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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Sep 22. 2020

<라이트 하우스> - '빛을 향해 폭발하는 광기'

[영화 후기,리뷰/넷플릭스 신작, 미스터리 스릴러, 흑백 영화추천/결말]

                                                                             

라이트 하우스 (The Lighthouse)

감독 : 로버트 에거스

출연 : 윌렘 대포, 로버트 패틴슨

                                                                         

빛을 향해 폭발하는 광기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채 선원들의 바닷길을 안내하는 ‘등대’. 그리고 그 등대를 지키는 등대지기와 그의 조수가 뿜어내는 불안과 광기가 가득한 영화 <라이트 하우스>. 우선 이 영화는 난해하고 찝찝하고, 조금 더 강하게 표현하자면 불쾌하다. 하지만 영화의 만듦새는 상당히 정교하고 아름답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바다, 위용 있게 솟은 등대, 끝없이 이어질듯한 아치형 계단, 한쪽 눈을 잃은 갈매기. 영화의 모든 장치들이 보는 이의 시선을 강하게 사로잡는다. 기괴하지만, 그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해야 할까? 솔직히 자주 볼.. 영화는 아닌듯하지만, 한 번쯤은 도전해볼 만한 영화였다. (만일, 흑백영화와 기괴한 영화가 싫다면.. 이 영화를 멀리하는 게 좋을 것이다.)



보급선에 올라타는 것 외엔 탈출할 방법이 없는 작은 바위섬. 바위섬에 있는 거라곤 투박한 바위와 높이 솟은 등대, 몇 주를 버틸 식량, 입을 크게 벌린 채 울음을 토해내는 갈매기 무리뿐이다. 섬이라기에도 애매한, 바다 위에 간신히 떠있는 구명정처럼 보이는 작은 바위섬. 젊은 청년 윈슬로우는 등대지기가 된다는 작은 기대를 품은 채 보급선에서 내린다.


하지만 윈슬로우의 기대와는 다르게 하나뿐인 상사 토머스는 사사건건 윈슬로우의 행동에 불만을 표현하고, 그를 괴롭게 만든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태풍이 섬을 덮치고 두 남자는 바위섬에 고립된다. 극한의 상황에 처한 둘은 내일이 없는 듯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서로의 비밀을 듣게 된다.



등대지기라는 직업은 사회성을 잃기에 아주 적합하다. 두 사람이 함께 근무하지만, 교대 근무다보니 한 명이 잠들면 한 명이 일을 하고, 한 명이 일을 하면 한 명이 잠을 잔다. 겨우 저녁 한 끼를 같이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말을 나눌 대상도 없다. 가정을 외면하고 오랜 시간 등대를 지켜온 등대지기 토머스는 ‘등대’라는 존재를 사물 그 이상의 애정관계로 보고 있는듯하다. 속된 말로 하면 살짝 미쳐버린 사람 같달까. 그리고 토머스의 밑으로 들어온 윈슬로우는 흔들리지만 소름 끼치는 눈빛을 가졌다. 마음 깊은 곳에 아주 뜨거운 분노를 억지로 잠재워둔듯한 그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토머스의 머리를 찍어내릴 것만 같다.


살짝 미쳐버린 노쇠한 등대지기와 소름 끼치는 눈빛을 뽐내는 젊은 사내. 작은 등대섬을 담아낸 비좁은 화면 속에서 두 남자의 광기가 강력하게 폭발한다.




라이트 하우스 시놉시스


1890년대 뉴잉글랜드에서 선배와 함께 등대를 지키는 남자. 술에 절어 지내는 선배가 잡무만 맡기자 화가 치민다. 게다가 폭풍우로 단둘이 섬에 갇히면서 상황은 악화일로.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비밀과 광기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열심히 울어대는 갈매기 무리마저 가짜가 아닐까 싶을 만큼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등대 섬. 노쇠한 등대지기가 긴 시간 지켜온 작은 등대섬에 새로운 조수 윈슬로우가 도착한다. 작은 창문으로 강한 자연광이 비치고 있지만, 등대지기의 숙소는 왠지 축축하고 어두운 기운을 풍긴다. 윈슬로우의 뒤에 조용히 따라붙은 카메라는 기둥 하나를 기점으로 정확히 반으로 갈라져 있는 듯 보이는 등대지기의 침실을 훑는다.



윈슬로우는 전 조수가 썼던 시트를 펴고 침대에 앉는다. 짐을 내려놓고 푹-꺼지는 시트에 엉덩이를 붙인 윈슬로우의 손끝에 시트의 구멍이 걸린다. 그 안엔 머리카락 뭉치와 먼지, 인어 조각이 있다. 윈슬로우는 조각을 홀린 듯 바라보다 자신의 품에 챙긴다.



세상에 어느 등대가 요란하고 활발한 분위기를 풍기겠냐만은, 이 등대 섬은 유달리 어둡고 정적이다. 윈슬로우 또한 조용히 서있는 등대처럼 말이 없는 편인듯하다. 윈슬로우는 잡일만 시켜대는 상사인 주제에 자신을 반기는 토머스의 가벼운 말들이 반갑지 않다. 그는 가지런한 이를 뽐내며 어딘가 기묘한 미소로 술을 따라주는 토머스를 칼같이 거절하고, 둘 사이엔 팽팽한 기류가 흐른다. 


                                                                       

그건 내 일이야


윈슬로우는 지침서에 적혀있는 것처럼 교대로 등불을 관리하는 근무 형태를 기대하고 등대섬에 도착했다. 하지만 토머스는 그에게 시계태엽과 선실 관리, 수조 관리 같은 잡일만 시킨다. 윈슬로우는 “등불을 관리할 줄 알았는데요.”라며 작은 반항을 해보지만 토머스는 윈슬로우와 자신의 역할을 칼같이 나눈다. 윈슬로우는 그런 상사의 모습에 분노를 느끼고, 뚫린 지붕 사이로 보이는 토머스의 무방비한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토머스는 황홀한 표정으로 등불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그대를 위하여”라고 읊조린다. 그는 등불에 대해 엄청난 애착을 갖고 있다. 그저 직업의식이라기엔 과하다 싶을 만큼 말이다. 토머스는 자신의 가족을 뒤로 미루면서까지 등대를 지켰고, 노인이 되어서도 그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그는 마치 나만의 보물 상자라도 되는 듯 등대를 잠가놓고, 윈슬로우가 접근할 수 없도록 열쇠를 지니고 잠에든다.


                                                                        

지루하면 사람이 미쳐버려


하루에 한 번, 두 사람이 유일하게 마주치는 저녁식사 자리. 토머스는 입을 꾹 닫은 윈슬로우를 향해 일방적인 대화를 시작한다. 치코피라는 배를 탈 때의 이야기, 광활한 바다 한가운데서 지루함과 싸우며 미쳐가는 선원들을 본 이야기, 미쳐 죽은 두 번째 등대지기 이야기까지. 등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와 바닷새에 대한 주의가 오갈 때쯤, 토머스도 윈슬로우를 포기한 듯 저녁식사 자리엔 토머스의 목소리를 대신해 적막만이 가득 찬다.



윈슬로우는 반복되는 중노동과 자신을 무시하는 토머스의 태도에 꾹꾹 눌러놓았던 분노를 폭발시킨다. 바닷새를 죽이면 안 된다는 토머스의 조언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갈매기는 지속해서 윈슬로우의 앞을 막았고, 화풀이를 할 대상은 갈매기뿐이었다. 윈슬로우가 갈매기를 죽인 후, 선선하게 불던 서풍은 거친 북동풍으로 바뀌었고 바위 섬엔 폭풍이 찾아온다. 원래대로라면 윈슬로우는 거친 북동풍이 지난 후, 다음날 육지로 돌아가야 했지만, 마지막 날이라는 이유로 술을 마시며 회포를 풀다가 보급선을 놓치고 폭풍 속에 고립되게 된다.



윈슬로우는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쯤부터 계속해서 이상한 것들을 보게 된다. 한밤중에 목격한 괴생물체가 흘리던 끈적한 점액, 바닥에 누워있는 인어, 두 번째 등대지기의 절단된 머리.. 윈슬로우는 여러 증거(?)들을 이용해 나름의 퍼즐을 맞춘 끝에 토머스가 두 번째 등대지기를 죽였고, 등불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토머스와 윈슬로우는 술에 거나하게 취한 채, 서로의 탓을 하다가 다툼을 하게 된다. 격노한 토머스는 바다의 신이 널 치게 하겠다며 윈슬로우의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도록 만들겠다고 한다. 윈슬로우는 그런 그에게 반격하겠다는듯 “당신은 더는 인간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토머스와 윈슬로우는 서로에게 ‘인간’이 아닌 존재다.



윈슬로우의 허상과 의심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두 사람은 무기를 들게 된다. 하지만 노쇠한 등대지기는 젊은 청년을 이길 수 없었고,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다. 윈슬로우는 드디어, 그토록 바랐던 등불로 향하는 열쇠를 손에 쥔다. 천국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듯 밝은 빛이 윈슬로우의 눈앞에 흩어지고, 윈슬로우는 등불을 마주한다.



등불엔 특별한 마법도, 기적도 깃들어있지 않았다. 윈슬로우는 자신이 발견했던 애꾸눈 등대지기와 같은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토록 빛을 밝히고 싶어 했던 윈슬로우는 결국 자신의 손으로 등불을 켜지 못하고 죽는다.



토머스는 갈매기와 싸우는 윈슬로우를 보며 갈매기엔 선원들의 영혼이 깃들어있으니 갈매기를 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윈슬로우는 애꾸눈 갈매기와 애꾸눈 등대지기의 머리를 보게 된다. 윈슬로우의 앞을 가로막았던 그 갈매기는 두 번째 등대지기였을까? 애꾸눈이 되어 죽음을 맞이한 윈슬로우도 애꾸눈을 한 갈매기가 되어 등대섬에 영원히 머물게 되는 걸까



윈슬로우가 봤던 괴생물체와 인어는 무엇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윈슬로우가 봤던 모든 것들은 다 허상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윈슬로우를 분노하게 만드는 상사 토머스는 이전에 죽인 진짜 윈슬로우를 떠오르게 만들었고, 지루하고 고된 등대 섬 생활은 그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두 번째 등대지기가 남기고 간 인어 조각상을 품에 간직한 순간부터 윈슬로우는 위험한 인어 사이렌에게 홀린 선원처럼 등불이라는 빛과 광기에 홀렸던 것이다. 들려오는 건 파도와 갈매기 소리밖에 없는 공허한 등대섬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남기란 불가능한 걸까.



토머스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노인과 청년. 둘은 등불이라는 희망에 기대고, 집착하며 등대지기의 삶을 이어간다. 죄를 지은 채 등대 섬까지 떠밀려온 청년 토머스는 노인 토머스를 밀어내고 등불을 차지하고 싶어 했으나 폭발하는 광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파멸한다.



좁은 화면비와 시간의 흐름을 짐작하기 어려운 어두운 흑백 화면, 좁은 바위섬과 위압감이 들 만큼 우뚝 솟은 등대. 이러한 요소들은 폭풍 속 고립된 두 사람의 답답한 상황을 더욱 실감 나게 표현해낸다.



윈슬로우가 미친 듯 갈망했던 등불엔 구원도, 다른 진실도 존재하지 않았다. 두 남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것이 현실인지, 허상인지 구분하기 힘들 만큼 강력한 분노와 광기를 서로에게 뿜어낸다. 윈슬로우와 토머스의 눈빛은 보는 사람도 불편하게 만들 만큼 강렬하게 타오른다. 그들은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던 바다가 순식간에 집채만 한 파도를 만들어내듯 순식간에 감정을 폭발시킨다.



<라이트 하우스>에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허상인지 구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사실 이 영화는 보는 이의 정신마저 온전치 못하게 만들 만큼 혼란하고 불친절하며 기괴하다. <라이트 하우스>속 등대섬을 빙빙 돌던 갈매기들처럼, 나도 그 섬에 남아 빙빙 돌고 있는 기분이다. 풀리지 않는 감정, 정확히 정리되지 않는 사실 관계. 이 영화의 껄끄러운 뒷맛은 꽤나 긴 시간 나를 괴롭힐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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