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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Aug 24. 2020

<미스 스티븐스> -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떤가요?'

[영화 후기,리뷰/티모시 샬라메, 왓챠 힐링 영화 추천/결말 해석]

                                                                              

미스 스티븐스 (Miss Stevens)

개봉일 : 2019.05.02. (한국 기준)

감독 : 줄리아 하트

출연 : 릴리 레이브, 티모시 샬라메, 릴리 라인하트, 앤서니 퀸틀, 롭 휴벨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떤가요?


일주일을 마쳤을 때, 또는 새로운 일주일을 시작할 때. 갑자기 닥친 불행을 마주할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우리는 이 모든 순간에 행복과 설렘을 느끼기도 하지만 허무함과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남에게 털어놓는 건 쉽지 않다. 나는 어른이니까, 징징대는 것 같아서,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턱밑까지 차오르는 슬픔을 꾹꾹 욱여넣어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지고, 사회적으로 제한되는 활동들은 많아지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기회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 요즘, 마음속에 눌러놓다 못해 굳은살로 바뀌었을 슬픔을 보듬어줄 영화가 여기 있다.



<미스 스티븐스>는 고등학교 영어교사인 스티븐스와 그녀의 학생인 빌리, 마고, 샘이 연극대회에 참가하는 주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린아이들 앞에 서는 어른으로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생각에 자신을 더 단단히 단속하는 미스 스티븐스와 행동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요주의 인물이 된 학생 빌리, 완벽한 계획의 성공을 꿈꾸는 마고, 새로운 인연을 바라고 있는 샘. 서로 닮은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 4명의 인물들이 오래된 스티븐스의 자가용에 올라타고, 끝없이 쭉 뻗은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미스 스티븐스>를 보기로 한 첫 번째 이유는 티모시 샬라메의 소년미 넘치는 모습이 궁금해서였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가장 가까운 시기에 개봉한 영화이기도 하고, 그 시기에 담긴 티모시의 미모가 너무 청초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어서.. 이건 무조건이다! 하고 선택하게 되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완벽하다고 말하긴 조금 애매하지만, 마지막엔 살풋 웃음을 짓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영화다. 




미스 스티븐스 시놉시스


연기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학교 요주의 인물 ‘빌리’, 완벽주의자 여왕 ‘마고’, 귀엽고 친근한 ‘샘’, 그리고 매력적인 영어 선생님 ‘미스 스티븐스’


학교에서 매일 보지만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주말 3일 동안 열리는 연극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빌리는 자신과 취향이 비슷하고 무언가 상처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스티븐스 선생님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이끌리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어떤 식으로든 모두 갇혀있잖아요


영어 시간, 스티븐스와 아이들은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다. 마고는 바로 앉은 채 눈을 빛내며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고, 어딘가 삐딱한 자세를 한 빌리는 책의 결말이 어땠냐며 마고의 말을 끊는다. 스티븐스와 아이들은 외롭게 자신의 저택 안에서만 생활하는 개츠비가 사실상 갇혀있는 채 생활하고 있는 것이라 말하고, 빌리는 그 말에 우리도 형체 없는 무언가에 갇혀 살고 있다고 말한다.



빌리는 행동장애 증상을 보이는 학생이다. 수업에서 크게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교장 선생님은 빌리를 연극대회에 내보내는 것을 영 불안해한다. 스티븐스 역시 빌리의 상태를 걱정하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눠보라고 권한다. 대화를 권유받은 빌리는 “얘기할 사람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라며 쌩하니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빌리의 주변인들은 빌리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에 집중하기보단 그의 행동장애에 더 초점을 맞춘다. 약을 먹어야 하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 빌리는 남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 걱정어린 시선에 갇혀 생활하고 있다.



스티븐스는 빌리의 약을 챙겨주고, 진도를 위해 주말에 시험을 보겠다는 조건을 수락하고 빌리, 마고, 샘을 자신의 차에 태운다. 마고와 샘은 짐을 가득 챙겨 차의 트렁크에 넣고, 빌리는 가방 하나만 가볍게 챙긴 채 앞좌석에 자리를 잡는다. 대회 참가를 위해 떠나는 길이지만, 살짝 들뜨는 느낌이 든다. 차가 출발하는 순간, 다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등장인물들의 표정이 제각각이다.


                                                                      

나를 조금만 이해해 줄래요?


스티븐스의 카 라디오에서 오래된 밴드 노래가 흘러나온다. 마고는 스티븐스의 나이를 묻는다. 29살. 고등학생인 아이들과 대략 띠동갑 정도의 나이 차이. 엄마 아빠만큼 세대 차이가 나는 건 아니지만, 마고는 오래된 밴드 노래를 들으며 ‘아빠가 듣는 곡’이라고 말한다. 옆에 앉아있던 빌리는 이 노래를 안다며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샘도 그에 맞춰 작게 춤을 춘다.


스티븐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아메리카 밴드’의 노래를 듣는다. 엄마와 함께 듣던 노래, 연극 무대에 오르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 스티븐스에게 그 노래들은 자신의 상처를 덮어놓기에 안성맞춤인 눅눅한 반창고와 같은 역할인 듯 보인다. 그리고 그 눅눅한 반창고 밑에서 숨 쉬지 못하고 있는 스티븐스의 상처는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른스러운 게 피곤하달까


“어린애들하고만 말하다 보니 어른들과 말하는 게 어색하네요.”


스티븐스는 환영파티에서 말을 걸어온 월터에게 말을 더듬으며 답한다. 언제나 나보다 어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하고, 대화를 나눠야 하는 스티븐스는 이제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어색하다고 한다.


스티븐스는 학생들 앞에선 항상 본인만의 교사 모드를 유지하고,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스티븐스가 내린 ‘어른’의 정의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것, 힘든 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것이다. 약한 모습을 거의 보인 적 없는 스티븐스가 유일하게 눈물을 보였던 건 연극 무대가 끝난 후, 단 한 번뿐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강인하고, 멋져 보이는 선생님 스티븐스지만, 빌리는 스티븐스를 주시하며 어딘가 자신과 비슷함을 느낀다. 차 안에서, 환영파티에서도 빌리는 항상 스티븐스를 바라본다.



파티에서 먼저 빠져나온 빌리는 방에 홀로 앉아 과자를 까먹는다. 소파 두 개가 함께 놓여있지만, 빌리는 홀로 앉아 과자를 먹는다. 이 장면을 보면서, 빌리의 외로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든 옆자리를 내어줄 수 있고, 누군가를 위로해 줄 준비가 되어있지만 빌리의 옆에 놓인 자리에 앉아줄 사람이 없는 외로운 상황.



스티븐스 역시 빌리와 마찬가지다. 1년 전 어머니를 잃고 힘든 시간을 보냈던 스티븐스는 연극 대회를 앞둔 주말,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연극 무대를 보러 간다.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던 그녀는 눈물을 제대로 닦지도 않은 채 글썽이고 있다. 그리고 다음날, 아무렇지 않은 척 학교에 출근하며 밝게 웃어 보인다. 스티븐스는 밝은 표정으로 상심에 빠진 마고에게 슬프고 후회스러운 일들은 언젠가 다 잊혀질 거라며 위로하고, 데이트 신청을 받지 못해 속상해하는 샘에게 서로가 있다며 포옹을 건넨다.



스티븐스는 다른 이를 위로하고, 그들의 슬픔에 공감하는 법을 알고 있지만, 자신의 마음속에 차오르고 있는 슬픔은 헤아리지 못한다. 나는 어른이니까, 나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까. 내 슬픔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건 어리광과 같으니까 말이다. 빌리는 그런 스티븐스의 상태를 눈치채고 그녀의 방을 찾는다.



스티븐스는 “슬퍼하지 마세요”라며 침대에서 뛰고 있는 빌리에게 슬프지 않다며 굳은 표정을 보이다 이내 함께 침대를 뛰며 웃음을 짓는다. 괜찮은 척, 슬프지 않은 척 애써 표정을 굳히는 모습보다, 슬픔을 부정하지 않고 웃음을 짓고, 눈물을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더 인간적이고 행복하게 느껴진 건 왜였을까. 빌리는 스티븐스의 마음 깊이 담아둔 슬픈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에게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낀다. 빌리는 ‘스티븐스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다며, 자신의 마음을 담아 스티븐스를 ‘레이첼’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진짜 개츠비 읽었어?


스티븐스와 친구들은 수업의 내용과 엇나가는 질문을 하는 빌리에게 “진짜 개츠비 읽었어?”라고 묻는다. 빌리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연극 대회가 끝나고, 빌리의 낙제를 막기 위해 스티븐스, 마고, 샘이 힘을 모아 추가 시험을 시작한다.


시험 문제는 ‘개츠비에서 녹색 불빛이 의미하는 것은?’이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녹색 불빛’은 개츠비의 희망, 사랑을 의미한다. 빌리는 마고가 불러주는 시험 문제를 듣고, 스티븐스를 바라보며 정답을 적는다. 시험의 결과는 B-. 낙제가 아닌 통과였다. 빌리가 ‘녹색 불빛’이라는 단어를 듣고 스티븐스를 바라본 건, 자신에게 스티븐스가 녹색 불빛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빌리에게 스티븐스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것과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끼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희망을 느끼게 해준 인물이니 말이다.


                                                                        

나는 나예요, 그냥 그게 다예요


연극대회 결승전에서 빌리가 연기했던 독백의 일부다. 더 이상 트로피를 기대하지 말고, 그냥 그게 나일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주길 바란다는 이야기다. 빌리는 부모님의 권유로 행동장애 치료 약을 먹기 시작했고, 그 약을 먹고 나면 슬픔도 분노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딱 두 가지예요. 슬프거나 멍하거나


남들의 권유로 먹기 시작한 약은 빌리에게 딱 두 가지 선택지를 준다. 슬프거나, 멍하거나. 슬픔을 느끼는 게 잘못된 건 아닌데, 사람들은 빌리의 슬픈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약을 권한다. 빌리는 약이 선사하는 새로운 고통을 피하기 위해 남몰래 약을 끊는다. 부모님이 알게 된다면 뒤집어질 이야기지만, 약을 끊은 빌리는 생각보다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심리상태를 유지한다. 


                                                                        

선생님도 누군가에게 기대야 해요


스티븐스는 빌리가 차에서 내리기 전, 부모님에게 약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며 다시 당부한다. 빌리는 그 말을 듣고, 스티븐스에게 "선생님도 누군가에게 기대야 해요."라고 답한다. 차에서 내린 빌리는 부모님과 포옹을 나누고, 스티븐스는 그 모습을 지켜본다. 빌리가 건넨 마지막 말은, 이 영화를 보고 있을 또 다른 ‘스티븐스’에게 전하는 말이 아닐까.



눈물을 보여선 안되고, 힘들어서도 안되고, 지나간 일에 슬퍼해서도 안된다는 말로 자신을 혹독하게 옥죄고 있다면, 잠시 내려놓고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보라 얘기하고 싶다. 나는 다른 이를 위로하고 힘을 실어주는 이야기를 건네는 건 당연하게 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겐 칭찬이나 위로 한 번을 해준 적이 없었다.



사실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는 건 정말 어렵다. 오글거리기도 하고, 내가 그 정도 자격이 되는 건가..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하루에 한 번쯤은, 아니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쯤이라도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나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어떨까? 우리는 언제나 완전할 수 없기에, 가끔은 다른 이의 어깨에 기대는 것도 괜찮다. 그리고 당신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kyung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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