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걸로 먹고 살아온 동년배 작가의 담담한 속내 이야기
.....에필로그 中에서.....
(전략)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다 멈춰 버린다면, 이 모든 인간관계들이 단절된다면, 작가라는 알량한 타이틀마저 빼 버린다면, 나에게 무엇이 남을까?
그런데 뜻밖에도 제 마음에는 '그저 공부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모습은 전혀 슬프거나 못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내가 나를 폄하하는 자괴감을 벗어 버린다면, '공부하는 나'는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알고 있는 가장 당당한 모습이었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어떤 대단한 목적도 없이, 그저 저절로 신명이 나서 공부하는 내 자신의 모습. 어떤 목적도 없이 공부 그 자체에 몰입해 있는 나 자신이야말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모습이었습니다.
(중략)
학교 다닐 땐 '왜 자꾸 난 딴 생각에 빠지는 걸까?' 하고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곤 했지만, 내가 원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알게 되니 그 딴생각이야말로 나의 진짜 고민이자 인문학의 화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진짜 공부란 무엇인가를 20년 동안 찾아 헤맸지만. 기나긴 방황이었지만 나를 끝내 성장시키는 값진 헤맴이었습니다. '학문'이라 한다면 너무 거창합니다. 하지만 '공부'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지요. 저에게는 공부가 가장 소중한 마음챙김이 기술이었습니다.
(중략)
요사이 인문학 강의를 나갈 때마다 갖아 많이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자존감을 지킬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받을 때마다 가슴 아픕니다. 사람들이 점점 더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매일매일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다만 저는 '내 자존감을 이루는 사회적 근거'를 매일 곱씹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의 자존감이 약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여자이고 취직을 못 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가? 그것만은 아닙니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이유는 매번 다른데, 그 천차만별의 이유중에서 공통적인 근거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내가 스스로에 대해 당당할 때는 아무리 나쁜 일이 있어도 '아무도 나를 망칠 수 없어! 날 무너뜨릴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이야!'라는 주문이 통합니다. 하지만 내가 나를 미워하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순간에는 지극히 하찮은 상처조차도 결정적인 트라우마가 되어 버리지요. 사실 제가 하고 이쓴 모든 강의가 '우리의 자존감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기난 답변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모든 책들과 사람들과 사건들 속에서 찾아내고 싶습니다.
존엄성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내가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일까? 우선 내가 나를 도울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질문을 뛰어 넘어, 나는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아니 도와야만 하는 존재인가? 누군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나에게 비우호적이지 하는 마음, 왜 세상이 내 능력을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으로는 세상은 물론 나 자신도 바꿀 수 없습니다.
존엄의 근거를 외부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자존감은 쉽게 외부의 상황에 따라 비틀거리고 상처입을 수밖에 없지요. 우선 내가 나를 도울 수 있는가?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스스로를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날 때 우리는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아니 나는 가진 것이 충분하니 반드시 남을 도와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행복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