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 지음, 정성환 옮김
원서 1976년, 번역서 2007년(홍신문화사 버전)
ver. 20180810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삶이냐>는 ‘소유' 와 ‘존재' 라는 개념을 구분하고, 개인과 집단에 대한 구체적 연구를 통해 구분의 경험적인 토대를 찾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는 <소유냐 삶이냐> 와 <소유냐 존재냐> 의 두 가지 제목으로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있다.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기 전, 워낙 유명한 책이라 중역까지 합쳐서 여러 버전이 나왔던 것 같고, 그게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책에 담긴 내용과 다르게 책의 판권을 '소유'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일종의 꼼수인지라, 영 씁쓸하다.
책의 만듦새들을 대충 보니, '삶이냐' 들이 번역이 더 나은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제목으로는 '존재냐'가 더 뜻도 잘 통하고 맞는 말인 것 같다. '가지지만 말고' '살아가라'는 게 이 책의 메시지일텐데,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나라말에 더 맞는) 명사형으로 바꾸면 '존재'라는 보통명사지 '삶'이라는 동명사(?)는 아니다. 근데 또 이 책의 메시지가 동사형으로 살자는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삶'이 더 맞는 해석이고, 우리의 머릿 속 개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걸로도 받아들여진다.
이 저작은 1976년에 출간되었다. 이 시기는 더 많은 소유를 통한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성숙한 자본주의적 세계에 떠오르기 시작했던 때이다. 과연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더 그럴 듯한 존재를 보장하는가 하는 의문을 풀기 위한 다양한 연구들이 발표되었으며, 에리히 프롬의 이 저서의 의미 역시 당시 사회적 분위기와 선행 연구들에서 그 맥락을 찾을 수 있다.
소유와 존재는 사실 엄격하게 구별해내기 쉬운 개념은 아니다. 우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즉 사회적으로 우리 존재의 의미를 확정받기 위해서는 소유(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유와 존재의 비교는 명사와 동사로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다. 최근 2~300여년 간 많은 언어에서 명사의 사용빈도가 높아지는 것은, 사유재산의 발달로 인해 소유 양식의 개념이 더욱 강화된 결과라 볼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소유 양식은 취득적 개념이다. ‘무언가를 가지다'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나 외의 다른 모든 것이 목적(객체)이 된다. 따라서 힘의 우위와 열위가 생기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사회적) 반작용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존재 양식은 능동적 개념이다. ‘내가 있다'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나는 주어(주체)가 된다. 따라서 나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 책에서 ‘의지'는 일종의 욕구, 욕심의 의미로도 쓰인다. 다만 주고 나누고 기꺼이 내 몫을 줄이려는 태도를 나타내는 의지라면, 존재 양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저자가 소유 추구적 삶과 존재 지향적 삶을 비교하고, 후자가 옳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 성경부터 현대 일상까지 분석한 이유는 책의 뒷편에서 짐작된다. 바로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여기서 새로움은 ‘바람직한' 이라는 가치판단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새로운 인간들이 만들어갈 새로운 사회를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는 사리사욕에 의한 소유의 차등이나 욕구의 미충족이 없는 인간 사회를 뜻한다. 즉 자본주의로 인한 무제한적인 성장이 없더라도, 호모 사피엔스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데 대한 가능성의 타진이다.
에리히 프롬을 비롯한 당시 학자들의 이러한 문제제기는 지금 보았을 때 어쩌면 자기계발의 유행을 낳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기계발’의 사전적 핵심은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늘보다 내일 더 나아지기 위해 ‘지금의 나'를 돌아보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정해, 그에 맞는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로운 인간에의 변혁 과정 역시 소유 추구적 양식에 물들어버렸다. 존재 지향적 양식을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버리고, 터전에서 떠나, 심적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렇다고 인위적인 ‘안 가짐'은 해답이 아니다. 자유라는 것은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가지지 않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것은 결국 무소유라는 개념을 ‘소유’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저서의 2018년적 효용성은 소유 추구적 삶이 왜 그른지, 인간의 욕구가 얼마나 존재 지향적이 되어 왔는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위함은 아닐 것 같다. 오히려 비즈니스적 측면에서 인간의 어떤 욕구를 충족시켜 이익을 창출할 것인가를 위한 거시적 방향성을 일러주는 것일 수 있다.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소유(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마케팅의 중요한 전제다. 이에 특정 아이템이 둘 중 어떤 양식을 강조하도록 포지셔닝 해야 할지, 또 소비자들이 특정 아이템에 어떤 양식에 기반한 태도로 접근하는지 연구하여, 더 폭발적 구매가 일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그 쓰임새가 있다고 보인다.
김쌤의 추천이유
존재양식에서 소비양식으로 변화하는 현대사회를 비판할 때, 시작지점이 되는 전설적인 책이다. <럭셔리 코리아>를 집필할 때, 소비사회 비판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기억이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