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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l 11. 2020

<오징어와 고래> - '흔들림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영화 후기,리뷰/ 왓챠, 가족, 성장,노아바움백 영화 추천/결말 해석]



오징어와 고래 (The Squid And The Whale)


감독 : 노아 바움백

출연 : 제프 다니엘스, 로라 리니, 제시 아이젠버그, 오웬 클라인, 헬리 페이퍼, 윌리암 볼드윈                                                                               

흔들림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시선을 담아낸 영화 <오징어와 고래>. 노아 바움백 감독의 초기 작품 중 하나다. 최근 공개된 노아 바움백 감독의 작품 <결혼 이야기>에선, 사랑했지만 결혼생활에 지친 한 부부의 시선과 현실이 담겨있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14년 전에 공개된 이 영화 <오징어와 고래>도 역시 결혼 생활과 현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오징어와 고래>엔 결혼생활의 이면과 아이들이 느끼는 혼란함이 현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영화는 부모가 처음이기에 서툴고, 본인의 상처를 가리기 급급해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부모 ‘버나드’와 ‘조안’의 밑에서 자란 아들 월트, 프랭크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첫째 아들 월트 역을 맡은 ‘제시 아이젠버그’는 <좀비랜드>와 <나우 유 씨미>, <저스티스 리그>등의 작품에서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였는데, <오징어와 고래>에서는 조금 더 풋풋하고 어린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가정은 단란하면서도 인위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오징어와 고래>라는 제목만 본다면 동화 같고 몽환적인 아이들의 성장기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월트와 프랭크의 성장기는 달콤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았다.




오징어와 고래 시놉시스


17년을 함께 한 부부가 이혼하고 두 아이는 두 집을 오가며 생활한다. 아이들은 한창 성장할 나이에 혼란을 겪지만, 부부는 이를 돌보지 못하고 서로에게 상처 주며 외도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이 이야기는 아빠 버나드와 첫째 월트, 엄마 조안과 둘째 프랭크가 팀을 나누어 테니스를 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1986년 뉴욕 브루클린 파크 슬롭. 따로 특별하지도, 문제 있어 보이지도 않는 가정의 모습. 엄마와 아빠는 조금 예민한 듯 보이지만 아이들의 말에 성실히 답한다. 



버나드는 등단한지 오래된 작가다. 한때 인기 작가였던 그는 오랜 시간 신간을 발행하지 못한다. 대신 아이들을 가르치며 문학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다. 조안은 남편 버나드의 영향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잡지에 글을 발행할만큼 만만치않은 실력을 가진 신예 작가다. 첫째 월트는 아빠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며 정말 난해하지만 대단한 글이라고 칭찬하고, 둘째 프랭크는 엄마가 아빠보다 유명해질지 모른다고 얘기한다. 테니스 시합에서 갈랐던 팀처럼 월트는 아빠를, 프랭크는 엄마를 더 좋아한다.



단한해 보이는 버나드 가족. 하지만 그 사이엔 조금씩 찬바람이 들이치고 있었다. 조안은 버나드 몰래 프랭크의 테니스 선생님 아이반과 만나고 있었다. 결혼을 약속한지 17년, 서로 지쳐있던 조안과 버나드는 빠르게 이혼을 결심하고 아이들에게 이혼과 별거, 공동육아를 선언한다. 그 사이에 껴버린 아이들은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양이는 어떡해요?’라고 물을뿐이다.



월터는 아빠를 통해 엄마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후 엄마와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둘째 프랭크는 자신이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 알지 못하고, 거북이가 파충류인지 양서류인지도 관심 없는 아빠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프랭크는 운동경기중 잘 풀리지 않으면 ‘Fuck’이라고 소리치는 아빠의 행동을 무의식중에 배웠지만, 아빠의 행동을 좋아하진 않는다.



버나드가 원래 집의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공원 건너편 집을 구하고, 빠르게 별거가 시작된다. 조안은 혼란스러워하는 월터에게 ‘주변 친구들도 부모님이 이혼하시지 않았니?’라고 묻는다. 월터는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은 이혼했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고 답한다. 당연히 견고할거라 믿었던 부모의 존재가 깨진 순간, 월터의 세상도 반으로 쪼개지고 만다. 월터의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공동육아? 그거 X같아’라고 말한다. 맞다. 아이들에게 공동육아는 정말 X같은 것이었다. 공동육아가 시작되고 엄마 아빠는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고, 각자의 집에서 새로운 이성과 관계를 맺으며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그들은 ‘17년 동안 힘들었다’는 변명 하나로, 평생을 부모만 바라오며 살아온 아이들의 상처는 들여다보지 않는다. 조안은 아이반과의 외도를 아들들에게 들키고, 버나드는 자신을 따르는 학생 케이트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프랭크를 돌보는 날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



흔들리는 부모의 아래지만 아이들은 쉼 없이 자란다. 2차 성징 시기를 지나고, 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월터와 프랭크는 성행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월터는 여자친구를 만들고, 프랭크는 자위를 반복하고, 맥주를 든채 거울을 바라보며 마치 자신이 어른이 된듯한 기분에 취한다. 하지만 월터와 프랭크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월터는 소피와의 잠자리를 제대로 해내지 못했고, 월터는 엄마의 서랍에서 콘돔을 꺼내 자신의 성기에 껴보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아이들은 이제 다 컸다고, 어른들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불안함을 달래보지만 엄마 아빠의 이혼과 외도에 대한 충격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불안한 아이들의 심리는 거짓말과 일탈행위로 나타난다. 월터는 Hey You를 자작곡이라 얘기하고, 프랭크는 술을 마시거나 자신의 정액을 학교 사물함에 묻히는 등 일탈 행위를 보인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조안과 버나드는 뒤늦게 상황이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바라보며 자랐다. 든든하게 아이들을 지켜주는 등이 아닌,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채 돌려버린 등을 말이다. 조안은 ‘가끔 너희 없이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단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오래된 외도를 합리화한다. 버나드는 ‘나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았지만, 너네 엄마 때문에 만나지 못했다’, ‘젊을 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로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여성과 관계를 맺는다. 부모는 아이들의 상처를 돌아보지 않았다. 프랭크는 술을 마시고 쓰러지기 전, 아이반과 조안이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바라본다. 두 사람이 떠나고 창밖을 바라보는 프랭크의 등이 어찌나 작고 여려 보였는지 모르겠다. 



월터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상담을 받게 된다. 부정적인 기억이 아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라는 상담사의 말에 월터는 ‘자연사 박물관에 갔을 때’라고 얘기한다. 월터는 오징어와 고래가 싸우는 모형을 볼 때면 눈을 가릴 만큼 무서웠지만,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 덜 무서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 아빠는 어디에 있었는지, 월터는 기억하지 못한다. 어쩌면 월터는 엄마 아빠의 싸움을 오래전부터 눈치채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혼 사실을 얘기한 후, 아이들의 언제부터였냐는 질문에 버나드와 조안은 둘 사이에 문제가 생긴지는 꽤 오래됐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만큼 오래된 월터의 기억 속, 월터가 고래와 오징어의 싸움을 보며 엄마 아빠의 싸움을 떠올리고, 그것을 두려워하게 됐을 수도 있다. 월터가 고래와 오징어 모형을 보던 순간에도 아빠는 엄마 옆에 없었으니 말이다. 프랭크는 조안에게 묻는다 ‘우리가 같이 갈라파고스에 갈 수 있을까요?’아이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엔 완전한 부모의 모습이 없다. 과거엔 아빠의 모습이 기억나지 않고, 현재엔 엄마 아빠가 따로 살고 있으며, 미래에 함께 여행을 갈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월터는 자연사 박물관으로 달려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오징어와 고래 모형을 똑바로 쳐다본다. 그리고 공동육아로 인해 조안과 버나드의 집을 옮겨 다녔던 고양이가 문밖으로 튀어나간다. 두려워했던 존재와 눈을 마주치는 월터의 모습과 조안과 버나드에 의해 집을 옮겨 다녔던 고양이가 문밖으로 튀어나간 것은 아이들의 성장을 의미한다. 물론 아이들이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도움으로부터 바로 독립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부모가 남긴 상처와 충격에 대해선 조금씩 극복하며,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불안한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도, 쉼 없이 자라고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성장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아닌, 길게 펼쳐질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힘을 아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흔들리는 가정환경 속에서도 문제를 직면하며,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기 시작하는 월터의 모습을 보면서 이 아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얼마나 강해졌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이런 상처와 함께 자라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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