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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Sep 07. 2020

<이제 그만 끝낼까 해>- '누군가의 인생, 후회..'

[영화 후기,리뷰/넷플릭스 오리지널, 신작 영화 추천/결말 해석]

                                                                              

이제 그만 끝낼까 해

(I'm Thinking of Ending Things)

개봉일 : 2020.09.04. (넷플릭스)

감독 : 찰리 카우프만

출연 : 제시 플레먼스, 제시 버클리, 토니 콜렛, 데이빗 듈리스, 제이슨 랄프

                                                                        

누군가의 인생, 후회, 마지막을 담다


‘또다시 사랑에 속아볼까’싶은 뒤끝을 남긴 로맨스 명작 <이터널 선샤인>의 각본을 제작한 ‘찰리 카프먼’의 신작 <이제 그만 끝낼까 해>가 9월 4일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매우 정적이면서도 수다스럽다. 주인공들의 대사가 영화에 그득하고, 이 이야기에 대한 힌트 또한 보물처럼 여기저기 숨겨놓았다. 하지만 매우 불친절하다. ‘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가 아닌 그저 ‘내 맘대로 쓴 이야기니까 그냥 들어’라는 느낌에, 변주를 반복하는 이 영화는 초반 30분의 루즈함, 중후반부의 혼란함과 인물들의 말다툼에서 오는 괴로움과 불편함을 견뎌야 한다.




어떤 영화든 호불호가 안 갈릴 순 없다지만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호불호가 매우 극명히 나뉠 것이라 예상한다. 현 반응을 보니 불호가 더 많은 듯 보이기도 한다. 불친절하고 다소 불편한 진행, 휙휙 바뀌는 주인공들의 상황, 답답하게 조여져있는 화면. 나 또한 초반의 답답함을 견디기 힘들어 감상을 포기하고 탈주를 해야 할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승부욕(?)이 들었고, 겨우겨우 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그렇게 힘겹게 마주한 이 영화의 결말은 내 머리를 댕-하고 울렸다.



차가운 겨울을 배경으로 휘몰아치는 눈보라. 멈추지 않고 농장 집을 향해 달리는 자동차 안.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인물들의 상황. 흐트러진 퍼즐들은 어느 정도 맞춰지지만, 정확한 답은 끝내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안에는 앞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코너 벽이 있고, 차갑게 식어버린 저녁상이 차려져있다. 이 영화에선 쉼 없이 달리는 제이크의 자동차처럼, 쉼 없이 달려온 제이크의 인생의 끝엔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염증이 가득한 삶에서 그가 느끼고, 기억하고, 또 바란 것은 어떤 것이었을지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엔 이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결말까지 버티지 않는 이상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보는 것이 망설여진다거나 두려워진다면 시놉시스 밑에 적어둔 스포 부분을 조금 읽어보고 영화를 보시라 얘기하고 싶다. 그 사실만 알아도 이 영화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어느 정도 느껴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난 이 영화가 좋았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가 나에게 여러 의문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읽어보고 싶어졌으니, 어찌 됐든 나에겐 ‘궁금증을 유발하는’ 꽤나 좋은 영화였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함부로 ‘당신에게도 추천한다!’고 말하진 못할 것 같다. 뻔하지 않은 새로운 형식의 영화가 보고 싶다거나, 출연 배우들을 좋아한다면 추천하겠다. 반대로 머리를 식히고 싶은 날이거나, 조금 우울한 날이라면 이 영화를 피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영화는 어딘가 사람을 괴롭게 하는 구석이 있으니.. 함부로 접근하지 않는 게 좋을듯하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 시놉시스


우리는 언제 만난 걸까. 언제까지 만나게 될까.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여행을 떠나는 여자. 그의 부모님이 사는 외딴 농장에 가는 길.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흔들린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눈 오는 날, 만난 지 6주가 된 연인 제이크와 루시는 첫 여행을 떠난다. 루시는 운전하는 제이크 옆에서 독백을 한다. 루시는 “우린 진짜 교감을 한다”라고 말하고, 제이크는 그녀의 말을 읽기라도 하는 듯 중간중간 말을 끊어낸다. 우선 이 영화의 가장 큰 중심 해석과 틀을 얘기하자면 제이크와 루시는 동일 인물이다. 루시는 제이크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이상향’이라는 것, 그리고 이 여행은 제이크의 상상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인트로 부분에선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집이 나온다. 어딘가 익숙한 장소. ‘제이크의 농장 집’이다. 밤이 아닌 밝은 낮에 보니 생기가 도는 것 같기도 하고.. 따스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면 바닥엔 강아지 장난감이 널려있다. 제이크의 농장 집의 모습이 지나가고, 루시의 나레이션이 나온다.


                                                                          

“새롭게 빚어낸 생각이 아니라, 내 머리에 박혀있던 거라면?"

“끝이란 항상 이런 것이다”


새롭게 빚어낸 생각이 아닌 제이크의 머릿속에 박혀있던 생각들은 조각조각 나누어져 루시와 제이크의 여행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루시는 “그래서 향수에 젖는 내가 이상하다”라고 말하며, 제이크와 처음 떠나는 여행에서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낀다. 루시가 처음 가보는 제이크와의 여행에서 향수를 느끼는 건, 그녀가 제이크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미 제이크의 기억 속에 있는 집으로 향하는 길의 풍경, 익숙한 공기. ‘루시’라는 인물은 제이크의 기억 일부를 공유하며 이 여행에 향수를 느낀다.



영화엔 제이크, 루시, 제이크의 부모를 제외하고 노인 한 명이 더 등장한다. 그 노인은 제이크다. 상상 속에 있는 제이크가 아닌,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제이크. TV를 보며 홀로 시리얼을 먹는 노인 제이크는 고등학교 청소부다. 학생들은 복도를 지나가는 노인의 걸음걸이를 따라 하며 조롱과 멸시에 찬 시선을 보낸다. 노인은 열심히 청소를 하고, 점심을 먹는다. 그 사이 젊은 제이크와 루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제이크의 농장 집으로 향한다.


때로는 생각이 행동보다 진실과 현실에 가까워


루시는 제이크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때로는 생각이 행동보다 진실과 현실에 가까워”라고. 이 말엔 제이크의 바람이 담겨있다. 내가 현재에 하고 있는 행동보다 생각하고 있는 환상 속 세계가 나의 현실과 가깝길 바라는 바람 말이다.


폭설이 내리고 있는 날씨. 공기는 차갑고 눈앞에 보이는 풍경들은 너무도 뿌옇다. 노인이 된 제이크가 바라보는 세상처럼. 여행을 떠나는 날의 날씨는 너무도 차고 날카롭다.



제이크와 루시는 평범한 젊은 커플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곳곳에 이상한 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루시의 휴대폰엔 ‘루시’라는 이름의 발신자가 뜨고, 주인공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뒤바뀌기도 하며, 코트와 목도리의 색이 바뀌기도 한다. 노인 제이크의 기억, 상상력이 온전치 못함을 반영하듯이 말이다.



모든 게 살고 싶어 하는 건 아니야


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는 루시는 모든 생명들은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제이크는 모든 게 살고 싶어 하는 건 아니라고 반박한다. 이 또한 노인 제이크의 말이다. 상상 속에서도 묘사되는 부분이지만, ‘제이크’라는 인물은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을 똑똑해서 받는 상은 받지 못하고, 참가에 의의를 둔 상을 받는 아이였다고 말한다. 제이크의 엄마 또한 제이크는 지금껏 특출난 장기보다는 ‘근면함’으로 모든 걸 해내왔다고 말하며, 루시는 제이크와 함께 있으면 ‘저 커플은 뭐야?’하는 시선을 받는다고 말한다.


제이크도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특출난 사람이 아니며, 다른 이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받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자신에게 권태감과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



자동차에서 이뤄지는 대략 20분간의 대화. 어딘가 싸-하지만 이 연인의 모습이 무엇을 뜻하는지 명확히 짚어내기엔 쉽지 않다. 초반 자동차 시퀀스에서는 “우린 진짜 교감을 한다”와 “아이는 아빠의 거울”이라는 루시의 말, 뮤지컬을 좋아하며 모든 게 살고 싶어 하는 건 아니라는 제이크의 말이 힌트로 주어진다.



루시와 제이크가 진짜 교감을 한다는 건 둘이 한사람임을 암시하고, 아이는 아빠의 거울”이라는 말은 현재에 있는 노인 제이크가 치매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제이크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제이크의 아빠는 별다른 문제점을 보이지 않지만, 상황이 급변하며 제이크의 엄마는 시한부에 가까운 몸 상태, 아빠는 알츠하이머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는 아빠의 거울’, 제이크의 상상 속 아빠는 자신의 현상태를 반영하듯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인다.



뮤지컬을 좋아한다는 상상 속 제이크의 말처럼 노인 제이크 또한 뮤지컬을 좋아한다. 상상 속 제이크와 루시는 거실에서 노래를 듣고, 그 노래는 노인의 일상과 연결된다. 노인은 극장 청소를 하며 학생들의 무대를 힐끔힐끔 바라본다. 여학생은 그런 노인을 혐오에 찬 눈빛으로 바라본다.



초반, 자동차 시퀀스가 끝나고 드디어 농장 집에 도착한다. 제이크는 다리를 풀어야 한다며 돼지가 살고 있는 축사를 보여준다. 잔혹해지기도 하는 농장의 삶이 그대로 담겨있는 축사엔 얼어 죽은 양과 산 채로 갉아먹힌 돼지가 누워있다. 제이크에게 농장의 삶, 즉 자신의 삶은 얼어 죽은채 길바닥에 버려진 양, 또는 숨이 끊기기도 전에 구더기에 갉아먹히는 돼지와 같은 것이었다. 기생충이 나를 갉아먹고 있음을 알아도 바닥에 누운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삶 말이다.



제이크의 농장 집엔 ‘지미’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가 있다. 딸랑이는 방울소리를 듣고 루시가 시선을 내리면 젖은 털을 흔들고 있는 지미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이 강아지는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하고, 부자연스러울 만큼 끊임없이 털을 털어낸다. 그리고 제이크가 어릴 적 쓰던 방안에는 지미의 사진이 붙은 병이 하나 있다.


그 병이 의미하는 건 아마도 지미라는 강아지가 이미 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병 = 유골함) 영화의 첫 시퀀스에선 지미의 흔적(장난감, 뼈 등)이 있었지만, 제이크의 상상 속엔 그 흔적들이 남아있지 않다. 강아지가 있다는 말을 들은 루시는 ‘강아지가 있는 집 같지 않다’며 강아지의 흔적을 찾는다. 하지만 딸랑이는 소리 외엔 지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털을 터는 지미의 모습뿐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 제이크의 기억엔 ‘털을 털고 있는 지미’의 모습만이 남아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들판에 나와 슬퍼하는 슬픈 사람이 없는데
들판 풍경이 어떻게 슬플 수 있을까?


제이크와 루시, 제이크의 부모님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루시는 자신의 풍경화를 보여주며 제이크의 아빠와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을 풍경 안에 그리지 않고, 자신이 바라보는 풍경만을 담는다는 루시에게 제이크의 아빠는 위와 같이 말한다. 아무리 내가 풍경을 보고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하더라도, 사람이 직접 그 풍경 안에 있지 않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제이크의 상상 또한 그렇다. 노인이 된 제이크는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와 ‘그때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면’하는 바람을 담아 루시와 제이크의 여행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이런 그림을 그려내면 무얼 할 수 있을까. 정작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노인 제이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무력한 노인의 모습인데..



말의 앞뒤가 서서히 꼬이기 시작하고, 루시는 홀로 앉아있는 환상을 보기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제이크의 세계가 뒤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균열이 일어난 세계 속에서 루시와 제이크의 연결점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루시는 거실에 걸린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의문을 가진다. 제이크는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닮지 않았다. 그리고 ‘제이크의 어릴 적 침실엔 지미의 사진이 붙은 병과. 차 안에서 루시가 읊었던 ‘본 도그’라는 시가 적힌 책이 발견된다. 제이크는 어릴 적 읽었던 시의 구절을 루시라는 인물에게 낭송하게 만든 것이다.



저녁식사를 하며 루시와 제이크는 트리비아 게임의 날, 학교 근처 바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후엔 루시는 웨이트리스고 버거집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고 얘기한다. 노인 제이크가 점심을 먹으며 봤던 TV 속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루시는 자신의 이름을 루이치라고 바꿔 불러도 의아함을 느끼지 않는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과 상황이 연이어 발생하지만 루시와 제이크는 덤덤한 모습이다.



“제이크는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해.”


제이크는 지하실을 신기해하는 루시에게 ‘지하실엔 절대 가지 말라’고 얘기한다. 환영 같은 순간들이 이어지고, 제이크의 엄마는 루시에게 빨랫감을 주며 지하실 세탁기에 넣어놓으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덧붙여 “제이크는 모든 걸 통제하려고 해. 점점 더 세상과 담을 쌓아서 문제라니까”라고 말한다. 루시가 내려간 지하실에는 Jake라고 적힌 풍경화와 세탁기가 있다. 제이크가 어린 시절 그렸을 것으로 추측되는 그림들. 그 그림들의 모습이 어딘가 낯이 익다. 루시는 휴대폰을 꺼내 자신이 그린 풍경화 사진을 찾지만, 모두 사라진 뒤였다. 똑같은 풍경화 하단에 적힌 제이크의 이름, 그리고 세탁기 속에서 발견된 노인 제이크가 입고 있었던 유니폼. 노인 제이크는 ‘지하실’이라는 공간에 자신이 숨기고 싶다고 느끼는 요소들을 가둬놓은 듯하다. 어릴 적 그만둔 그림에 대한 후회 또는 부끄러움, 그리고 현재 입고 있는 유니폼과 청소부인 자신의 생활. 그는 상상 속 ‘루시’라는 인물에게만큼은 나의 비루한 현실을 숨기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우리 사회엔 그런 친절이 결여돼 있는 것 같아.
그들이 발버둥 치는 이유는 사회가 소외 시켜서일 거야.


영화의 중후반부가 되고, 루시는 노인학을 공부한 사람이 되어있다. 제이크와 루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깊은 대화를 나눈다. 루시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제이크는 차 안에서 우리 사회가 노인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노인 제이크는 상상 속 루시와 제이크를 통해 ‘노인’이 겪고 있는 세상에 대해 얘기한다. 내가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이유는 애초에 사회가 노인인 나를 소외시키고 무시하기 때문이다.




실제 노인 제이크는 학교에 근무하면서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듯 보인다. 경멸과 혐오의 눈, 130여 개의 교실을 청소하면서도 점심은 홀로 빈 교실에서 샌드위치 한 조각으로 때우는 현실. 노인은 활기찬 사회의 모습 안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하고 있다. 상상 속 젊은 제이크는 아이스크림을 버리기 위해 자신이 다녔던(현재 청소를 하고 있는) 고등학교로 들어선다. 그는 루시에게 이 학교를 “나를 괴롭혔던 고등학교야”라고 설명하며 몇 학급이 있는지, 라커룸은 몇 개인지, 남녀 학생의 교실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상세하게 읊는다. 단순히 모교를 설명한다기엔 너무도 상세한 정보들이다. 이 상세한 정보들은 아마도 학교를 관리하고, 청소하고 있는 노인 제이크의 기억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학교는 제이크가 실제로 다녔다기보단, 현재의 노인 제이크가 청소하고 있으며, 여러 사람들의 시선에 괴로워하고 있는 학교를 의미하는 것이다.



털시 타운과 아이스크림


폭설이 내리는 추운 날씨, 루시와 제이크는 흰 눈밭을 홀로 밝히고 있는 털시 타운에 도착한다. 털시 타운은 제이크의 유년시절 기억의 일부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아이스크림 나무가 자라는 털시 타운엔 배려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직원 두 명과 친절하지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직원 한 명이 나온다. 제이크는 “나인 줄 알면 무시할 거야”라고 말하며 두 명의 직원을 피한다. 나를 괴롭히는 누군가를 피하듯이 말이다.



무언가를 걱정하고 있던 직원은 루시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걱정돼요, 당신은 여기 있어도 돼요.”라고 말한다. 그녀의 팔엔 제이크와 비슷한 발진 자국이 가득하다. 루시는 예쁜 애들은 어딘가 배려가 없다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아는 여자’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털시 타운에서 아이스크림을 담아주고 루시와 제이크를 걱정하던 그녀는 또 다른 제이크를 표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나를 걱정하고 있는 과거의 제이크. 유년 시절이 담긴 아이스크림 가게를 지키며 ‘여기 있어도 된다는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는 과거의 어린 제이크’ 말이다.



루시는 도시로 출발한 후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는 말을 반복한다. 제이크는 그럴 때마다 “농장 집?”이라고 묻는다. 마치 무슨 미련 또는 집착이라도 남은 것처럼 말이다. 제이크에게 농장 집은 부모님과 나의 어린 시절이 담긴 소중한 장소다. 그는 현재도 농장 집에 살고 있지만, 과거의 시간을, 그 공간을 그리워하듯 제이크는 반복해서 농장 집에 돌아가냐고 묻는다. 그의 어린 시절은 대체 어떤 기억들이 자리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런 식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학교에 도착한 제이크와 루시는 한바탕 말싸움을 벌이고 화해한다. 사랑의 마음을 나누고 있던 중, 제이크는 갑자기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며 차를 박차고 나간다. 엔진이 꺼진 차는 점점 차게 식어가고, 루시는 저체온증으로 죽으려면 얼마나 걸릴지, 이렇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혼잣말을 한다. 그런 루시의 앞쪽엔 노인 제이크의 차가 보인다.


노인 제이크는 상상을 끝내고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방법으로 세상을 떠난다. 제이크의 차엔 두꺼운 눈이 쌓이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눈은 따스하게 그의 마지막을 덮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 나는 그들의 과거를 보고,그들의 미래를 본다.


바람은 사람들의 과거와 미래를 보고, 루시는 오늘 바람이 되어 그들의 과거와 미래를 본다고 말한다. 우리는 루시와 제이크라는 커플을 통해 노인 제이크의 미래, 그의 현재를 들여다본다. 제이크는 뮤지컬과 노래에 꿈을 갖고 있던 노인이었다.



그는 죽기 직전, 마지막 상상 속에서 두 가지의 공연을 한다. 첫 번째는 날이 갠 밝은 복도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춤을 추다 관리인으로 보이는 노인에게 살해당하는 남자 역. 두 번째는 어린 시절 사용했던 방처럼 꾸며진 무대에 올라 상을 받고, 인위적인 주름이 그려진 얼굴을 한 부모님과 루시 앞에서 제이크를 연기하는 것이다. 그는 첫 번째 공연에선 관리인이라는 자신의 현실에 깊이 찔리는 남자였지만, 두 번째 공연에선 상을 받고 가족, 루시에게 박수를 받는다. 죽음의 앞에서 그는 상상 속에서나마 꿈을 이룬다.


                                                                       

당신 거잖아요.


굴곡진 제이크의 인생에서 제이크를 위해 배려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시 머릿속을 스쳐갔던 제이크의 기억 속, 말싸움을 하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아하니 부모님 또한 그의 상상처럼 다정한 부모는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만일 아들을 아끼는 부모님이었다 한들 제이크의 나이를 보아, 이미 세상을 떠나셨을 것이다.




제이크는 노인을 소외시키는 사회 속에서 외롭게 살아간다. 그런 그를 위로하는 건 상상 속 ‘루시’라는 인물뿐이다상상 속 제이크는 농장 집의 현관에서 옛날 집이라 바닥이 차가울 것이라며 자신의 슬리퍼를 루시에게 양보한다. 루시는 “네 슬리퍼잖아”라며 제이크를 배려한다. 그리고 학교 복도에서 마주한 노인 제이크는 루시에게 바닥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신발을 갈아 신어달라며 슬리퍼를 내민다. 루시는 이번에도 “당신 거잖아요”라며 노인의 품에 슬리퍼를 안겨준다. 유일하게 제이크를 배려해 주며, 상상 속 제이크가 흥미를 갖고 있는 분야에 능통한 ‘루시’라는 인물은 제이크의 이상향, 되고 싶었던 사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황량하고 혼란한 상상의 시간이었다. 다른 영화들에 비해 가로비가 좁은 화면은 마치 인형극을 보는듯한 느낌을 주다가도 어느 순간엔 보는 사람을 끝없이 조이기 시작한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한 노인의 현재와 과거, 그의 후회와 바람, 마지막 꿈과 권태.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 모든 게 한곳에 뒤섞여 눈보라가 되어 내리던 밤의 이야기다. 삶을 끝낼까-하는 순간에 되돌아본 한 인간의 씁쓸한 생각의 향취가 가슴 깊이 스며든다. 호불호는 극명히 나뉠 것이다. 하지만 그 노인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면, 영화를 보며 괴로웠던 시간만큼이나 큰 감정이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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