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기,리뷰/ 왓챠, 역사, 실화 사회문제 영화 추천/결말 해석]
개봉일 : 2014.02.27. (한국 기준)
감독 : 스티브 맥퀸
출연 : 치웨텔 에지오포, 마이클 패스벤더, 베네딕트 컴버배치, 브래드 피트, 루피타 뇽, 사라 폴슨, 폴 다노, 알프리 우다드
끝나지 않은 역사에 대해
‘솔로몬 노섭’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노예 12년>
죽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말할 만큼 지옥 같았던 그의 시간은 깊은 상처와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얼룩져있었다. 이가 갈릴만큼 부당하고, 심장이 달아오를 만큼 화가 나는 이 이야기는 결이 달라졌을 뿐 현재도 진행 중이다.
스티븐 맥퀸 감독은 믿기지 않는 역사를 군더더기 없이 직선적으로 담아냈다. 그 누구의 감정도 오버스럽게 표현하지 않으면서, 보는 이들을 치가 떨리는 역사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진실된 감정과 마주했다. 1840년대 미국. 노예 수입이 금지된 후, 자유인이 된 솔로몬 노섭은 부당한 납치를 당한다. 소중한 아내와 아이 둘을 남겨두고 지옥으로 끌려간 그는 자유인이 되기 위해, 다시 살아가기 위해 버티고 또 버틴다. 그가 품고 있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이 세상의 부당함이 나에게 와닿을 때면 온몸이 뒤틀리는듯했다. 그리고 그들의 등에 붉은 피가 스밀때 마다 내 마음은 새빨갛게 익어 부서졌다.
1840년대 미국에서는 노예 수입이 금지되자 흑인 납치 사건이 만연하게 된다. 미국 내 자유주(州)의 흑인을 납치해 노예주(州)로 팔아넘기는 것.
음악가 ‘솔로몬 노섭’, 노예 ‘플랫’! 두 인생을 산 한 남자의 거짓말 같은 실화!
1841년 뉴욕. 아내 그리고 두 명의 아이와 함께 자유로운 삶을 누리던 음악가 솔로몬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은 어느 날 갑자기 납치되어 노예로 팔려간다. 그가 도착한 곳은 노예주 중에서도 악명 높은 루이지애나. 신분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그에게 노예 신분과 ‘플랫’이라는 새 이름이 주어지고, 12년의 시간 동안 두 명의 주인 윌리엄 포드(베네딕트 컴버배치), 에드윈 엡스(마이클 패스벤더)를 만나게 되는데…
단 한순간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12년간의 기록이 펼쳐진다!
<노예 12년>의 주인공 솔로몬 노섭은 자유인이자 예술가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그는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1841년 뉴욕 사라토가. 솔로몬은 아내와 아들, 딸 두 명의 자식들과 자유를 누리며 자신의 인생을 꾸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동료 예술가였던 해밀턴, 브라운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노예 수입이 금지된 후, 일부 백인들은 자유인이 된 흑인들을 납치해 노예상들에 팔아넘겼다. 수많은 흑인들이 희생되었고 솔로몬 또한 악랄한 덫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자유를 온몸으로 만끽하며 살아가던 솔로몬은 ‘내일은 새로 태어난 것처럼 상쾌한 기분일 테니’라는 동료의 말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고, 하루아침에 노예의 신분이 된다. 노예가 되어 팔려간 솔로몬은 본래의 이름을 잃고 ‘플랫’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명 받는다. 이름과 함께 본래의 삶까지 잃게 된 솔로몬은 끝나지 않을 듯 높이 쌓인 차별의 벽 아래서 끔찍한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흑인을 노예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 ‘노예’란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닌 재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배가 출발하기 전 항구로 자신의 노예를 찾으러 온 조너스 레이는 ‘클레멘스는 내 재산이오’라고 말한다. 물건처럼 취급을 받으며 알몸을 내놓고 가축보다 못한 평가를 받아야 했던 그들의 슬픔에 찬 떨림이 가슴속까지 전해진다.
포드 백작은 노예상을 방문해 솔로몬과 엘라이자를 데려간다. 엘라이자는 아이 둘과 잡혀 온 흑인 여성이다. 그녀는 노예로 팔려가는 것보다 두 아이와 떨어지는 것을 더 두려워했다. 포드는 아이들과 엘라이자를 함께 데려가려고 했으나 노예상 제임스는 그녀의 딸을 함께 보내줄 수 없다고 말한다.
내 양심은 동전의 크기를 못 넘어요
사람의 도리보다 자신이 챙길 이익이 중요했던 노예상은 신체능력과 외모를 기준으로 잡혀온 사람들의 값을 매긴다. 인간이라면 해선 안될 일을 서슴없이 벌이는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돈이었다.
도망 쳐봐라 우리가 잡으러 간다
포드의 농장을 관리하는 존은 흑인 노예들에게 손뼉을 치라고 명령하며 그에 맞춰 흑인을 비하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자신 또한 나리라고 부르라며 포드의 일꾼 중에서도 계급을 나누는 모습을 보인다. 존은 포드에게 인정받는 솔로몬을 미워했으며 그를 죽이려고까지 한다.
포드는 솔로몬에게 나름 호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분명 자유인임을 알면서도 노예를 사들이는 포드도 악인이 분명하지만 그전까지 너무 악랄한 사람들만 봐와서 그런지 그가 나름 괜찮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포드는 솔로몬에게 오래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바이올린을 선물한다. 솔로몬은 그 바이올린에 부인과 아이들의 이름을 새긴다. 가족은 솔로몬이 살아가야 할 유일하고 가장 거대한 이유다.
당신은 그들에게 우량 가축일 뿐이에요
엘라이자는 아이들과 생이별을 겪은 후 매일 눈물을 흘린다. 솔로몬은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며 엘라이자를 진정시키려고 하지만 슬픔에 빠진 그녀의 눈엔 솔로몬이 포드를 옹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나도 포드를 나름 인간적인 면모가 있다고 생각할뻔했는데.. 엘라이자의 한마디에 정신이 들었다.
매일 성경을 읽으며 자비로운 주를 모시지만 정작 본인은 박해를 일삼는 모순적인 인물들. 그들에게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커다랗고 일 잘하는 우량 가축일 뿐이었다. 솔로몬은 노예들에게 인간적인 대접을 해주는 포드 밑에서 살아가며 조금씩 노예 신분을 받아들인다. 그가 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가족들의 이름을 새기면서 ‘내가 잘 한다면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갖게 된다. 자유인 솔로몬의 모습을 잊진 않았으나, 잔혹한 현실 속에서 솔로몬은 새로운 생존법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비인간적인 엡스의 모습을 보며 다시 현실을 깨달은 솔로몬은 바이올린을 부수며 다른 탈출법을 시도한다. 바이올린은 노예 제도를 어느 정도 순응하게 된 솔로몬의 심리적 변화를 의미하는 물건이다.
솔로몬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었다. 존이 솔로몬을 죽이기 위해 목을 매달았을 때. 농장관리인 채핀의 중재로 솔로몬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다른 노예 중 그 누구도 솔로몬의 목에 묶인 줄을 끊어주진 못했다. 난 1분 반의 시간 동안 고정된 앵글 안에서 발끝을 땅에 대기 위해 몸부림치던 그의 모습을 보며 숨이 막혔다. 거의 3분에 달하는 시간, 영화 내에선 해가 질 때까지 나무에 매어져있던 솔로몬의 줄을 끊은 건 포드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솔로몬을 구하러 온 사람은 파커였다. 이 이야기에서 검은 피부를 가진 인물들은 박해와 폭력을 당할 뿐, 아무도 도울 수 없는 완전한 약자였다.
솔로몬이 두 번째로 만난 주인은 에드윈 엡스였다. 그 또한 주를 믿는 기독교인이었다. 엡스는 주가 바로 주인이자, 그 주인은 자신이며 자신은 노예들의 주님이라고 말한다. 병충해가 2년째 지속되던 해. 엡스는 ‘내가 어쨌길래 신에게 진노를 샀을까?’ 질문하더니 노예들이 신앙심이 없어 병충해가 난 것이라 결론짓는다. 사탄과 같은 자신의 행동이 신의 분노를 샀을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엡스의 밑에 붙잡혀있는 흑인 여성 ‘팻시’는 생을 마감하고 싶어 한다. 매일 500파운드의 목화를 채취하고, 비누 한 장 쓸 수 없는 짐승만도 못한 삶을 등지는 것이 그녀에게 가장 시급한 목표였다. 솔로몬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팻시는 이 살인은 하느님도 허락하실 거라며 자신을 죽여달라고 빈다.
애초에 무슨 권리로 저 사람들을 부려요?
캐나다 출신 목수 베스는 <노예 12년>에 등장하는 백인 인물 중 몇 안 되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이다. 그는 노예제가 이 나라를 지배하는 끔찍한 병이라고 말한다. 솔로몬은 노예제를 반대하는 베스의 모습에 신뢰감을 얻고 그에게 편지를 전달해 주길 부탁한다. 베스는 위험한 일이라며 망설였지만 결국엔 솔로몬의 편지를 전달해 준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사고를 갖고 있었다면 노예제는 더 오래전에 종식되었을 텐데.. 썩어들어가고 있는 뉴올리언스에서 베스의 존재는 그저 빛에 가까웠다.
신의 눈으로 보면 똑같겠죠
비인간적인 농장주들이 하나같이 믿고 있는, 자비롭고 완전한 존재. 주의 눈으로 본다면 흑인이든 백인이든 같은 하나의 인간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 내에서도 피부색으로 계급을 나누며 박해를 일삼는다. 성경을 그대로 믿으며 그것을 법이라 여기던 그 시대의 미국인들은 성경에 노예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노예제를 주가 허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가장 멍청하고 한심한 믿음이었던 것이다.
지옥 같은 12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솔로몬 앞엔 어느덧 커버린 아이들과 사위, 손주가 있었다. 자신의 성을 딴 소중하고 작은 생명. 솔로몬은 같은 땅 아래 숨 쉬고 있는 소중한 생명들을 위해 책을 펼쳐내고 인권 운동을 지속한다.
나는 가장 멍청하고 한심한 믿음을 가진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이 영화를 꼭 봤으면 한다. 사실 그들이 이 영화를 보고 크게 무언가를 느낄 것이라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본인들이 영화 속 인물들을 욕할 권리가 있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으면 한다. 우리는 강하고 악랄한 채찍 세례에 붉게 물들어간 그들의 등이, 닳고 갈라진 그들의 손톱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찢어진 옷과 고름이 뒤섞여 엉망이 된 등에는 그들이 받은 핍박과 박해, 슬픔과 분노가 어려있다.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자유, 인권. 약 20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어딘가엔 솔로몬과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 있다고 단언하다. 우리는 이에 대한 경각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