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경 Oct 04. 2020

<어느 가족> - ‘서로를 선택한 진짜 가족의 이야기'

[영화 후기,리뷰/왓챠 일본 가족 영화 추천/결말 해석]

                                                                             

어느 가족 (Shoplifters, 2018)

개봉일 : 2018.07.26. (한국 기준)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 릴리 프랭키, 안도 사쿠라, 마츠오카 마유, 키키 기린, 죠 카이리, 사사키 미유                                                                         

서로를 선택한 진짜 가족의 이야기


가족이란 무엇일까? 함께 밥을 먹는 사이? 아니면 한 집안에 사는 사이? 깊은 신뢰감을 가진 사이 또는 혈육을 말하는 걸까?


<바닷마을 다이어리>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등 여러 작품을 발표하며, 가족과 인생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풀어내기로 유명한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은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를 통해 또 다른 가족의 의미를 전한다.



제3자가 바라보기엔 불완전하고, ‘가족’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가족. 하지만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너무도 단란한 가족. 조금은 가난하고, 또 난잡한 집안이지만 가족들 사이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물건을 훔치고, 아빠는 일용직으로 근무하며, 엄마는 마트에서 근무한다. 노쇠한 할머니는 느릿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아이들의 손을 어루만진다. 이 가족은 완전하진 않지만 행복하다.



행복해 보이는 이 가족엔 숨겨진 비밀이 있다. 사실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가볍지도 않다. 그 비밀은 새로운 가족인 ‘유리’의 등장과 함께 조금씩 가족들에게 다가온다. 어깨가 움츠러들 만큼 추운 겨울밤, 어리고 가냘픈 아이 ‘유리’는 누군가를 기다리듯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그리고 오사무와 노부요, 아키, 하츠에, 쇼타는 작은 아이를 복작이는 집안에 앉히고 밥을 먹인다. 아직 겨울이 오진 않았지만, 찬바람이 부는 날 밤 따스한 국물 요리를 먹는듯한 포근한 느낌이 들 만큼, 이 가족의 분위기는 따스하다.




어느 가족 시놉시스


할머니의 연금과 물건을 훔쳐 생활하며 가난하지만 웃음이 끊이지 않는 어느 가족. 우연히 길 위에서 떨고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와 가족처럼 함께 살게 된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각자 품고 있던 비밀과 간절한 바람이 드러나게 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마트에서 손발을 맞춰 음식을 훔치는 아이와 아빠로 보이는 남자. 두 사람은 아이의 가방에 먹을 것을 담고, 저녁으로 먹을 고로케를 사서 집으로 돌아간다. 따스한 집이 그리울 만큼 차가운 늦겨울 밤, 오사무는 며칠째 집 앞을 헤매고 있는 작은 소녀를 집안으로 들인다. 옹기종기 모여앉은 한 가족의 저녁상에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할머니 하츠에는 작은 아이를 살펴보던 중, 아이의 몸에 상처가 가득한 것을 발견한다. 아이의 이름은 ‘유리’. 오사무는 유리를 데려다주기 위해 유리를 업고 집을 나선다. 그렇게 도착한 집앞, 그리고 안에서 들려오는 부부 싸움 소리. 오사무와 노부요는 유리를 업은 채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오사무는 건설 일용직, 노부요는 마트 직원, 아키는 접대를 하고, 하츠에는 전 남편의 위자료와 연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한다. 집은 하츠에의 집인듯하다. 가난하고 불안정한 집안의 상태. 학교에 가야 할 나이인 쇼타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마루에 걸터앉아 책을 읽는다.



집에서 공부할 수 없는 애들이 학교에 가는 거야.”라며 발보다 큰 슬리퍼를 질질 끌고 걸어가는 쇼타의 모습이 의연해 보이면서도 짠하다. 오사무는 다 지어지지 않은 아파트의 문턱을 지나며 “나 왔어-”라고 말해본다. 평생 가져볼 일 없을듯한 번듯한 아파트. 이 가족은 가난하다. 그리고 사회의 끝에 간신히 걸쳐진 채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뜨거운 여름 날씨와 땀에 흠뻑 젖은 가족들의 티가 그들의 숨 가쁜 하루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듯하다.



버거운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건 ‘가족’이라는 존재뿐이다. 오사무, 노부요, 아키, 하츠에, 쇼타, 그리고 유리. 6명으로 늘어난 만큼, 이 가족은 조금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츠에와 쇼타는 밀개 떡을 좋아한다는 유리를 위해 음식을 양보하고, 오사무는 유리를 쇼타의 ‘여동생’이라고 말한다. 어딘가 어색하고 군데군데 구멍이 보이는듯하지만, 이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가족은 전 부모에게서 고통받았을 ‘쥬리’를 ‘린’이라는 단발머리의 소녀로 만들어준다. 쥬리라는 이름의 소녀가 TV에 나온 날, 노부요는 유리의 머리를 잘라준다. 아키는 “언니도 다른 이름이 있어”라며 유리와 자신 사이의 유대감을 표시한다. 유리는 “린이 더 좋아.”라고 답하며 머리를 자른 자신의 모습과, 현재 가족들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한다.


                                                                        

부모는 선택할 수 없으니까


대부분의 ‘가족’들은 서로의 선택이 아닌, 혈육으로 이루어진다. “가족 같은 사이”라고 표하는 가까운 사이 말고,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진짜 가족’의 경우 말이다. 하지만 이 가족은 서로를 ‘선택’했고, 새로운 가족이 된다. 노부요는 유리가 처음 만나던 날 입고 있었던 옷을 불태우며 “사랑한다면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노부요와 유리가 함께 목욕을 하던 날, 노부요는 다리미에 데인 상처가 있는 유리의 팔을 보게 된다. 유리는 내게도 같은 상처가 있다며 노부요를 바라보고, 노부요의 상처를 말없이 쓰다듬는다. 노부요는 그런 유리를 바라보며 “괜찮아, (상처는) 다 나았어.”라고 말하지만, 유리는 아직 나은 게 아니라고 말한다. ‘아직 다 낫지 않은 건’ 노부요의 상처였을까, 아니면 유리의 마음이었을까?



노부요는 유리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며 ‘린’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가족이 되고, 행복하길 바란다. 노부요가 처음 본 유리는 그저 집 앞에 앉아있던 어린 여자아이였지만, 이젠 딸과도 같은 소중한 존재가 된다. 노부요는 유리를 위해 직장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습한 여름날, 노부요와 오사무는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직장을 잃었다는 노부요에게 오사무는 옛날처럼 술집을 하거나, 다른 일도 있다며 일부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오사무의 이야기를 듣던 노부요는 “나 지쳐버렸어.”라는 한마디로 분위기를 무겁게 누른다. 그 순간 소나기가 내린다. 그 후, 노부요와 오사무는 평소와 다른 특별한 시간을 보낸다. 이 특별하고 행복하고, 또 평화로운 순간은 소나기처럼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행복했던 마지막 바다 나들이. 하츠에는 손을 맞잡은 채 파도를 피하고 있는 다섯 명을 바라본다. 행복한 엄마 아빠와 3남매로 보이는 모습. 그녀는 평온한 표정으로 고마웠다고 속삭인 후, 조용한 죽음을 맞이한다. 하츠에는 오래된 집과 계좌 속 11만 6천엔, 보석함에 든 3만엔. 그리고 ‘어느 가족’의 존재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하츠에가 떠난 후, 이 가족은 순식간에 흩어지기 시작한다.



쇼타가 경찰에 붙잡히고, 남은 가족들의 도주는 무산된다. 이 가족의 생활은 엽기적인 유괴와 살인 사건으로 세간에 소개된다. 전 남편을 죽이고 묻은 여자와 남자, 남편을 빼앗은 가족에게서 돈을 받은 할머니, 그리고 그 할머니와 살고 있던 남편을 빼앗은 가족의 딸. 유괴된 듯 보이는 어린아이 둘. 할머니는 집안에 묻힌 채 발견된다. 사람들은 그 누구도 이들을 하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버린 걸 주웠습니다.


형사들은 하츠에의 시신을 유기한 것이라며 노부요를 몰아붙인다. 노부요는 형사에게 이렇게 답한다. 내가 유기한 것이 아닌, 누군가 버린 걸 주웠다고 말이다. 이건 사실이다. 오사무는 차 안에 버려진 쇼타를 ‘아들’처럼 키웠고, 집 앞을 헤매던 유리를 ‘딸’로 맞이한다. 그리고 전 남편과 그의 가족으로부터 버려져 혼자 살고 있는 하츠에와 아키의 가족이 된다. 누군가에게 버려지고,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인물들. 그들은 함께 모여 서로를 보듬고, 가짜 가족이 아닌 진짜 가족이 된다.


                                 

두 아이는 당신을 뭐라고 불렀어요?


오사무는 쇼타에게 자신을 ‘아빠’라고 불러보라고 말하고, 유리를 ‘여동생’이라고 불러보라고 한다. 하지만 쇼타는 ‘아빠’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노부요는 고민하고 있는 쇼타에게 그 말이 중요한 건 아니라며 위로한다. 하지만 노부요도 ‘엄마’라는 말을 듣길 바랐을 것이다. 쇼타와 함께 시장을 걸어가며 “어머니, 저녁 반찬으로 고로케 어떠세요?”라고 묻는 상인의 말에 노부요는 웃음을 숨기지 못한다. 쇼타는 웃고 있는 노부요를 바라보며 “어머니라고 불리면 좋아요?”라고 묻는다. 불임으로 인해 아이를 낳지 못한 노부요에게 쇼타와 유리는 가슴으로 낳고, 사랑으로 키워낸 아이들이었다.



노부요는 남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홀로 죄를 뒤집어쓴다. 모든 일은 혼자 꾸민것이며, 다른 이들은 몰랐다고 진술한 그녀는 5년형을 받게 된다. 그 후, 옷을 흠뻑 젖게 할 만큼 습한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온다. 노부요는 더 이상 이 가족을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우린 쇼타에게 역부족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눈이 잔뜩 쌓인 날 밤, 등을 기대고 누운 오사무와 쇼타는 ‘가족’이라는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한다.


                                                                        

아빠에서 아저씨로 돌아갈게


오사무는 더 이상 쇼타에게 아빠라는 말을 바랄 수 없음을 느낀다. 쇼타는 오사무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버스를 타고 떠난다. 오사무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는 버스를 따라 달린다. 버스는 멈추지 않았고, 둘 사이의 거리는 점점 벌어진다.



쇼타는 끝까지 오사무를 ‘아빠’라고 부를 수 없었다. 오사무와 쇼타는 성장기인 쇼타의 고민을 공유하고, 위로하고, 또 함께 저녁 찬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여느 ‘부자’와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지만 사회적 통념상 오사무는 쇼타의 아빠가 될 수 없었다. 오사무가 아빠이기를 포기한 마지막 순간, 쇼타는 오사무가 들을 수 없는 거리에서나마 ‘아빠’라는 단어를 소리 없이 읊어본 후, 입속으로 삼킨다.



그리고 뒤이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간 유리의 모습이 나온다. 유리는 쇼타에게 배운 대로 삼 형제, 육개장.. 등을 함께 말하며 숫자를 세고 있다. 숫자 셈이 반복되고, 유리는 누군가를 다시 기다리듯, 계속해서 집 앞을 서성이고 있다. 유리는 오사무와 쇼타가 다시 자신의 앞에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늦겨울에 서로의 손을 잡으며 만들어진 진짜 가족은 끈적한 공기와 뜨거운 햇살이 비치는 여름을 보내고, 다시 차가운 겨울을 맞이한다. 소나기처럼 짧았던 행복한 가족의 시간이 지나가고, 사회는 이들에게서 ‘가족’이라는 타이틀을 앗아간다. ‘아빠’ ‘엄마’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불러보기도 전에 끝나버린 ‘어느 가족’의 이야기였다.



<어느 가족>을 보면서 아빠, 엄마, 가족이라는 존재는 정확히 어떠한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로 가득한 6명이 함께 모여 만든 이 가족 또한 ‘진짜 가족’이다. 전 남편에게서 도망쳐온 노부요와 노부요를 사랑하는 오사무. 자해를 일삼던 소녀 아키, 전남편과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노인 하츠에, 도박장 앞에 버려진 아이 쇼타, 학대와 방치를 일삼던 부모에게서 버려진 유리. 사람들은 이 가족을 보며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는다. 뉴스를 보는 이들에게 하츠에는 희생된 할머니, 노부요와 오사무는 유괴범, 아키와 쇼타, 유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붙잡힌 아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함께해서 행복했다. 서로에게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었을지라도 말이다. 함께 저녁을 먹으며 서로를 바라보고, 손발의 따스함으로 당신의 하루가 어땠을지 짐작해보고, 미워하기도 하고 서로를 의지하기도 하는 이들은 진짜 가족이다.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kyung769/

블로그 : https://blog.naver.com/hkyung769

매거진의 이전글 <맨 프럼 어스> - '항상 존재하던 진실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