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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l 22. 2020

<꿈의 제인> - '차가운 세상의 끝에서 꾸던 꿈'

[영화 후기,리뷰/ 왓챠, 한국 독립영화, 구교환 영화 추천/결말 해석]


꿈의 제인 (Jane)

개봉 : 2017.05.31.

감독 : 조현훈

출연 : 이민지, 구교환, 이주영, 박강섭, 이석형, 박현영, 박경혜, 김영우

                                                                        

차가운 세상의 끝에서 꾸던 꿈


최근 개봉한 <반도>의 빛나는 악역으로 주목받은 구교환 배우와 이태원 클라쓰, 야구소녀로 대중들에게 진한 눈도장을 찍은 이주영 배우의 조합을 볼 수 있는 영화 <꿈의 제인>

두 배우는 작년 개봉한 영화 <메기>에서 오래된 연인을 연기하기도 했다. 메기를 처음 봤을 땐 이주영 배우가 눈에 확 들어왔었기에 구교환 배우는 ‘독특한 배우’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반도를 본 후 메기를 다시 보고, 꿈의 제인을 보고 나니 구교환 배우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목소리에 홀린듯한 느낌이 든다.




<반도>의 서 대위를 보며 구교환이라는 배우를 새로 알게 된 분들이 꽤나 많을 것이다. 영화 속 서 대위 캐릭터는 주연이 아님에도 관객들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하지만 일부 팬분들은 반도를 보고 ‘서 대위 캐릭터가 구교환 배우의 매력을 다 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처음엔 의아했지만.. <꿈의 제인>을 보며 아-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구나.. 하고 바로 납득했다. 이 분 진짜 보통이 아니구나...



<꿈의 제인>은 사람들 곁에 남는 법을 모르는, 모든 게 거짓인 인생을 살고 있는 유약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다. 난 언제나 진심을 쏟아붓는데, 남들은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다. 언젠간 내 진심이 닿을 거라 믿지만 그건 혼자만의 희망으로 끝나고 만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포스터 이미지와는 조금 멀리 위치한 그들의 인생은 아름답지 않다. 주인공 소현과 지수는 가출 청소년, 꿈같은 여인 제인은 트랜스젠더다. 다수가 말하는 ‘정상’의 범위를 넘어선 인물들은 팍팍한 모래밭 길을 걷고 있다. 인생은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함께 할 수는 있었다. 아니, 한자리에 모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맞는 말이지만... 

다수가 인정해 주지 않는 비주류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아픔과 희망, 절망을 과장 없이 담아낸 이 영화는 마치 슬프고 아픈 꿈같다. 꿈을 벗어나 눈을 떴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게 되는 그런 꿈 말이다.




꿈의 제인 시놉시스


“불행한 인생 혼자 살아 뭐 하니, 그래서 다 같이 사는 거야.”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운 소녀 ‘소현’은 어떻게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매일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그런 ‘소현’을 받아주는 것은 ‘정호’ 오빠뿐이다. ‘정호’마저 소현을 떠나고 누구라도 자신을 찾아주길 바라던 어느 날, 꿈결처럼 미스터리한 여인 '제인'이 나타나고, 그날 이후 소현은 조금씩 ‘제인’과의 시시한 행복을 꿈꾸기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아리고 쓰리고, 까슬하다. 이 영화의 첫인상이다. 영화는 소현의 나레이션부터 시작된다. "저는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거예요." 청소년기를 지나고 있는 어린 소녀의 모든 걸 초탈한듯한 허무한 목소리는 방향성을 잃은 채 허공에 부유하고 있다. 소현은 가출 청소년이다. 어쩌다 혼자 남게 됐는지 그 앞은 나오지 않지만 유일한 말상대인 ‘정호’에게 외면당했다는 것, 그리고 엄마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한마디 만으로도 소현이 얼마나 외로운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엄마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게 진실인지 거짓인진 알 수 없지만 소현이 이미 완벽히 고립되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제인은 소현이처럼 혼자 똑 떨어진 채 길을 떠도는 가출 청소년들을 자신의 집안에 들인다. 흔한 가출팸의 모습과 다르게 정말 가족 같은 제인과 아이들의 모습. 제인은 아이들을 딸이라 부르고 아이들은 제인을 엄마라 부른다. 일을 하고 돈을 벌어오지 않아도 현관문을 열 수 있었고, 눈을 뜨면 따스한 아침밥이 기다리고 있는 집. 제인은 왜 일을 시키지 않냐는 소현의 물음에 "너네가 일을 왜 하니?, 어차피 나이 좀 먹으면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는데."라고 답한다.



제인은 인생이란 불행을 타고나는 것이고, 그 불행은 죽음까지 함께 가며, 행복은 그 사이에 찔끔 흩뿌려지는 것이라 말한다. 개 같은 인생. 그게 제인의 인생이다. 사람들은 어딘가 특별해 보이는 제인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제인의 중심은 그녀의 머리에, 마음에 존재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제인의 신체 중심에 위치한 특징만을 생각하며 그녀의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제인이 말하는 건 모두 거짓이 되어 다른 이들의 귀에 들어가지 못 한채 그 주변만 떠돈다.



제인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제인은 소현의 다친 발가락을 바라보며 어쩌다 그렇게 되었느냐 묻는다. 소현은 짧게 말을 마무리 짓고, 제인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가끔은 발가락이 있는 듯 간지럽다는 소현의 말에도 제인은 특별히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말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라 예상한 소현은 제인의 반응이 신기하기만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발가락이지만 간지러울 수 있고, 제인은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진실이 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소현은 그런 제인의 모습에 신기함을 느끼고 제인을 동경하게 된다. 꿈같은 여인 제인에게 빠진 후 소현은 더 이상 정호를 찾지 않는다. 소현이 정호를 찾는 이유가 ‘외롭고 의지하고 싶어서’가 아닌 ‘제인을 위해서’로 바뀌고, 소현은 결국 정호를 만나지 않은 채 제인이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유일한 사람 정호의 존재를 벗어나, 나를 사람들 사이에 꽉 붙들어 매줄 것 같은 제인에게 향한 것이다.



제인은 소현처럼 ‘정호’를 좋아했다. 제인은 자신을 떠나버린 정호를 미워하지 못한다.


"매일 밤 꿈에서 정호랑 난 항상 연인이야. 그럼 됐어. 내가 그렇게 믿으면"


제인은 항상 꿈을 꾸고 있다. 매일 밤 정호와 연인이 되는 꿈, 개 같은 인생이지만 다 같이 살아가는 꿈. 하지만 세상은 제인의 꿈을 오래 두고 보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인 세상에서 제인이 서있을 자리는 없었다. 언젠가는 내 진심이 전해지겠지, 다른 사람들도 나를 이해해 주겠지.. 제인은 항상 진심을 표현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결과의 대부분은 실패였다. 항상 개 같다가도 가끔이라도 행복하다면, 가끔 즐거운 날이 있다면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가자는 제인의 말이 마음을 쿡쿡 찌른다. 제인을 바라보면 여러 번 구겨져 수없이 주름 간 종이를 억지로 펴놓은듯한 느낌이 든다. 담담하고 빳빳한 자세지만 이미 버티기 힘들 만큼 구겨진 제인은 자살을 선택한다.



소현은 제인의 죽음 후 다른 가출팸에 들어간다. 폭력적인 가출팸 아빠와 성매매를 통해 돈을 버는 가출팸. 제인의 집에서 지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생활이 이어지고, 지수가 팸에 새로 들어온다. 지수는 제인처럼 삶에 대해 얕은 희망을 품고 있다.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모아 동생과 방을 얻겠다는 지수의 얼굴엔 미래에 대한 희망이 비친다. 지수는 소현에게 자신의 동생과 비슷한 것 같다며 살갑게 말을 붙인다. 따스한 말 한마디를 시작으로, 소현에게 지수는 제인의 자리를 대신할 희망이자 의지하고픈 기둥이 된다. 소현은 지수의 배달 오토바이 뒤편에 앉아 지수의 옆구리를 꽉 잡아본다.


                                                                 

전 언니랑 상황이 달라요.


소현은 가출팸과는 다른 지수에게 의지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수는 가출팸을 꾸리는 게 아닌 동생과 함께 사는 거라며 소현의 부탁을 거절한다. 소현은 지수의 거절의사를 듣고 순간적으로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지수는 끝까지 소현에게 살가운 손길을 건넨다. 팸 아빠가 신고식을 위해 지수를 범인으로 몰던 순간, 지수는 소현을 보며 "너한테도 이랬어?"라고 묻는다. 소현은 지수의 말을 듣고도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는다. 지수가 궁지에 몰린 상황임에도 소현은 어떤 말도 하지 못했고, 잠겨버린 자물쇠를 딸 능력도 없었다. 지수는 꿈이 있었고, 소현은 꿈이 없다. 그래서 이겨내야 할 이유도, 그럴만한 원동력도 없다. 그저 사람들 사이에 섞이고 싶다는 바람만 갖고 있던 소현은 지수처럼 발버둥 칠 힘이 없다. 지수의 초등학교 동창 ‘대포’는 지수를 구하겠다며 먼저 자리를 뜨고, 소현은 무력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소현은 결국 의지할 곳을 모두 잃게 된다. 부유하던 삶의 새로운 희망이자 엄마였던 제인의 죽음, 가출팸과는 다른 살가운 언니 지수의 죽음. 소현은 창 너머로 추락한 둘의 육신을 가장 먼저 발견한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내 진심을 알아주겠지, 언젠가는 동생과 자유롭게 살 수 있겠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던 두 사람에게 찾아온 건 희망이 아닌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과의 충돌이었다. 



제인은 ‘뉴 월드’라는 이름의 바에서 무대에 서고, 관객들의 애인이 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제인에게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생은 오지 않았다. 소현도 마찬가지다. 지수의 죽음 이후, 지수를 찾는 대포의 연락을 받은 소현은 대포를 만날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거짓말을 한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던 대포는 소현에게 화를 내는데, 소현은 그저 “어떻게 해야 같이 있을 수 있을지, 방법을 모르겠어요.“라며 흐느낄 뿐이다. 



소현에게 제인과 지수의 등장은 꿈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다 사라져버렸다. 다시 정호에게 버림받았던 모텔방으로 돌아간 소현은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사실 그 모텔방은 정호에게 버림받았던 곳보다는 제인과 다시 만났던 곳이라고 말하는 게 더 맞겠다. 새로운 꿈을 만난 그곳. 소현은 그곳에 돌아가면 누군가가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다. 소현은 혼자 남겨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싫었지만, 꿈과 같은 그녀가 사라지고 다시 홀로 남은 현실로 돌아온다.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태어나자마자 모든 걸 부정당했던, 거짓을 말하고 다녔던 제인은 꼬일 대로 꼬인 인생 속에 빠르게 끼어들었다 빠져나가는 작은 행복을 연료로 살아가고 있었다. 트랜스젠더 제인, 가출 청소년 아이들에게 세상은 끝없는 구덩이였을 것이다. 벽을 짚고 기어올라도 결국엔 미끄러지는 끝없는 구덩이. 제인은 작은 행복의 소중함을 알고 있으며, 희망을 갖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이 모든 건 결국 바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시작된 거짓과 불행이 자신의 인생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는 걸 말이다. 딱딱하고 좁은 세상 속 제인과 아이들이 설 곳은 너무도 협소했다. 홀로 남은 소현은 어떻게 이 세상을 헤쳐나갈지.. 사실 소현이 행복해질 확률이 높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홀로 남은 소현만이라도 행복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불어넣어 본다. 



<꿈의 제인>의 주인공 ‘제인’은 인생은 아름답지 않은 개 같은것이라 얘기한다. 애써 포장하지 않고, 애써 위로하지 않았던, 찢긴 제인의 삶은 소현에게 꿈처럼 다가온다. 씁쓸하다, 싸하다, 공허하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정말 아프다. 쓰라리다. 제인의 눈빛이, 제인의 덤덤한 말 한마디를. 그녀의 마지막 무대와 마지막 멘트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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