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코 언더힐 지음, 신현승 옮김
원서 1999, 번역서 2010
존 로크는 행동이 사람의 생각을 가장 훌륭하게 해석해 준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쇼핑의 과학>은 이 말에 가장 부합하는 연구 방법론을 통해, 매장의 물품 진열과 동선이 어떻게 구조화되어야 매출을 올리는 데 가장 효과적인지에 대한 저자만의 인사이트를 담은 책이다. 매장 내 상품의 진열 위치나 특정한 광고판 등이 얼마나 효과 있는가를 알기 위해 저자는 철저하게 데이터에 기반한 판단을 내린다. 그 데이터는 매장을 방문하여 쇼핑을 하고 있는 쇼퍼들의 행동이다. 메모지와 스탑워치를 든 추적자들이 매장에 들어온 쇼퍼들의 행동을 초단위로 기록한다. 그리고 고정된 위치에서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는 행동을 추가로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얻어진 결론은 탁상공론적 가설과는 다르다.
매장은 물리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쇼핑의 과학 1원칙은 생물학적 상수다. 쇼퍼들에게는 공통적으로 특정한 신체적, 해부학적 능력, 성향, 한계 및 요구가 존재하므로, 쇼핑 공간이 이러한 특성에 부합하여 물품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를 위해 인간의 손을 자유롭게 하고,광고는위치에따라한눈에읽을수있어야하며,쇼퍼의동선의의미를깨달아야 한다. 또 남성, 여성의 차이를 인정하고, 늘어나는 노년 쇼퍼와 아이 쇼퍼의 ‘눈높이'를 맞춰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매장의 인간의 감각을 자극하되, 물건 판매라는 목적에 맞게 자극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 책의 초판은 1999년에 출간되었다. 그리고 2009년에 출간된 개정판에서는 쇼핑 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상황들이 전개된 최신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 해외에서의 쇼핑과 더불어 인터넷을 이용한 쇼핑이 아마 가장 중요하고 충격적인 변화일 것이다.
저자가 소비자들의 행동을 관찰하여 ‘소비자친화적'인 매장 공간을 유도하면 이를 통해 더 많은 구매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매장이 물리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인터넷은 실제의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저자는 인터넷이 물리적 세계의 빈틈을 확인하고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는 데서 본인의 의견을 출발시킨다. 인터넷의 미래를 수렴성으로 보고,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의 유기적 연결에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가격 비교, 종이 매뉴얼 대체, 개인 신분증으로의 사용 등을 예시로 들었다.
2018년 기준으로 보면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수렴은 결국 O2O 비즈니스의 발전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O2O란 결국 인터넷 기반의 기술을 통해 고객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해주는 솔루션 사업이다. 그러므로 저자(와 그 사업체)가 (a)비디오테이프, 메모지, 스탑워치를 가지고, (b)보다 많은 고객들이 매장을 방문해 오래 머무르면서 편하게 많은 물품을 사게 하려면 (c)매장 진열과 이동 경로 유도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연구했다면, 인터넷 시대에는 (a)쇼핑몰 화면마다 트랙킹 코드를 심어, (b)사용자의 유입율, 잔존율, 사용시간, 전환율, 재방문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c)UX 디자인 기획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A/B테스트를 한다. 변함없는 유일한 것은 이러한 공식을 심리적, 사회적, 비즈니스적으로 해석할 판단력이고, 따라서 이 지점에서 소비자학의 효용성을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웹이 가지고 있는 한계로 ‘기계적 정보 처리'를 지적하고 있다. 기술 자체는 독창적 방식으로 사고하거나 창의력과 직관력을 발휘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 AI(인공지능)의 발달이 진행됨에 따라 다른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겠다. <쇼핑의 과학> 3판이 나온다면, 인터넷 세계의 속성적 빈틈을 확인하고 이를 보완하고 있는 새로운 개체가 덧붙여지지 않을까. 이것은 결국 매장만이 아닌 쇼퍼 자체의 물리학 한계를 뛰어넘는 움직임이기 떄문이다.
김쌤의 추천이유
전형적인 미국식 경영서지만 '매장내 행동'에 대한 최초의 진지한 논의를 담고 있다. RFID · 비콘 · 빅데이터 등을 사용한 무인매장까지 등장한 세상이지만, 비디오 테이프와 메모로 매장행동을 분석한 이 책은 아직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