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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n 23. 2020

<사마에게> - ‘두렵지만 포기하지 않은 이유’

[영화 후기,리뷰/ 왓챠,전쟁 다큐멘터리 영화 추천/시리아 내전]


사마에게 (For Sama)

개봉일 : 2020.01.23. (한국 기준)

감독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와츠

출연 : 와드 알-카팁, 사마 알-카팁, 함자 알-카팁


두렵지만 포기하지 않은 이유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민주화 운동으로부터 약 10년. 지난 3월 러시아와 터키의 중재로 정부군과 반군이 휴전상태에 들어갔지만, 이번 달에도 공습으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했고 전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사마에게>는 뉴스 몇 줄을 읽으며 알 수 있는 표면적인 정보가 아닌, 전쟁의 한가운데 서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것은 그들의 현실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며 기대하는 오락성이나 감성의 충전, 정해진 결말 같은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 그대신 흔들리는 카메라 속엔 쉼 없이 터지는 폭탄 소리, 검은 먼지를 뚫고 피어나는 사람들의 굳센 다짐과 감정이 담겨있다. 사마의 엄마이자 공습이 펼쳐지는 하늘 아래 굳건히 버티고 있는 여성 ‘와드 알카 팁’은 부당하고 잔인한 세상 속에서 자신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전하기 위해 카메라를 든다.



‘시리아 내전’이라고 하면 뉴스에서 본 공습 이야기가 전부였다. ‘수도에 폭탄이 떨어졌다. 건물이 무너졌다.’ 같은 그저 한 줄로 정리되는 정보들만 봐온 나에게 <사마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자 슬픔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이 떠올랐다. ‘그 시대에 저항의 깃발을 들었던 사람들에게도 카메라가 있었다면 이런 이야기들을 더욱 생생하게 전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민주화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 피의 길을 걸어온 그들과 <사마에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같은 꿈을 꾸고 있다. 나의 아이에게 물려줄 세상을, 나의 아이가 바라볼 세상을 그 무엇보다도 밝고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꿈. 마음이 천 갈래로 찢겨 나가도, 죽음이 눈앞에 닥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 바로 사마를 위해서였다. 




사마에게 시놉시스


자유를 꿈꿨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나의 도시 알레포

사마, 이곳에서 네가 첫 울음을 터뜨렸단다

이런 세상에 눈 뜨게 해서 미안해하지만 엄마는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어

사마, 왜 엄마와 아빠가 여기 남았는지, 우리가 뭘 위해 싸웠는지, 이제 그 이야기를 들려주려 해. 사마, 이 영화를 네게 바친다 



시리아 북부의 중심 도시 ‘알레포. 건물이 으스러지고 귀가 터질 것 같은 폭격이 일상이 되어버린 도시엔 아직 사람들이 남아있다. 위험한 것을 알고 있지만 고향을 위해 남아 투쟁을 지속하고 있는 사람들. 마스크를 쓰고 벽에 붙어 공습이 끝나길 기다리는 어른들 사이엔 어린아이들과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아기도 함께 있다. 그중 가장 어린아이 ‘사마’. 와드의 아이이자 알레포 주민들의 빛과 희망 같은 존재. 자신의 아이 사마를 위해 엄마는 카메라를 들고 이 땅을 무너트리고 있는 폭격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5년 전(촬영을 마친 시점을 기준으로) 시작된 민주화 운동부터 알레포를 떠날 때까지.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이 담긴 몸짓들을 가장 진실되게 알릴 수 있는 유일한 도구는 휴대폰으로 영상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와드는 그 생생한 움직임을 담아 온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카메라를 든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장 의료팀으로 일하고 있는 ‘함자’와 다른 친구들의 모습도 와드의 카메라 안에 생생하게 담긴다. 이제는 세상을 떠나 더 이상 볼 수 없는 친구들도 그녀가 찍은 영상 속에 영원히 남아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정부군은 죄가 없는 아이들까지 무자비로 학살한다. 저항을 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경고의 의미로 대학살을 진행하며 시작된 잔인한 내전. ‘폭탄이 떨어졌다’라는 뉴스에선 폭탄이 떨어졌다는 사실만을 전하지만, 관찰자가 아닌 그걸 직접 겪은 내부자의 시선에 담긴 세상엔 붉은색이 가득했다. 너무도 진한 그 색은 눈을 감아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눈물을 흘릴 틈도 없이 무너져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그들은 눈물이 아닌 붉은 피를 흘린다. 임시로 만들어진 병원의 흰 바닥엔 사람들이 흘린 피가 가득했고, 의사들은 그 피를 닦으며 다음 환자를 기다린다. 



아이가 뱃속에 생명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을 때, 알레포의 엄마들은 가장 먼저 사별을 생각해야 했다. 와드는 죽고 싶지 않으며, 죽음이 두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두려운 건 사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엄마를 먼저 잃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그녀는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묻기 전, 먼저 세상을 떠난 그 아이의 엄마가 부럽다고 말한다. 아이를 잃은 엄마를 볼 때면, 그 엄마에게서 자신을, 먼저 떠난 아이에게서 사마를 본다. 



사마는 전쟁 중에 태어난 아이다. 그래서 겪어본 것이 전쟁밖에 없다. 어른들은 공습이 일어날 때마다 몸을 웅크리고 놀라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큰 소리와 건물의 흔들림을 일생 동안 겪은 아이는 그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에 울음을 터트리지 않으며, 사람들이 동요해도 칭얼거림 한번 내뱉지 않는 아이. 이 아이의 반응을 보는 내내 마음이 참 아팠다. 무언가가 터지고 깨지고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게 일생의 전부였다니. 와드는 사마를 보면 먼저 떠난 사람들에 대한 슬픔과 새로운 희망이 떠오른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엔 ‘너를 위해 이 도시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자리하고 있다. 



직접 심고 가꾼 식물들이 공습 한 번에 순식간에 전부 사라지고, 병원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흔들릴 만큼 강한 공습이 반복되어도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수록 그들은 더욱 강한 유대감을 만들어냈고, 사랑으로 서로를 다독이며 새로운 희망과 생명을 탄생시킨다.



와드와 그녀의 동료들에게 삶의 단비가 되어준 아이 ‘사마’.

‘사마’라는 이름은 ‘하늘’을 뜻한다. 공습이 없고 태양과 구름이 떠있는, 새가 지저귀는 아름다운 하늘을 가졌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을 담은 이름이다. 물자가 떨어지고, 극한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결국 알레포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들에겐 꺼지지 않는 희망이 있다. 도시를 다시 세울 건축가라는 꿈을 가진 아이들. 기적적으로 살아난 산모와 아기, 마당에서 가져온 화분. 둘째 아이 타이마. 



평생을 살아온 집에서 마지막으로 챙겨온 화분이 새로운 땅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그들의 저항은 알레포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참혹한 전쟁의 중심에서 담아낸 5년의 시간이 기적적으로 세상에 나왔다. <사마에게>의 감독이자 엄마인 그녀가 담아낸 영상 안엔 전쟁의 참상과 죽음을 감내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세상이 담겨있다. 내 딸 사마를 위해, 이 세상 어딘가에 숨 쉬고 있을 모든 사마를 위해 멈출 수 없었던 저항의 기록이 담긴 <사마에게>.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함께 마음을 나눠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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