뜨거운 걸 잘 먹는 사람과 뜨거운 걸 잘 삼키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때,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따지거나 억지로 뜨거운 것을 먹으라 강요하지 않는다. 천천히 20번을 씹어 음식을 삼키는 사람과 후루룩 마시듯이 음식을 삼키는 사람이 있을 땐 천천히 씹는 사람에게 오래 씹지 말고 빨리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그런데 인생을 소화하는 데 있어선 이러한 자유가 거의 허락되지 않는다. 딱딱하고 뜨거운 현실이라 한들 다른 이가 그것을 씹어 넘긴다면 나도 그와 비슷한 속도로 그것을 씹어넘겨야 한다. 이를 소화하지 못하거나 느리게 먹으면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이 오면 공허해진다>는 딱딱한 세상을 억지로 삼키려다 포기하거나 다친 이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미음이다. 정성스레 끓인 미음처럼 담백하고 삼키기 쉽다. 이 영화는 턱에 힘을 잔뜩 주고 딱딱한 걸 씹어삼킬 필요는 없다고 묽은 미음을 한 그릇 넘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특한 일이라고 말한다. 당연하고 뻔한 말이지만 이런 위로는 늘 필요하다.

<아침이 오먼 공허해진다>의 주인공 이이즈카는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 말한다. 비척이며 침대에서 일어난 그가 가장 먼저 들려주는 독백은 “나 하나 없다고 한들 세상은 잘 돌아갈 거다.”라는 자조 섞인 문장이다.

이이즈카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아침에 눈을 떠 출근해 불친절한 손님들과 시간을 보낸다. 그는 자신에게 떨어지는 불친절들을 묵묵히 받아낸 후 간단한 식사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거나 홀로 컵라면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이즈카는 공허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쓸쓸한 마음으로 저녁을 맞이한다. 그의 일상엔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것이 하나도 없다. 좋아하는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없고, 힘든 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도 못한다. 공허하다 못해 이젠 세상을 마주하는 것조차 불편해진 그는 창가에 달린 커튼을 끝까지 걷어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커튼 봉의 고정 핀이 떨어지고 이이즈카는 이상하게 눈길이 가는 손님이자 알고 보니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였던 오오토모를 만나게 된다. 내향적인 이이즈카는 오오토모와 어색함을 느끼지만 적극적인 오오토모 덕분에 어색함은 빠르게 사라진다. 두 사람은 자주 만남을 가지며 즐거운 시간을 쌓아가고 이이즈카의 일상엔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 아래 내용부터 스포 有


조급한 이이즈카의 마음
이이즈카가 회식자리에서 취한 이유


이이즈카는 괜찮지 않다. 회사는 몸과 마음을 망쳐놨고 새롭게 출근하게 된 편의점의 손님들은 친절하지 않다.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고 싶지만 가족들이 실망할까 봐 퇴사한 것조차 알리지 않아서 어디 이야기할 곳도 없다. 일상도 그다지 잘 풀리지 않는다. 갑자기 커튼 봉이 고장 나고 다시 달려고 하니 공구가 말썽이고 볼링조차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이즈카는 어른이기에 모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집주인이 커튼 봉을 바꿔주지 않는다면 직접 달아야 하고 마음이 힘들어도 어떻게든 버티고 괜찮다고 말해야 한다. 당장을 버티기에도 힘든 이이즈카는 고향을 찾아갈 여유는 커녕 엄마의 마음이 가득 담긴 채소 박스를 마주할 여유조차 없다.

이이즈카는 조급하다. 나는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도 힘든데 남들은 빠르게 앞서나가는 것 같다. 야간 남자 아르바이트생 타부치는 여행사에 취업했고 야간 여자 아르바이트생 아야노는 남자친구도 있고 해외에 나가보고 싶다는 목표도 있다.

편의점 동료들과의 회식 장면, 타부치가 등장하고 그 타이밍에 맞춰 테이블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새롭게 술을 시킨다. 다들 일찌감치 맥주 한 잔을 비운 것이다. 이이즈카는 홀로 하이볼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다 마시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이즈카는 사람들에게 맞춰 하이볼을 한잔 더 시키고, 빈 잔을 가져가겠다는 직원의 말에 급하게 남은 하이볼을 꿀꺽꿀꺽 마시고 취한 채로 회식을 마무리한다. 이이즈카는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무리를 하곤 한다.

오오토모는 이이즈카가 느끼는 이런 부담을 덜어주는 친구다. 그는 볼링 점수를 내지 못해 속상해하는 이이즈카에게 처음부터 가운데로 가려 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고 술에 취해 2차를 외치는 이이즈카를 집에 보내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작은 술상을 차리고 앉아 이야기를 들어준다. “힘든 일은 없어?”라는 다정한 물음과 “어떻게 항상 맞는 길로 가겠어.”라는 위로는 이이즈카의 붕 떠있는 마음을 토닥인다.

이제 햇볕을 받을 용기가 생긴 이이즈카
이이즈카가 건너던 다리와 커튼의 의미


이이즈카는 전 회사에 출근하다가 갑자기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 생각은 퇴사와 공허함으로 이어졌고 그는 더 이상 행복을 찾지 않게 되었다. 가족, 친구를 만나지도 않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지도 않았다. 따뜻한 햇볕을 받지도 않았고 오늘 하루 고생한 나에게 맛있는 음식 한 번 해주지 않았다. 이이즈카는 처음으로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다리를 매일 쌩하니 건너면서 그때 망가져버린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오토모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집으로 향하던 아침. 다리를 통과하는 이이즈카를 와이드 앵글로만 담아냈던 카메라가 이이즈카의 바로 옆으로 다가오고 이이즈카는 다리 중간에 멈춰 선다. 그리고 그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퇴사 소식을 전한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이이즈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을 전한다.


오래도록 겁내고 외면하고 있었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 이이즈카는 그 일을 해내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보내준 채소를 손질한다. 엄마에게 거짓말하고 있었을 땐 엄마의 응원, 걱정조차 불편함으로 다가왔기에 채소 상자에 손도 대지 못했지만 이제 이이즈카는 엄마의 응원과 걱정, 채소 모두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비록 간장이 없어 요리를 만드는덴 실패했지만 이이즈카는 라면이 아닌 든든한 밥 한 공기를 먹으며 스스로를 보살핀다.

그리고 삐뚜름했던 커튼 봉을 고친 그는 커튼을 걷고 오오토모를 맞이한다. 밝아진 방을 따뜻한 두사람의 목소리가 가득 채운다. 이이즈카의 마음이 공허함이 아닌 따뜻한 햇볕과 위로로 차오르는 순간이다.

햇볕을 누리는 것에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게 아니듯이 위로를 받는 것도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다. 미친 듯이 치열하게 살지 못하거나 누구나 우러러볼 사람이 되지 못했다 해도 우리 모두는 그저 오늘을 살아낸 것만으로도 기특하다고 위로받고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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