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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Aug 03. 2020

<다즐링 주식회사> - '무거운 손을 비우고..'

[영화 후기,리뷰/ 왓챠, 색감 예쁜, 힐링 영화 추천/결말 해석]

                                                                              

다즐링 주식회사 (The Darjeeling Limited)


개봉일 : 2007.12.13. (한국 기준)

감독 : 웨스 앤더슨

출연 : 오웬 윌슨, 애드리언 브로디, 제이슨 슈왈츠먼, 아마라 카렌, 월레스 우로다스키                                                                         

무거운 손을 비우고 우리를 돌아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감독으로 유명한 웨스 앤더슨 감독의 감성으로 풀어낸 형제애와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담은 영화 <다즐링 주식회사>. 완벽에 가까운 대칭과 화려한 미쟝센으로 유명한 웨스 앤더슨 감독답게, <다즐링 주식회사>에서도 훌륭한 미술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다즐링 주식회사>는 동화 같으면서도 우리의 일기장 같다. 화려한 원색으로 꾸며진 기차와 퍼석한 듯 역동적인 인도를 배경으로 한 삼 형제의 이야기는 재기 발랄하고 명랑하다. 편히 숨 쉴 틈 없이 다툼을 반복하는 삼 형제는 인도에서 수녀가 된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부고를 전하기 위해 기차에 올라탄다. 아버지의 이름이 박힌 가방을 손에 든 삼 형제를 태운 기차는 끝없이 이어져있을 것만 같은 선로를 달려간다. 하지만 원대한 여행을 꿈꿨던 형제들의 여행은 어쩐지 엇나가고, 여러 사건사고에 휘말리게 된다.




다즐링 주식회사 시놉시스


세계 유명 영화제가 앞다투어 선택한 올해 최고의 코미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인도에 있는 엄마를 찾아 1년 만에 뭉친 3형제. 맏형 프랜시스는 이번 여행을 계기로 서먹한 형제 사이가 돈독해지길 바란다. 항상 이혼 생각에 잠겨있던 찰나, 아내가 임신하자 구체적으로 이혼을 계획하는 둘째 피터, 헤어진 애인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는 막내 잭. 

선로가 있어도 길을 잃어버리는 대책 없는 인도 기차 ‘다즐링 주식회사’를 탄 채 세 형제의 사고만발 인도 여행이 시작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둘째 피터는 아버지의 이름이 박힌 트렁크를 손에 들고 기차를 따라 달려간다. 시간을 맞추지 못해 이미 역을 떠나고 있는 기차의 속도를 가뿐하게 따라잡은 그는 설렘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기차의 문을 연다. 객실 안에는 셋째 잭이 가방에 기대어 잠들어있다. 그리고 첫째 형 프란시스가 등장한다. 세 형제는 아주 오랜만에 만난 듯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가까운 듯 또 먼 듯 애매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세 사람의 사이. 첫째 프란시스는 동생들 앞에서 이번 여행의 의의를 설명한다.


‘끊겼던 형제 관계를 회복할 것’, ‘잃었던 나를 되찾을 것’,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


웨스 앤더슨 감독은 프란시스의 입을 빌려 <다즐링 주식회사>의 주제를 관객들 앞에 던져놓는다.



프란시스는 교통사고를 겪고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나타난다. 피터는 연인 앨리스가 임신했음을 알고 있지만, 현실을 피하고 싶어 한다. 잭은 헤어진 전 여친의 음성사서함에 집착한다. 오랜만에 뭉친 삼 형제는 각자의 큰 고민을 안은 채 여행을 시작한다. 프란시스는 세계 최강의 진통제, 피터는 인도의 근육 이완제, 잭은 신경안정제가 든 독감 약을 먹는다. 각자 다른 고민을 갖고 있는 형제의 모습처럼 테이블에 올려진 약들은 모두 종류가 다르다. 형제들은 서로의 약을 먹어본다.



프란시스는 사고 후 정신이 들었을 때 형제들을 가장 보고 싶었다며 동생들에 대한 애정을 나타낸다. 왠지 전에는 안 그랬을 것 같은데.. 싶지만 아무튼, 지금은 동생들이 너무 보고 싶었단다. 프란시스는 동생들의 저녁 메뉴를 대신 결정하고, 내가 너희들을 키웠다며 형으로서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는 정작 어댑터 하나도 자신의 힘으로 구하지 못하고 비서 브렌든에게 부탁하는 어딘가 엉성한 모습을 보인다.


                                                                      

우린 항상 누군가를 왕따시키잖아.


형제들은 한 명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뒷얘기나 비밀을 만든다. 피터와 잭은 피터의 여자친구가 임신했다는 것, 그리고 첫째 프란시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둘만의 비밀을 만든다. 그리고 프란시스와 잭은 피터가 아빠의 물건에 집착한다고 생각하는 것, 프란시스와 피터는 프란시스가 잭의 여권을 훔쳤다는 사실에 대한 비밀을 만든다. 세명이라는 숫자는 양옆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듯하다가도, 살짝 엇나가는 순간 하나의 나머지 수를 만든다. 형제들은 그렇게 돌아가며 하나의 나머지 수에 대한 비밀을 만든다. 하지만 한 명이 자리를 뜰 때마다 새로 만들어진 비밀은 물꼬가 트이자마자 순식간에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 형제들 사이에 공포된다. 처음엔 숨기려고 한 비밀들이었지만 형제들 사이에 완전한 비밀은 생길 수 없었다.


                                                                        

중요한 여행이에요.


“다음 역에서 내려요.” 독사를 기차에 데리고 탄 삼 형제에게 특단의 조치가 내려진다. 프란시스는 이 여행이 형제애를 회복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이 여행이 망하게 된다면 우리의 형제애도 끝일 것 같다는 생각이었을까, 프란시스는 중요한 여행이라고 호소해보지만 형제들은 결국 잔뜩 쌓인 짐들과 함께 다음 역에 하차한다.


                                                                        

우리가 어디 있는지도 몰라요.


형제들이 기차에서 내리기 전, 갑작스레 기차가 길을 잃는다. 정해진 선로를 따라 올곧게 달리던 기차는 누군가 선로를 잘못 바꿔놓는 바람에 여기가 어딘지도, 어디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르는 채 대책 없이 선로 한가운데 멈춰 선다.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 멈춰있는 모습이 마치 각자의 고민에 헤매고 있는 삼 형제의 모습과 비슷하다.



삼 형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둘째 피터는 아버지의 선글라스, 면도기를 챙겨 여행을 떠나고 형제들의 트렁크엔 모두 아버지의 이름이 박혀있다. 장성한 삼 형제는 마치 어린이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주제로 다툼을 한다. 피터는 “아버지는 내가 제일 좋다고 하셨어.”라며 아버지와의 돈독한 관계를 뽐낸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말이지만, 프란시스와 잭은 “아버지가 진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라고 되묻는다. 형제들은 잊지 못할 아버지의 기억과 소식을 담은 채 멀리 떠난 어머니를 찾아 떠난다. 아직 완전히 홀로서지 못한 삼 형제에겐 이 상실감을 얘기하고 나눌 사람이, 아버지 같은 든든한 기둥인 어머니가 필요했다. 


                                                                        

이렇게 여행도 끝인 거지?


삼 형제의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봄에 다시 찾아오라며 편지를 보내오고, 형제들은 말썽의 대가로 기차에서 쫓겨난다. 목적지도 잃고, 이동 수단도 사라졌다. 이제 이 여행이 전부 끝난 것인가.. 싶은 순간, 프란시스가 봉투 속에서 깃털을 꺼내든다. 형제들은 깃털을 하나씩 나눠갖고 높은 바위 위에 올라선다. 한 명은 깃털을 그냥 불고, 한 명은 깃털을 그냥 가져오고, 한 명은 깃털을 불고 묻어놓는다. 정해진 사용법이 있었지만 삼 형제는 각자의 방법으로 깃털을 소비한다. 프란시스는 사용법을 지키지 않은 동생들을 보며 어쨌든 우리 식으로 최선을 다했다며 한숨을 내쉰다. 이 형제들은 정말 닮은 점이라곤 하나도 없다. 하나의 사용법을 두고도 각자 다른 방법을 선택하고, 잭이 쓴 소설을 보고도 감상평이 나뉘며, 신고 있는 신발도 다르다. 프란시스는 신발을 도둑맞은 후부터 짝짝이 신발, 피터는 깔끔한 구두, 잭은 맨발이다.


                                                                        

우리가 만약 형제가 아니었다면 그냥 친구라도 됐을까?


이토록 서로 다른 형제들이 하나가 될 방법은 없는 걸까? 삼 형제는 짐을 잔뜩 들고 길을 걷다가 자신들과 같은 삼 형제가 강을 건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급류에 휩쓸러 배가 뒤집히고, 세 명의 아이가 강에 빠진다. 프란시스, 피터, 잭은 망설임 없이 강에 뛰어들었지만 한 아이를 살리는데 실패한다. 피터는 돌에 부딪혔음에도 육체적 고통보다는 아이를 살리지 못했다는 심리적 고통에 슬퍼한다. 피터는 아이의 죽음에 유난히 슬퍼한다. 곧 아이의 아빠가 된다는 생각 때문일까, 피터는 무릎 위에 앉아있는 작은 아이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짓는다.



공항으로 떠나려던 삼 형제는 마을 사람들의 제안으로 아이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아버지의 장례 날을 떠올린다. 부품을 교체하기 위해 카센터에 맡겨둔 아버지의 차를 어떻게든 끌고 가려던 삼 형제는 한마음으로 차를 밀어보지만, 어딘가 결핍이 있는 차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삼 형제는 차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다. 그렇게 장례식은 마무리됐지만, 형제들의 마음은 그날에 머물러있다.



삼 형제는 아이의 장례를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간다. 비행기를 타기 전, 화장실 거울 앞에 나란히 선 셋은 각자의 방식으로 얼굴을 다듬는다. 피터는 아버지의 면도기로 면도를 하고, 잭은 쪽가위로 수염을 다듬는다. 그리고 프란시스는 잭의 가위를 빌려 붕대를 푼다. 꽁꽁 숨겨져있던 얼굴의 상처를 드러낸 프란시스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다 나으려면 좀 걸리겠다.”라고 말한다. 형의 상처를 처음으로 본 동생들은 “멀쩡한데 뭐”, “길에서 누가 시비 걸진 않겠다.”라며 형을 위로한다.


                                                                        

이제 무슨 기도를 하지?


이 여행의 목표는 ‘어머니를 만나 아버지의 부고를 전하는 것.’이었지만 어머니는 아들들에게 다음 계절에 오라고 얘기한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아들들은 여행의 목적을 잃고 한참을 헤매다 공항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삼 형제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 마음을 바꿔 어머니를 찾아간다. 어머니는 “사람들이 날 필요로 해.”라며 수녀원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아들들은 “저희는요?”, “왜 아버지의 장례식에 오지 않으셨어요?”라고 묻지만 어머니는 명쾌한 답을 내주지 않는다. 그렇게 다음날을 기약한 어머니는 형제들의 아침밥을 남겨놓은 채 사라진다. 이 영화에서 어머니는 유일하게 과거와 상처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을 찾아 떠나는 인물이다. 어머니라는 이름과 남편의 죽음, 아이들의 인생에 연연하지 않은 채 나를 원하는 곳을 찾아 떠나는 자유로운 인물 말이다. 삼 형제는 그런 어머니가 만들어둔 아침밥을 먹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빠 가방들은 이제 안녕이다


삼 형제는 아침밥을 먹고 높은 산에 올라 마지막으로 남은 깃털 하나를 함께 분다. 그리고 깃털이 알려주는 방향을 향해 여행을 시작한다. 삼 형제는 먼저 출발한 기차를 향해 달리며 양손에 무겁게 들고 있던 아버지의 가방을 내던진다. 그리고 아버지의 가방을 내려놓은 빈손엔 서로의 손이 채워진다. 기차에 올라탄 프란시스는 동생들의 여권을 돌려주지만, 동생들은 “형이 갖고 있어”, “함께 둬야 더 안전하지.”라며 형에게 여권을 맡긴다. 삼 형제는 이 여행을 통해 아버지의 죽음과 과거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고 자신과 형제애를 찾는다. 프란시스는 무조건적으로 의지했던 비서 브렌든과 멀어졌지만 상처를 감싸고 있던 붕대를 풀고, 동생들과 깃털을 불며 새로운 여행을 시작한다. 피터는 트렁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아버지의 물건과 선글라스를 벗고, 아이를 위한 옷을 산다. 잭은 집착했던 전 여친 대신에 기차에서 사랑에 빠진 리타를 주인공으로 새로운 소설을 쓴다. 기차에서 쫓겨나고, 사건사고가 가득했던 형제의 여행은 프란시스가 꿈꿨던 원대한 여행과는 거리가 멀지만, 결론적으론 그 무엇보다 값진 추억이 되었다. 



형제가 올라탄 긴 열차 안에는 많은 사람들의 인생과 생각이 담겨있다. 승객들은 일정한 크기로 나눠진 객실에 자리를 잡는다. 영화의 후반부, 각자 다르게 꾸며진 객실과 승객들의 모습이 나온다. 똑같은 크기로 정해진 객실이지만, 누가 그 객실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객실의 모습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사람들은 모두 같은 속도로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어떠한 인생이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다. 나의 인생을 찾고,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찾는 것. 묵묵히 선로를 따라 달리는 기차처럼 후회와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 웨스 앤더슨 감독은 우리의 이야기를 삼 형제와 대책 없는 다즐링 주식회사의 기차를 통해 동화처럼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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