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동형 비례대표에 관한 고찰에 이어 오늘은 개방명부 비례대표제에 관해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 이번 글은 얼마 전 하승수 시민운동가가 발간한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를 제안한다』를 읽고 평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고백
우선 고백 하나를 해야 할 거 같다. 책의 저자도 서술했지만, 이번 21대 총선을 앞두고 연동형 비례대표로의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기대를 많이 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의 반대와 민주당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범위가 제한되었고, 그마저도 위성정당으로 인해 거대 양당이 70% 이상 차지하는 결과가 나왔고, 정의당은 10% 가까이 득표했음에도 전체 의석수에서 단 3%만을 획득하였다. 이런 상황이 되자, 국민여론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실패했다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자리 잡았다. 저자는 그 여론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저자는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를 하려면 국회의원 수를 늘리거나, 지역구 의원수를 줄여야 하는데 전자는 유권자가 후자는 현직 국회의원들이 반대할 것이라 극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연동형 비례대표를 떠나 아예 새로운 선거제도를 제안하는데 그것이 바로 1인 1표 '권역별 개방명부 비례대표제'이다. 해당 핵심적인 방식은 지금처럼 국회의원을 시, 군, 구, 동 단위가 아닌 시/도 광역 단위로 뽑는 것이다.
투표 방식
출처: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를 제안한다>>
만약 본인이 강원도 평창군 평창동에 산다면, 기존에는 평창군이 속한 해당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를 뽑으면 됐지만, 이 방식에서 평창군라는 세세한 특성은 사라지고 더 큰 선거구인 강원도의 8명의 국회의원을 뽑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그럼 투표방식은 어떻게 될까?
가상 투표용지
위 표는 해당 제도가 도입됐을 때의 가상 투표 용지다. 만약 본인이 정당 '야구팬이당'을 지지한다면, 해당 당 옆의 칸에 표시를 하고, 또 그 당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후보가 봉중근이라면 봉중근 후보 옆의 칸에 표시를 하면 된다. 만약 지지하는 후보가 무소속 후보자라면 해당 후보옆의 칸에만 표시하면 된다.
당선자 결정
가상 득표 결과
투표를 마치고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면, 득표율과 8석을 곱해서 반올림해서 나온 의석 수를 해당 정당에 부여한다. 예를 들어 아이좋당이 60%를 획득하여 4.8석을 획득했다면, 반올림을 하여 5석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반올림해서 총 8석이 채워진다면, 나머지 정당은 의석을 부여받지 못한다. (그러나 보정 의석 제도가 있는 선거제도라면 의석을 배분받을 수도 있다) 당선자는 후보 득표율이 높은 후보로 결정된다. 예를 들어 위 표의 신사임당의 후보 중 이순신 후보와 장영실 후보가 당내 상위 2명 득표율을 기록했다면, 이순신 후보와 장영실 후보 만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이다.
장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대로 하려면 지역구 의원을 대폭 줄이거나, 의원 수를 50여 석 늘려야 한다. 하지만, 전자는 의원들의 반발로 후자는 국민 여론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권역별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를 한다면, 의원들의 지역 기반을 존치해 반발이 줄고, 사표(死表)를 제거, 비례성을 확보해 양토끼를 잡을 수 있다.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더 이상 시군구 단위의 지방의원이 챙겨야 할 수준의 지역민원을 챙길 필요가 없게 되고, 거시적인 국가 문제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정당 입장에선, 공천을 정당이 하지 않고 유권자 몫에 맡기게 되어 당내 갈등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며, 유권자도 자신이 직접 후보를 고를 수 있어 정치적 효능감이 향상될 것이다. 투표용지에서는 우선 투표용지가 다소 커지긴 하겠지만, 투표용지가 기존 두 장에서 한 장으로 줄어 더 간편해진다는 점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연동형 비례대표와 마찬가지로 이 제도도 양당의 의회 독점을 허물고, 다당제를 유도하여 다양성을 더 촉진시킨다는 장점이 있겠다. 해당 제도를 시행하는 대표적인 국가로는 스웨덴, 덴마크로 다당제를 기반으로 강력한 복지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단점
그렇다면 해당 제도의 단점은 무엇일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사회경제적 계층 실현 여부다. 연동형 비례대표의 경우 전국단위로 이루어져, 사회계층적 투표가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엔 현 소선거구보단 계층 투표가 이루어질 수 있지만, 순위가 여전히 지역이 우선함에 따라 연동형 비례 대표제보다 다소 미약할 수 있다.
그럼에도 논의를 환영하는 이유
소선거구로 조장된 양당제 정치 시스템 하에서 중간계급은 좌파 정당이 집권할 경우 노동계급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을 것으로 생각해 우파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소선거구 제도는 정치지형을 양쪽으로 극단화하고, 대화나 협의보단 다른 정당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여 정책 개발은 실종되고 강경파가 발언권을 장악한다. 이는 故 노무현 前 대통령이 저서 『운명이다』에서 지적한 바이기도 하다. 이 같은 시스템에서는 강력한 사회복지가 실현되기 어렵다. 하지만 다당제 환경이 조성된 비례대표제 하에선, 중간계급을 대표하는 정당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며, 보통 선거가 끝난 후 이들 정당은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보수 혹은 노동 정당의 연합정부에 참여 가능하다. 비례대표제가 소수의 정치적 목소리를 허용하는 측면이 크다는 것을 감안할 때, 중간 정당의 목소리는 충분히 커져 복지 확대 같은 성과를 이루어 내기 용이하다. 필자는 여전히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가장 이상적 선거제도라고 생각하지만, 국회 기득권과 국민여론을 감안하면 과연 연동형 비례대표가 한국에서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권역별 개방명부 비례대표제가 지역색이 강한 한국적 현실을 고려할 때, 더 현실 실현 가능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점에서 비례성을 향상할 수 있는 권역별 개방명부 비례대표로의 논의를 반대하지 않는다.
비례대표제가 활발한 국가일수록 재분배가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비례대표제가 활발한 국가일수록 사회경제적 계층을 반영한 정책이 실현되기에 사회지출이 소선거구를 실시하는 다수제 국가들보다 많다.
마무리
한국에서 복지는 보편적인 요구 사항이다.
한국은 시장소득에서 빈곤율이 적은 편이지만, 가처분 소득 빈곤율에선 빈곤율이 높은 국가에 속한다.
위 표를 보듯이 복지 선호는 이제 전 계층, 전국적 관심사항이다. 하지만, 한국은 가처분 소득 빈곤율에서 빈곤율이 높은 편에 속한다. 이는 한국의 재분배 및 사회지출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국민이 기대하는 것과 분명 거리감이 있다. 국민의 요구에 부합하려면, 사회경제적 계층 발현이 가능한 정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선거개혁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이해찬 前 민주당 대표는 권역별 개방명부 비례대표제로의 개혁을 언론에서 언급하기도 했다. 환영할 일이다. 민주당은 양당제를 통한 반사이익에서 벗어나 더 적극적으로 선거제도 개혁에 임해주길 바란다. 국민의힘 정당도 더 이상 선거개혁을 좌파 독재라며 반대해서는 안된다. 반대를 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winner takes all식의 소선거구의 폐해를 다시 경험하게 될 뿐이다. 과거 덴마크 보수당처럼 합리적으로 선거개혁에 임해주길 바란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다양성과 복지국가 어젠다에 동의한다면, 선거제도 개혁에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모두가 존중받을 수 있는 정치 생태계를 꿈꾸며, 이만 이번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