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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Oct 12. 2024

빛나는 눈과 유려한 손끝에서 피어나는 감정들

영화 <청설> 리뷰,후기,해석 / 부산국제영화제 홍경 노윤서 청춘 로맨스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뻔하지 않은 청춘 영화

- 배려심이 낳은 오해

- 물속과 물밖으로 나뉘었던 용준과 여름의 세상 / 엔딩 해석

청설 (Hear Me :Our Summer, 2024)

빛나는 눈과 유려한 손끝에서 피어나는 감정들

개봉일 : 2024.11.06.

관람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로맨스

러닝타임 : 109분

감독 : 조선호

출연 : 홍경, 노윤서, 김민주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엔딩크레딧 시작 전 하나


유난스러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길목. 영화 <청설>이 여름, 가을 자매. 용준과 함께 부산을 찾아왔다.

영화를 보기 전엔 ‘누가 봐도 여름에 딱 맞는 영화인데 왜 이 애매한 시기(정식 개봉은 11월)에 관객들을 찾아온 걸까’ 싶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스크린을 가득 채운 싱그러운 여름과 배우들의 말간 얼굴은 이 아쉬움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걸로도 모자라 사뭇 차가워진 공기에 풋풋하고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모든 청춘 배우들에게 바라는 점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데뷔 초 또는 20대에 꼭 풋풋한 청춘 로맨스를 찍어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다시 돌아보기 부끄러울 만큼 오글거리는 청춘물도 좋고 올타임 레전드로 남을 로맨스를 찍어준다면 더 좋다.

올해 나이 29세로 (촬영 당시엔 28세) 마지막 20대를 보내고 있는 홍경 배우는 <청설>을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는 20대 사랑 이야기’라고 하며 이 영화를 내보이게 된 게 굉장히 긴장되고 설렌다고 언급했다.

<청설>속 용준은 그의 긴장과 설렘을 그대로 안고 부드럽고 예쁘게 피어난다. 그리고 앞서 <20세기 소녀>로 부산을 찾았던 노윤서 배우와 첫 청춘 영화 필모그래피를 쌓은 김민주 배우는 여름, 가을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해사한 웃음을 흩뿌리며 앞으로 두 배우가 보여줄 또 다른 사랑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청설>은 동명의 대만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꿈과 사랑을 찾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떠오르는 젊은 배우들의 여름 청춘 로맨스라. 누구나 좋아할만 하지만 자칫하면 무색무취의 영화가 될 위험이 있는 소재를 선택한 이 영화의 차별점은 사랑을 뻔하게 전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극의 주인공인 여름, 가을, 용준이 서로 수어를 통해 소통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말과 감정은 목소리가 아닌 손과 표정을 통해 표현되는데, 배우들의 빛나는 눈과 유려한 손끝에서 피어나는 감정들은 그 어떤 사랑고백보다 담백하고 진실하며 또 새롭다.

일렁일렁 찾아온 사랑


용준과 여름, 가을의 이야기는 텅 빈 자기소개서와 일렁이는 수영장 물로부터 시작된다. 어떻게 대학을 졸업하긴 했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해 자기소개서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 용준, 물속에 있는 동생 가을만을 생각하다가 물 밖에 있는 자신을 잊어버린 여름. 두 사람은 가을이 희망차게 물길을 가르고 있는 수영장에서 처음 만난다.


용준은 수영장 입구에 들어오는 순간 반대편에 서있는 여름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일렁이는 수영장 물처럼 용준의 마음에도 일렁일렁 사랑이 찾아온다. 수영장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온 용준은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만난듯한 설렘을 느끼며 열심히 여름을 향해 나아간다.


영화가 담고 있는 관계, 소통에 대한 메시지 또한 중요하지만 가볍게 훑어만 보더라도 일단 <청설>은 정말 예쁘고 풋풋한 작품이다. 따사로운 여름 햇볕과 초록 잎에 둘러싸인 용준과 여름의 모습, 그들의 반짝이는 눈만 바라보더라도 ‘아, 청춘이다’ 싶은 감탄과 만족감이 자연히 차오른다.

사랑, 서로의 세상을 이해하는 것


용준은 외동아들, 여름은 떨어져사는 부모님을 대신해 수영 선수가 꿈인 동생 가을을 보살피는 언니다. 용준은 목소리로 감정을 표현하고 여름은 손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소통한다.

용준은 이 환경과 소통 방법의 차이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 조금 다르면 어떤가. 똑같은 방법을 이용하면서도 소통이 안돼 싸우는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한데! 용준은 중요한 건 진심이고 자신이 조금 더 배려하고 조심하면 이 또한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여름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용준, 여름. 그리고 가을과 그들의 가족들이 가진 고운 배려심은 소통의 부재와 오해를 낳기도 한다.  수어를 사용할 줄 아는 용준은 다른 이들보다 여름, 가을 자매를 더 잘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용준과 여름 사이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고 여름, 가을 자매 역시 서로를 위해 노력하지만 털어놓지 못할 부채감을 갖고 있다.

영화는 이들의 마음속에 꼭꼭 숨겨진 진심과 온전한 이해라는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달려간다. 서툴고 어색하지만 용준, 여름, 가을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며 서로의 세상으로 뛰어든다.

홍경 배우는 영화의 원작 소설을 읽은 후 이 이야기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나 또한 그의 생각에 공감한다. 서로의 세상을 단단하게 구분 짓고, 같은 세상에 살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실수와 아픔이 넘치는 이 시대에 <청설> 같은 영화는 꼭 필요하다.


- 아래 내용부터 스포 有


용준과 여름, 가을의 세상
물속으로 손을 뻗는 용준, 물속에서 손을 잡는 여름


<청설>엔 소리의 유무로 정해지는 두 개의 세상이 있다. 들리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세상, 듣지 못하는 대신 많은 걸 보며 손을 통해 말하는 사람의 세상. 용준은 전자의 세상에 여름, 가을은 후자의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세상은 물 밖과 물 안으로 구분되거나 인물 사이에 위치한 나무, 차와 같은 물체들을 기준으로 구분된다. 용준이 여름에게 마음을 담은 도시락을 전하는 장면, 호숫가를 거닐며 ‘좋아하는 걸 함께 찾아보자’고 말하는 장면에선 두 사람 사이에 나무가, 데이트를 막 끝낸 용준이 여름에게 고백하려 하는 장면에선 두 사람 사이에 앰뷸런스가 지나가고 여름의 뒤로 응급실 문이 닫히며 신이 전환된다.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선과 문제들은 용준과 여름의 사이를 방해한다.

가을을 위해 함께 소리가 없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여름은 선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동생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 용준과 만나면 감수해야 할 문제들. 여름은 고민이 많다. 용준은 그런 여름을 향해 용기 있게 손을 뻗는다. 그는 여름과 가을의 손을 스피커 위에 올려 함께 음악을 즐기며 잠시 두 세상을 하나로 만들고, 귀에 이어 플러그를 꼽고 소리가 없는 세상을 직접 경험하며 여름의 세상을 이해해간다.

용준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여름은 가을과 마음을 털어놓은 이후 비로소 용준의 세상에 뛰어든다. 용준을 청각장애인이라 오해했던 여름은 수영장에 온몸을 담그고 소리가 차단된 고요함을 느끼며 용준의 세상을 경험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저 상대를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넘어 직접 서로의 세상을 경험해 본 두 사람은 수영장에서 재회한다. 용준은 진심을 담아 다시 손을 내밀고 진심과 진실을 알게 된 여름은 용준의 손을 잡고 그를 물속으로 이끈다. 지금껏 쌓였던 오해가 풀리고 두 사람의 세상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이다.

소통의 부재로 인해 멀리 돌아오긴 했지만 용준과 여름이 그린 오해의 궤적은 모나지 않고 예쁘다. 서로를 배려해 내가 길을 건너가겠다고 바쁘게 파닥이던 손, 같은 스피커 위에 얹어지던 손, 사랑을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가는 손과 사랑한다고 말하는 손. 이 진심이 담긴 손들은 복잡하지만 예쁜 사랑의 궤적을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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