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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n 21. 2020

<문라이즈 킹덤> - 태풍이 지나가고 남은 우리의 왕국

[영화 후기,리뷰/ 왓챠, 웨스 앤더슨, 동화같은 영화 추천/결말 해석]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개봉일 :2013.01.31. (한국 기준)

감독 : 웨스 앤더슨

출연 :브루스 윌리스, 빌 머레이, 에드워드 노튼, 틸다 스윈튼, 프란시스 맥도맨드, 자레드 길만, 카라 헤이워드, 제이슨 슈왈츠먼


태풍이 지나가고 남은 우리의 왕국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로 유명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또 다른 느낌의 동화 같은 영화 <문라이즈 킹덤>

일명 대칭 변태로도 유명한 웨스 앤더슨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역시나 엄청난 미술을 뽐내며, 당장이라도 바닷가에 달려가 야영을 하고 싶게 만들었다. 싱그러운 숲의 모습도 좋았지만, 노란빛의 따스한 색감 안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수지의 빨간 원피스와 구조물들이 굉장히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뉴 펜잔스 섬’에 살고 있는 주인공 샘과 수지. 12살이 된 둘은 아직 어리지만, 어른들의 행동을 조금씩 따라 하며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샘과 수지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른들은 방조적이며 경직된 사고를 갖고 있다. 아이들은 틀에 박힌 어른들의 생각과 규칙, 색안경을 쓴 시선에 상처를 입고 자신이 갇혀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카메라에 담긴 뉴 펜잔스 섬은 어릴 적 한번쯤 꿈꿨을 아름답고 동화 같은 섬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동화가 아닌 딱딱한 현실이었다. 




문라이즈 킹덤 시놉시스


12살 소년 소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여름의 끝, 뉴 펜잔스 섬을 발칵 뒤집어놓은 기상천외 실종사건


사고로 가족을 잃고 위탁가정을 전전하는 카키 스카우트의 문제아 '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친구라곤 라디오와 책, 고양이밖에 없는 외톨이 '수지' 1년 전, 교회에서 단체로 연극을 보다가 몰래 빠져나온 '샘'은 까마귀 분장을 한 '수지'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고, 그 후로 둘은 펜팔을 통해 감춰왔던 상처와 외로움을 나누며 점점 가까워진다. 서로를 보듬어주는 유일한 소울메이트이자 연인이 된 '샘'과 '수지'는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아지트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하고, 필요한 준비물들을 챙겨 각자 약속 장소로 향한다.


몇 시간 후 '샘'과 '수지'의 실종사건으로 인해 펜잔스 섬은 발칵 뒤집히고, 수지의 부모님과 카키 스카우트 대원들은 둘의 행방을 찾아 수색작전을 벌이기 시작하는데... 과연 '샘'과 '수지'의 애틋한 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1965년 9월 2일, 뉴 펜잔스섬. 빨간색 코트를 입은 지리 선생님이자 이 이야기의 해설가가 등장한다. 샘과 수지의 이야기는 태풍이 뉴 펜잔스섬을 덮치기 3일 전부터 시작된다. ‘아이반호 카키 스카우트 캠프’는 남자아이들이 야영을 배우고 생존능력을 키우는 어린이 캠프다. 나무집을 짓는다는 아이는 저 하늘 꼭대기에 닿을 듯 높은 나무집을 지었고, 해충을 잡는다는 아이는 횃불과 가스를 든 채 바닥을 바라보고 있다. 캠프의 관리자이자 대장인 ‘랜디’는 새로운 날을 맞이해 캠프를 전반적으로 점검하기 시작한다. 아침식사 시간이 되고, 아이들은 종소리에 맞춰 식탁으로 모여앉는다. 좌우 대칭이 완벽한 식탁과 의자의 수. 근데 이가 빠진 것처럼 의자 하나가 비어있다. 의자의 주인공은 ‘샘 체쿠스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샘은 더 이상 스카우트 캠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쪽지를 남긴채, 텐트에 구멍을 뚫고 탈출한다. 사람들은 그런 샘에게 문제가 있는 아이라고 말한다. 샘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위탁가정을 전전한다. 어른도 극복하기 힘든 커다란 슬픔을 홀로 맞이한 아이의 마음은 절대 안정적일 수 없었고, 어른들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같이 캠프 활동을 하고 있는 아이들도 돌은 애라며 샘에게 거리를 둔다. 



수지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다. 수지에 비해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던 동생들은 함께 뭉쳐 시간을 보내지만, 수지는 창틀에 홀로 걸터앉아 책을 본다. 수지에게 친구는 책, 음악, 고양이뿐이었다. 부모님은 애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한다. 그들의 마음을 눈치챈 것인지 수지는 도서관에서 ‘문제아 키우기’라는 제목의 책을 가져왔고, 떠나기 위해 챙긴 짐가방 안에도 그 책을 넣어둔다. 어른들은 아이가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수지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샘과 수지는 1년 전, 세인트 잭 교회에서 ‘노아의 홍수’를 공연하던 날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여러 종류의 새 분장을 한 여자아이들이 거울 앞에 앉아있고, 그중에 가장 까만 새. 까마귀 분장을 한 수지에게 마음을 뺏긴 샘은 수지를 잊지 못하고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둘은 1년의 시간 동안 자신의 고민과 상대에게 전하는 위로의 말들을 가득 담아 편지를 보낸다. 샘과 수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한 애 또는 문제아, 구제불능이라고 불리는 아이였고,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했다. 샘은 몽유병이 있어 실수로 불을 질렀고, 수지는 돌을 던져서 유리창을 깬다. 같은 아픔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둘은 서로를 절대 이상하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수지가 야영을 위해 챙긴 커다란 가방 속에서 책과 CD, 녹음기와 같은 실용적이지 않은 물건들만 나왔을 때도, 샘을 찾으러 온 캠프 아이들이 ‘저 자식 돌았거든’이라고 말했을 때도. 둘은 서로에게 이상하다거나 잘못됐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문라이즈 킹덤>에 나오는 아이들은 어른처럼 행동하고 싶어 하지만, 아직 어린 그들은 때론 엉성하기도 하며, 때로는 어른들보다 더 진실된 모습을 보여준다. 어른들의 추측처럼 5.2km 고랑에 도착한 샘과 수지는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을 한다. 그 후, 속옷만 입은 채 젖은 옷을 말려두지만 성에 대한 관념이나 기준이 없는 아이들은 부끄러움이나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며 애정행각을 벌이는 둘의 모습은 여느 어른들과 다르지 않다.



캠프의 아이들 또한 어른들의 모습을 따라 하며 공무집행 방해라는 단어를 쓰거나, 자신들만의 사회를 만들어 집단으로 행동한다. 샘과 수지가 서로를 진실되게 사랑하는 것 같다며 결혼을 추진하는 모습 또한 어른들의 모습을 따라 하는듯하다. 아직 어린 모습을 한 아이들이 어른들처럼 행동하는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어쩌면 어른인 우리도 저 아이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 또는 저 아이들이 ‘예전의 나’같다는 들기도 했다.



<문라이즈 킹덤>에 나오는 어른들은 모두 무관심하고 관조적 태도를 보인다. 샘의 위탁가정 부모는 샘이 사고를 친다는 이유로 ‘그 애를 다시는 안 받기로 결정했습니다.’라는 한마디와 함께, 아주 가볍게 아이를 내쳐버린다. 부모를 잃은 아이의 마음은 헤아릴 생각이 없어 보이는 마음이 매우 좁은 어른의 모습이다.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사회복지사’는 마치 감옥 같은 보호소에 샘을 다시 데려가려고 하며 전기 치료 같은 수단을 아무렇지 않게 운운한다. 수지의 엄마 아빠인 로라와 월트는 수지에게 무심했으며 ‘두 번 말 안 한다’는 말꼬리와 함께 아이들에게 일상적인 압박과 명령을 가한다. 거기에 엄마인 로라는 샤프 소장과 바람까지 피우며 수지의 마음을 뒤엉키게 만든다.



어른들 중 아이들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샤프 소장과 캠프의 책임자 랜디뿐이었다. 랜디는 질서를 칼같이 지켜야 하는 캠프를 책임지면서 경직된 어른의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원래 직업은 교사였다. 어른들에게 잡혀 기죽어있는 샘의 건너편에 앉아 위로의 말을 건네는 어른은 랜디가 유일했고, 홍수가 났을 때 총대장을 대신해 아이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것도 랜디였다. 샤프 소장은 사회복지사와 샘의 위탁가정 부모와 대립을 이룬다. 샤프 소장은 아이를 받지 않겠다는 위탁가정 부모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게 전기 충격 이야기를 꺼내는 사회복지사에게 어이없음을 느낀다. 당장 갈 곳이 없는 샘을 데려가 함께 저녁을 먹던 샤프 소장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너무 위험한 실수는 막는 게 어른들 일이란다.’라고 얘기하며 샘을 위로한다. 샤프는 그렇게 샘에게 손을 내밀었고, 위태로운 탑 위에 서있던 아이는 따스한 어른의 손을 잡는다. 



어른들의 눈에 샘이 선물한 귀걸이는 그저 낚싯바늘이었고, 아이들의 감정은 장난 같은것이었다. 샘과 수지는 ‘서로 사랑해서 같이 있고 싶었다’고 얘기하지만 어른들은 그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이들은 텐트의 지퍼를 열어야 밖으로 나갈 수 있지만, 어른들은 텐트를 통째로 가볍게 들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졌다. 하지만 수지의 부모와 다른 어른들은 힘으로 아이들을 지켜주기보단 상하관계를 수립한다.



그리고 그에 눌려있던 아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며 어른들의 세계에 맞선다. 샘과 수지는 비슷한 상처를 위로하며 우정과 사랑을 나눴고, 샘을 이상하게 바라보던 레드포드와 캠프의 아이들은 ‘진짜 사나이가 되자’는 캠프 참여의 목표처럼 ‘사나이답게 동지를 돕자’며 둘을 돕기 시작한다.



영화의 첫 부분에서 수지의 동생들이 듣고 있는 라디오에선 ‘오케스트라의 많은 악기는 어떻게 같이 연주할까요?’라는 질문이 나온다. 그에 대한 답은 ‘각 악기별로 연주하고, 또 전체가 다 같이 연주하며 하나의 곡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금관악기, 목관악기, 현악기, 타악기처럼 각기 다른 이야기와 특징을 갖고 있던 아이들은 하나가 되어 아이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1965년 뉴 펜잔스 섬에 불어닥친 태풍은 샘과 수지가 야영을 했던 5.2km 고랑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렸지만, 그 해 가을을 엄청난 풍년으로 만들어주었다. 샘과 수지가 함께 일으켰던 작은 일탈의 바람이 지나간 후 샘에겐 새로운 가족이 생겼고, 샘과 수지는 서로에게 더욱 의지하며 사랑을 키워간다. 영화의 처음엔 가위와 함께 걸려있는 수지 가족의 빨간 집이 나오고, 영화의 마지막엔 샘이 그린 5.2km 고랑의 그림이 나온다. 태풍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샘과 수지에겐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은 집이 아닌,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둘만의 왕국이 생겼다.



아이들이 만들어낸, 아이들의 사랑을 위한 작은 왕국 <문라이즈 킹덤>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작은 섬에서 일어난 일탈의 바람이 지나가는 과정을 동화처럼, 때론 현실처럼 풀어냈다.

더 이상 동심이라곤 없을 것 같았던 마음에 다시 상상력을 채워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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