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식 정당명부제(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한 고찰
선거제도 개선안
독일식 정당명부제(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한 고찰
I. 서론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중요 직책을 맡고 때론 아고라에서 토론하며 사안마다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직접 민주주의는 더는 불가능하게 되었고 시민이 선거에서 대표자를 뽑는 방식인 간접 민주주의 즉 대의제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대의제를 선출하는 선거제도는 각 국가마다 제각각의 모습을 보이며, 때론 제도가 변하곤 한다. 이는 각 국가 상황에 부합하고 민의를 수렴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국가의 선거제도를 이해하면 해당 국가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된다. 다만 한국의 선거제도는 이런 노력의 일환이 있는지 다소 의문이다. 본격적인 민주화가 87년 이후에 이루어지면서 선거제도에 대한 논의 기간이 다른 민주국가들에 비해 짧기 때문이다.
본 글에서 필자는 현 한국의 선거제도가 민의를 대변하는 데 있어 합리적 선거제도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해보고 대안으로 독일식 정당명부제에 대해 논하려고 한다. 현재 한국의 총선 선거제도는 소선거구 중심의 제도이다. 소선거구는 한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자 한 명만이 득표 과반 여부와는 상관없이 당선되는 제도다. (단순다수제와 연관되어 설명되기도 한다) 해당 제도의 장점으로는 단순성과 낮은 비용 등이 거론된다. 그렇다면 소선거구제는 합리적 선거제도일까?
II. 소선거구의 폐해
먼저 소선거구제도의 폐해로는 유권자의 전략적 선택이 있다. 필자는 지난 총선 결과를 유심히 살펴주던 중 모순된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더불어민주당(123석)은 비례대표에서 국민의당에 1.2%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원내 제1당이 되었고 국민의당은 38석에 그쳤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승리의 원동력이 된 수도권에서도 비례대표 득표에서 국민의당에 뒤처졌다. 이는 유권자의 전략적 투표가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한국의 선거구는 소선거구제로 선거를 하기 때문에 뒤베르제 법칙에 따라 기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이외의 후보에게 던지는 표는 사표(死票)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표를 방지하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해 중소정당들을 지지하는 수도권 지역구 유권자들이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전략적으로 표를 던진 것이다. 정당의 다양화를 소망하는 유권자들에게는 선택의 자유를 다소 침해하는 요지가 있는 대목이다.
한국 소선거구 제도의 폐해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소선거구는 지역주의를 유발하기도 한다. 이는 사회 정체성 이론과 일정 연관되는 부분인데, 쉽게 말해 내 집단과 타 집단을 구분하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과 한 명만 당선되는 단순한 소선거구가 결합해 지역감정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에선 영호남 간의 지역주의가 항상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물론 지난 4.13 총선에서 지역주의의 변동 조짐이 보이긴 했지만, 지역주의 색이 강한 지역이 아직도 다수다.
마지막 문제점은 대표성이다. 소선거구는 지역구 중심이라 계층, 복지 같은 이슈보다 지역 이익, 개발을 앞세우는 후보, 즉 보수 계열 후보가 다소 유리하다. 또한, 이철희 소장이 지적했듯이 이러한 토건 중심의 개발 담론은 유권자의 사회경제적 정체성 발현과 계층 투표를 가로막는다. 청년, 농민, 노동자 같은 사회 각계각층의 대표를 국회에서 찾기 어려운 이유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비례대표제를 동시에 시행하고 있지만, 그 수도 지역 선거구 의원 수에 비해 현저히 적으며, 헌법재판소의 현행 선거구 불합치 결정에 따라 여야가 선거구 조정 과정에서 이해관계를 따지면서, 오히려 비례대표가 54석에서 47석으로 줄었다. 현행 선거제도가 과연 민의를 대변하기에 적합한 선거제도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III. 선거제도 개혁의 난해함
이러한 소선거구의 폐해 때문에 정치학자들은 소선거구 중심의 선거제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낸다. 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보통 비례대표 확대를 요구한다. 하지만 지역구 의석의 감소 없이 비례 의석을 확대하면 전체적으로 의석수가 늘 수밖에 없는데, 이럴 경우 한국의 정치혐오 정서와 맞물려 언론이나 대중의 질타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19대 국회 때 새정치연합이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의원 수를 3명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자 언론으로부터 국회의 밥그릇 키우기라며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지역 선거구 축소도 어렵다. 이는 지역구 주민을 이유로 한 의원 본인들의 반발 때문에 그렇다. 지난 19대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새누리당 농어촌 선거구 의원들은 의석수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있자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파행시키는 등 국회 내에서 막강한 압력을 행사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필자는 우선 의석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 의석수는 총 300석이다. 이렇게 보면 의석수는 많아 보이나 그 내막을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인구수는 평균 16만 6천여 명이다. 프랑스, 영국이 9만여 명, 독일이 12만 명임을 감안할 때 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수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의원 1인이 대표하는 인구가 많으면 그만큼 다양한 계층의 민의가 국회에 반영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의석수의 증대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역구 의원이 253석으로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만큼 비례대표의 대폭 확대는 불가피해 보인다. 전체 의석수를 늘리지 말고 지역구 의석을 줄이고 해당 의석을 비례로 돌리자는 의견도 종종 보인다. 하지만 선거제도 변동은 외부 충격이나 기존 당의 내부 위기의식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다. 2004년 비례대표제가 생긴 것도, 이번 총선 전 선거구 획정을 재편성하는 논의도 모두 헌법재판소 판결이라는 외부의 충격 때문에 일어났다. 따라서 이런 충격이 없는 이상 국회에서 스스로 지역구 의원을 대폭 줄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든 일로 보인다.
IV. 독일식 정당명부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는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본다. 우선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설명하자면, 독일도 한국처럼 유권자 한 명이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각각 한 표씩 던진다. (1인 2표) 다만 우리나라 선거제도와 두 가지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첫째는 지역구 의석 150대 비례대표 의석 150으로 동률이라는 점이다. 높은 비례의원의 비율로 각계각층의 민의를 담으려는 동시에 단순히 비례대표만을 뽑거나 늘렸을 때 간과할 수 있는 지역 대표성 문제도 간과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역구에만 쏠려있는 한국 의석수와 매우 대비되는 모습이다.
두 번째는 차이점은 독일은 2표 혼합제라는 것이다. 한국은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 선거가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 (2표 병립제) 반대로 독일은 두 선거가 영향을 미치는 선거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가령 A당이 비례 정당득표율에서 30%를 얻으면 비례대표 150석의 30%가 아닌 300석의 30% 즉 90석을 해당 정당 의석수로 미리 결정한다. 그런 다음 만약 A당이 지역구에서 40석을 얻으면 앞서 결정한 90 가운데 40석을 해당 지역구 의원들에게 배당하고 나머지 50석을 비례의원들로 채운다. 그리고 만약 해당 정당이 미리 확보된 비례 의석수보다 더 많은 지역구에서 승리한다면 해당 의석수를 인정하되, 비례는 배당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독일의 의석수는 우리나라보다 덜 정형화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V. 독일식 정당명부제의 한국 도입 적합 이유
그렇다면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일까? 첫째로 현실성을 그 이유로 말하고 싶다. 만약 비례대표를 늘리고자 지역구를 대폭 줄일 경우 앞서 언급한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 대대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게다가 현재 한국 국회는 지역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이러한 선거제도 개혁은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일정한 지역 선거구들을 인정해 지역구 의원들과 충분한 협상의 여지가 남아있다. 게다가 정당으로서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보통 지역에 기반을 둔 거대 정당들은 해당 의석이 거의 인정되고, 설사 여러 지역 선거구에서 진다고 해도 우선 비례로 확보된 비율만큼의 의석은 보장된다. 또한, 소수 정당들은 비례가 늘어난 만큼 의석도 자연스럽게 늘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 결국 정당 입장으로서 독일식 정당명부제에 대해 반대를 할 이유가 많지 않다고 본다.
두 번째 이유는 대표성이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지역구 선거를 지속해도 전체 국회의원 수는 결국 일차적으로 비례로 결정되기 때문에 민심에 의한 비율이 단순한 비례의석을 증가한 선거제도보다 더 정확히 반영될 수밖에 없다. 또한, 비례 증가를 통해 각계 계층을 대변하는 의원들의 수가 많아져 청년, 농민, 노동자 같은 계층이나 사회적 약자들로서는 더 나아진 정책들을 기대할 수 있다. 게다가 비례로 의석수가 우선 결정되기 때문에 사회 정체성이나 개발 담론에 근거한 지역주의나 지역이기주의를 다소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례뿐만 아니라 동시에 지역의 민심도 반영이 되기에 다양한 민심의 통로가 생긴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며 특히 영남, 호남같이 지역색이 비교적 뚜렷한 한국에서 효율적인 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사표 방지다. 현재 소선거구 하에서 유권자들은 사표를 피하기 위해 전략적 투표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독일식 정당명부제 하에선 이런 유권자의 비애가 다소 해소된다. 설사 유권자가 지지한 정당의 지역구 의원이 떨어지더라도 비례로 해당 정당에 던진 표는 사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비례로 해당 정당 의석수가 먼저 결정되기 때문에 비례대표 표의 가치는 지역 의원에 던지는 가치보다 더 크다. 소선거구 제도하에서 사표를 우려해 투표장에 가지 않는 유권자들을 끌어내 투표율이 더 증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근거로 필자는 의원 수가 늘어난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늘어난 의석수는 현재 300석보다 늘어난 350석이 적절하다 보며 증가한 50여 석은 비례의원에게 주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되면 현행 47석인 비례대표의 비율이 100석 가까이 늘어나 마침내 다양한 민의가 국회 내에 담아질 것이다.
VI. 결론
이처럼 필자는 한국 소선거구제도에서 유권자의 전략적 선택, 지역주의, 대표성 등 민의 수렴 과정의 여러 문제점을 느꼈다. 그래서 다른 국가들의 선거제도를 살피던 도중 독일의 정당명부제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해보았다. 첫째로는 현실성을 그 이유로 들었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지역 선거도 실시하는 만큼 현 한국의 선거제도랑 융합할 수 있고 국회 내 정당 의원들의 반발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대표성을 이유로 내세웠다. 현 소선거구만의 대표 선출은 다양한 각계각층의 대표를 선출하는 데 한계가 있어 정당명부제가 이를 보완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사표방지를 그 이유로 들었다. 유권자 본인이 사는 지역구가 특정 정당에 유리한 지역이라도 먼저 비례로 의원 수를 뽑기 때문에 사표를 줄이고 투표율을 더 높일 수 있다고 전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비례 50여 석이 더 늘어난 독일식 정당명부 제식 선거제도를 제안한다. (하지만, 의원수 정 확대가 못마땅하다면 지역 의석수를 대폭 줄인 안도 찬성한다. 현실성은 떨어지겠지만)
46.1%의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18대 총선 이후 총선 투표율은 다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19대 총선 때는 54.2%, 근래 실시한 총선에선 60%에 가까운 58%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점차 증가하고 있는 청년들의 정치 참여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투표를 해도 선거 이후 청년들에게 실질적으로 돌아오는 국회차원의 청년 정책은 미진하다. 청년과 미래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대 국회의원 중 14.9%에 해당하는 36명의 국회의원이 청년공약을 내지 않았으며, 41.7%에 해당하는 국회의원이 중앙당 공약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재의 선거제도의 폐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정치개혁을 위해선 단순한 투표참여뿐 만 아니라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함께 주목해야 한다. 청년을 비롯한 다양한 민의가 담긴 미래의 선진 국회를 소망하며 이번 보고서를 마친다.
참고 문헌
기사
- <the300> 정당·후보자 따로, 교차투표 ↑…총선 막바지 사표방지 심리…[the300]갤럽 조사, 국민의당 지지자 47%만 지역구 후보로 자당 후보 지지
- <뉴스타운>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안 선거구 확정
- <국민일보> “국회, 밥그릇 키우기 본격화?” 野, 의원수 최대 303명안도 검토
- <파이낸셜 뉴스> (4·②) 지역구 쪼개고 붙이고 싸우고… 돌고돌아 결국 원점?
- <아시아투데이> 청년단체, “국회의원 특권 포기하고 일관성 있는 청년정책 펼쳐야”
기타문헌
- 『참여연대』 「의원 정수 확대 논의 금기의 영역아니다」 2015년 4월 8일
- 이철희 <이철희의 정치썰전>
- 데이비드 파렐, 전용주 옮김 <선거제도의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