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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Aug 06. 2020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 '분노와 처절함으로..'

[영화 후기,리뷰/ 8월 개봉 신작, 한국 액션 영화 추천/결말 해석]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DELIVER US FROM EVIL)

개봉일 : 2020.08.05.

감독 : 홍원찬

출연 : 황정민, 이정재, 박정민, 최희서, 박명훈, 오대환


분노와 처절함으로 물든 악의 추격전


2020년 8월 첫째 주,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개봉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신세계>이후, 7년 만에 다시 만난 황정민, 이정재 배우와 신비하고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는 박정민 배우의 조합으로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가장 큰 매력은 ‘시원한 액션’이다. 황정민, 이정재 배우는 총과 칼, 맨몸 액션을 훌륭하게 소화했고, 카메라는 누구보다 신난 듯 여기저기 주인공들의 모습을 훑어낸다. 그런 그들의 뒤에서 내리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조명은 후덥지근한 태국의 기후를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척박한듯하면서도 역동적인 나라, 태국을 배경으로 펼치는 인남과 레이의 처절한 추격전과 액션신들은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가장 시원하고 파워풀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홍보를 진행하며 박정민 배우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겨왔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부분은 끝까지 비밀로 부치는 게 나을 것 같다. 영화 관계자분들과 이미 시사회로 본 관객들은 모두 입을 모아 박정민 배우를 칭찬하고, 그의 존재에 기대감을 가져도 괜찮다고 말한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이다. 황정민, 이정재 배우에 대한 기대와 함께 무궁무진한 배우 ‘박정민’에 대한 기대를 품어도 좋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시놉시스


태국에서 충격적인 납치 사건이 발생하고 마지막 청부살인 미션을 끝낸 암살자 인남(황정민)은 그것이 자신과 관계된 것임을 알게 된다. 인남은 곧바로 태국으로 향하고, 조력자 유이(박정민)를 만나 사건을 쫓기 시작한다. 한편, 자신의 형제가 인남에게 암살당한 것을 알게 된 레이(이정재). 무자비한 복수를 계획한 레이는 인남을 추격하기 위해 태국으로 향하는데...


처절한 암살자 VS 무자비한 추격자. 멈출 수 없는 두 남자의 지독한 추격이 시작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일이 하나 들어왔어. 큰 건이야.


인남은 청부살인을 대가로 보수를 받는다. 가구 하나 없이 텅 빈 집에 사는 암살자 인남의 주변엔 텅 빈 집의 모습처럼 어떠한 인연도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인다. 우리는 인남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자세하게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그저 그가 과거 국정원에서 활동했다는 것, 세상에 알려져선 안될 비밀이었다는 것, 영주와 연인 사이였다는 것 정도다. 살인 기술까지 훈련받는 해외 용병의 정체를 알게 된 세상은 그들의 존재를 부정한다. 시대의 흐름이 변함에 따라 인남은 한국을 떠나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 ‘살인’이라는 악을 선택한다. 인남의 마지막 의뢰는 ‘고레다’라는 악질 조폭이었다. 마지막 의뢰를 마치기 위해 어둠 속에서 고레다의 목을 그러쥔 인남의 표정이 매우 강렬하게 와닿는다. 후회와 슬픔에 잠식된 채 오랜 시간을 지나온 인남은 옛 연인 영주의 연락을 피한다. 영주가 급하게 자신을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인남은 “연락 오면 그냥 죽었다고 하세요.”라고 말한다. 인남에게 영주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지켜주지 못했고,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옛 연인. 인남은 여전히 그 죄책감과 후회를 똑바로 마주할 자신이 없는듯하다.



영주는 인남이 떠난 후, 딸의 존재를 알게 된다. 딸과 인남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춘성의 말에 영주는 딸 유민을 선택한다. 한국을 떠나 방콕에서 딸과 함께 살고 있던 그녀는 납치된 유민을 찾아 나섰다가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유민이와의 사진을 지갑에 소중히 간직하던, 누구보다 유민과 인남을 사랑하던 그녀는 추악한 계획에 의해 희생되고 만다. 인남은 마지막 의뢰를 마치고 지상의 파라다이스라는 ‘파나마’로 향할 계획이었지만, 유민을 구하기 위해 파라다이스로의 탈출을 뒤로 미룬 채 방콕으로 출발한다. 



인남을 필사적으로 쫓는 적, 레이는 인남이 마지막으로 죽인 고레다의 동생이다. 미친 인간 백정이라고 불리는 그는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다. 이럴 것까진 없잖아.”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을 즐기며 망설임 없이 칼을 휘두르는 레이의 모습은 완벽한 악이자 미친자에 가깝다. 레이는 자신의 형을 죽인 사람과 그에 연관된 사람들을 모두 죽이기 위해 방콕, 일본, 인천을 오간다. 레이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는 물음에 “내 손으로 끝장을 봐야지.”라고 답한다. 레이는 복수심으로 가득 차 연관자들을 찾아다녔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인남을 쫓으며 이전과 다른 강한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그를 죽여야 하는 이유’. 정확한 이유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쌓인 레이의 분노는 인남을 지독하게 몰아세운다. 레이는 복수를 위해 날뛰는 사람이라기보단, 사냥감을 쫓는 사냥개처럼 보인다. 레이를 보면서 생각했다.

‘목표가 확실한 미친놈만큼 무서운 게 없다.’ 



인남과 레이가 펼치는 추격전은 마치 악과 악의 충돌처럼 느껴진다. 레이의 흰 신발과 바지, 인남의 흰 셔츠엔 똑같이 핏자국이 잔뜩 묻어있다. 살인이라는 씻어낼 수 없는 죄악과 죽은 자들의 비명이 가득한 붉은 핏자국들. 인남은 도망치듯 정착한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을 선택한 자, 레이는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아래서 자라며 자연스레 악에 물든 자다. 하지만 우리는 이 추격전을 보며 나도 모르는 새 인남이 유민과 함께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길 바라게 된다. 국가의 필요에 의해 임무를 수행하다 쓸모를 다하자 쫓겨난 그에 대한 측은지심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한 인남의 진한 후회를 함께 느끼기 때문일까? 온기가 사라진 영주의 뺨에 조심스레 손을 대보는 인남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의 슬픔이 내게 거세게 범람해왔고, 나도 모르는 새 그의 후회와 슬픔을 함께 느꼈다.


                                                                        

인간들 더러운 꼴 안 보고 살려고 여기 왔는데


인남의 가이드를 맡은 트랜스 젠더 ‘유이’는 납치된 아이들을 보며 치를 떤다. 아이들 배에 남은 수술 자국, 굳게 채워진 자물쇠와 쇠창살로 막혀있는 복도엔 악으로 가득 찬 인간들의 민낯에서 풍기는 썩은 내가 가득하다. 유이는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인남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아이와 관련된 일임을 알게 된 후 한국에 두고 온 자신의 아이를 떠올리게 된다. 유이는 위험한 일이라며 겁을 먹고 머뭇거리기도 하지만 유민을 부탁한다는 인남의 연락을 받고, 인남을 돕기 위해 달려간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왜 트랜스 젠더 캐릭터를 선택했을까?”

유이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에게 팁을 받으며 수술비를 모은다. 그렇게 오른 무대 위에서 유이는 온갖 욕정 또는 트랜스 젠더에 대한 무시가 담긴 눈빛을 수없이 받았을 것이다. 무대 위에서, 사회 안에서 인간들의 더러운 내면을 질리도록 봐온 그녀는 인간들의 악한 시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유이는 태국말에 서툰 인남을 대신해 통역을 하고, 마지막 순간엔 유민이를 안고 탈출에 성공한다. 누구보다 악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탈출할 길을 찾아내는 유이는 인남과 유민을 악에서 구원할 든든한 지원군이자 조력자다. 그리고 인남과 레이가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과 무거운 공기 속, 우리에게 잠시 숨 쉴 틈을 만들어주는 존재다.


                                                                        

아저씨가 용기가 없었어.


존재조차 몰랐던 딸과 마주하는 순간. 인남은 자신을 아빠라 칭할 수 없었다. 아저씨가-라는 말머리로 시작하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온다.


“엄마를 지켜줄 수 없었어.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야.”


인남은 충격으로 말문을 열지 못하는 유민을 바라보며 다짐한다. 유민이는 인남의 후회와 슬픔이 가득했던 삶에 처음으로 찾아온 희망이었다. 인남은 유민을 바라보며 옅게 웃음을 짓고, 동전 마술을 보여준다. 엄마가 자신에게 보여주던 것과 비슷한 마술을 보여주는 아저씨가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유민은 인남에게 팔을 벌려 포옹을 하고, 손가락을 내밀어 약속 도장을 찍는다. 처음으로 안아본 나의 딸. 유민이를 안고 있는 인남의 뒤로 흩어져있는 옅은 빛들이 왠지 서글프게 느껴진다. 유민이와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인남의 삶에서 가장 따스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란 걸 알고 있었잖아.


레이는 마지막까지 유민을 살리려고 노력하는 인남의 모습을 보며 공허한 웃음을 짓는다. 인남은 이 추격전의 끝에 자신의 죽음이 있을 거란 걸 직감하고 유이에게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내용을 담은 편지를 남긴다. 파나마로 떠나기 위해 필요한 자금과 여권, 서류들을 미리 준비해둔 인남은 유이에게 유민을 데려가 주길 부탁한다.


                                                                        

유민이를 찾고 나서 처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


인남을 도와주던 사람들은 모두 인남에게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라라고 말한다. 당장 인천을 떠나고, 당장 한국을 떠나라고. 인남은 그 말에 도망치듯 혹은 쫓겨나듯 자리를 뜬다. 잔혹한 추격자 레이의 존재는 인남에게 큰 위협이었다. 하지만 인남은 악으로 가득 찬 추격자의 정면으로 뛰어든다. 유민을 지키기 위해, 후회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처절하고 잔혹하지만 간절함이 가득 담긴 추격 액션이다. 악과 분노로 가득 찬 인물들의 끝까지 가는 추격전. 황정민 배우의 강렬한 눈빛과 이정재 배우의 소름 끼치는 악역 연기, 박정민 배우의 섬세한 연기가 영화에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개인적으론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에 가장 때깔 좋은, 스타일리시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첫 심의 결과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가 15세 관람가 등급으로 재심의를 받은 걸로 기억하는데, 추후에 감독판 또는 확장판으로 청소년 관람불가 버전도 한번 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kyung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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