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원서 2016, 번역서 2016
<편의점 인간>은 2016년 6월에 처음 발표된 일본 소설이다. 그 해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적으로 유명해졌고, 우리나라에도 당해 11월에 소개되어 미디어 소개를 많이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소설은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주인공 게이코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어린 시절 싸움을 말린다며 친구의 머리를 삽으로 내려치고, 학생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선생님을 조용히 시키고 싶어 치마와 팬티를 내리는 등 '평범'과는 다른 대응을 했던 주인공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니던 길에 막 개업을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리고 30대 중반이 되기까지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만이 삶의 전부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과 일반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그런 자기를 이상하게 보는 시선을 이해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소비 시대의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는 책으로, 그 흔한 구매행위조차 나오지 않는 이 책이 감상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에 대해, 왜 사람들은 소비를 하는가를 모티브로 생각해보았다. 소비에 대해 (주로) 사회적인 관점으로 분석하는 고전들은 공통적으로 ‘소비’란 소속감을 위해 행해지는 행위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특정 물건을 사고, 특정 공간을 누리고, 특정한 경험을 함으로써, 그 소비의 대상들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내재화하면서 나는 무리에 속하게 된다.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은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 소비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것만 할 뿐이다. 그러나 편의점에서 일을 한다. 인간 사회의 의례적인 선택을 하지 않고 사는 그녀가 일은 편의점에서 한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인간에게는 생물적 생존과 사회적 생존이 둘 다 필요하다. 편의점이란 공간은 인간의 두가지 생존을 다 시켜주는 곳이다. 그것도 심플하고 편하게 생존을 담보해준다. 편의점은 생활에 필요한 각종 물건들을, 이름 그대로 '편하게 살수있는가게'이다.물건들은대부분먹을것이고, 재료가 아닌 이미 만들어진 상품들이 또 주를 이루고 있다. 소비자들은 편의점만 있으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일종의 규칙성이 있는 공간이라 편의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잘 따라야 한다. 주인공 역시 편의점의 두 가지 기능을 정말 전적으로 누리며 살아가는 인간이다. 일하는 시간을 편의점에서 보내는 것은 물론, 식사 역시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막 지난 버리기 직전 상품이나, 남는 상품 들을 얻거나 구매해서 섭취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룰을 배우고 그래서 ‘인간’ 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주인공의 삶은 시라하를 만나면서 전기를 맞는다. 시라하는 주인공처럼 사회화되지 못한 존재다.그러나 사회화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회화될 수 있는 소비의 방법도 안다. 그래서 주인공이 길고양이를 데려다가 밥을 주듯이 시라하를 데려다가 씻기고 먹이는데, 이를 사회화될 수 있는 계기로 삼고 주인공과 편의점을 분리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그 ‘노력’은 실패한다. 주인공은 다시 자신이 원래 있던 편의점의 구성요소로 돌아가 편의점에 생존을 의탁하는 ‘선택’을 한다.
이 책의 저자인 무라타 사야카는 비정상과 경계에 대한 의심을 소설로 녹여낸다는 평을 듣는다. 즉 ‘사회화’라는 개념을 의심하는 셈이다. 소비가 소속감을 위해 행해지는 행위일 때, 나는 누구인가를 증명하기 위한 선택이라 할 때, 결국 소비는 사회화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된다. 어떤 것을 소비하면 우리는 특정 집단에 소속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과 같은 소유를 하면 나도 다른 사람처럼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나로서 ‘존재’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취업 활동과 동거를 멈추고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가며 살아있다는 걸 깨닫는 주인공을 다시 다른 사람들과 다른, 비정상의 세계로 돌아갔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서른 중반이 넘어 결혼도 하지 않고 남자와 관계도 없는 채 혼자 살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 급여로 살아가는 상황은, 분명히 선사 시대부터 이어온 인간 무리의 바람직한 생활방식과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편의점은 인간의 생물적, 사회학적 생존을 가장 현대적인 방법으로 소비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다. 가장 정상적인 소비의 방식을 제시하는 곳이 편의점이다. 독특하다고 여겨졌던 주인공은 가장 전형적인 현대 사회화의 산물일 뿐이었다.
김쌤의 추천이유
현대 도시의 오아시스자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편의점'. 인생에 대한 목표나 갈망을 잃어가는 일본의 무력한 단면을 편의점을 통해 보여준다. 일본의 3대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수상식 당일에도 편의점 알바를 마치고 참석했다는 작가의 세계는 과연 한국과 무엇이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