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국립 초상화 미술관(Scottish National Portrait Gallery)의 외벽에는 두 사람의 동상이 놓여 있다. 그중 한 사람은 애덤 스미스다. 유럽의 낙후된 변방에 불과했던 스코틀랜드는 18세기를 거치며 일군의 위대한 지적 성취를 일궈냈는데 - 이른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Scottish Enlightenment)'라고 한다 - 스미스는 그 중심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스미스는 오늘날 경제학의 아버지로 기억되며, 자유방임(laissez-faire)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아이콘이나 다름없다. 1980년 미국 대선에서 레이건이 승리하자 공화당 의원들은 애덤 스미스의 얼굴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 ⠀ 이런 평가가 정당한지는 의문이다. 스미스는 《국부론》에 자유방임주의를 지지하는 주장만큼이나 이에 반대하는 듯한 주장의 흔적도 많이 남겨 놓았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국부론》에 딱 한 차례 등장한다.) 스미스의 진의는 언제나 해석과 논쟁의 대상이다. 무엇보다 스미스는 경제학자이기 이전에 도덕철학자였다. 그는 글래스고 대학의 도덕철학 교수였으며, 《국부론》 이전에 《도덕감정론》을 썼고, 스스로 후자를 더 높이 평가했다. 《국부론》은 결코 《도덕감정론》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 스미스는 인간의 자연적인 공감(empathy)으로부터 도덕의 기초를 찾았다. 이런 입장을 도덕적 정감주의(emotivism)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전개한 생각은 사실 그만의 것이 아니다. 그 사상의 원작자는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다. 스미스와 흄은 막역한 친구였으며, 지적인 교류를 즐겨했다. 흄이 없었다면 《도덕감정론》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스코틀랜드 국립 초상화 미술관의 외벽에 아담 스미스와 나란히 서 있는 나머지 한 사람이 바로 흄이다. ⠀ 20세기 이전에 활동한 가장 위대한 철학자 세 사람을 꼽으라면 나는 아리스토텔레스, 칸트와 함께 흄을 꼽을 것이다. 세 사람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열 손가락 안에는 반드시 흄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에 대다수의 철학자들도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흄의 철학은 놀라우리만치 현대적이다. 그는 현학적인 형이상학을 동원하지 않고 명료한 일상 언어로 논증했다. 이런 스타일 자체만으로도 이미 현대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더 놀라운 점은 그의 핵심 아이디어가 상당 부분 폐기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근래에 출간된 철학책을 손에 잡히는대로 펼쳐 보면 흄의 위대함을 새삼 절감할 수 있다. 형이상학의 개인의 동일성(personal identity)이나 인과(causation), 그리고 자유의지(free will)에 관한 논의에서, 과학철학의 귀납법에 관한 논의에서, 메타윤리학과 미학과 종교철학에서도 흄의 이름이 튀어나온다. 그의 사후 300년 가까이 지났지만 철학자들은 여전히 흄이 설정한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다. ⠀ 이를테면 자아(the self)의 문제에 관한 흄의 논의를 보자. 데카르트는 인간에게 신체와 별개로 존재하는 영혼이 있으며 이 영혼이 감각, 기억, 사유, 인식, 욕구를 비롯한 모든 심적 활동을 주관하고 통제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데카르트적 자아(Cartesian Self)'는 사실 우리의 직관에 잘 어울린다. 우리는 감각이나 기억이나 생각에 관해 말할 때 소유격을 사용한다. (나의 감각, 나의 기억, 나의 생각.) 이로부터 감각, 기억, 생각 등을 '가지는' 중심부의 자아가 있다는 자연스러운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흄은 데카르트적 자아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나 자신이라 부르는 것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늘 뜨거움이나 차가움, 빛이나 그늘, 애정이나 미움, 고통이나 쾌락 같은 이런저런 지각을 만나게 된다. 나는 이러한 지각 없이 나 자신을 포착하지 못한다. 지각 외에는 무엇도 관찰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감각, 기억, 생각은 자아가 '가지는' 속성이 아니라 자아 그 자체다. 자아는 신체와 심적 활동의 여러 측면들을 묶은 다발(bundle)일 뿐이다. 생각이나 성격이 바뀌면 자아도 바뀌는 것이다. 자아는 변화하는 과정이다. 그의 주장이 처음에는 반직관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가만히 따져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우리가 나의 생각이라고 말할 때, 그 나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감각, 기억, 생각, 성격, 인식, 욕구가 곧 '내'가 아니라면, 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흄의 이 논증은 오늘날의 철학자가 제시하였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현대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흄의 자아관은 해방적이기도 하다. 자아란 우리가 가닿을 수 없는 고정불변의 중심부가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만들어나갈 수 있는 창조물이라는 뜻이니까. ⠀ 흄은 내성(introspection)이나 형이상학적 독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면밀히 들여다[봄으로써]" 위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흄은 인간의 명민한 관찰자였다. 그는 난롯가에 앉아 상상 속의 악마와 씨름하던 데카르트와 달리 언제나 인간과 세계를 직접 관찰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는 그가 존 로크와 더불어 이른바 '영국 경험론'을 대변하는 인물로 기억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성의 독단에 끌려다니지 않았던 까닭에 그는 사회로부터 자신을 격리하고 병리적인 사유에 골몰하는 은둔 철학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흄은 평생 온화하고 사교적이었으며, 먹는 것과 남을 대접하는 일을 좋아해 포동포동한 몸매와 "북부의 에피쿠로스"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는 삶을 사랑하는 철학자였고, 스토아적 금욕은 아주 싫어했다. "품격 있는 음식 때문에 진지함에 대한 나의 취향이 망가진 적도 없고, 유쾌함 때문에 공부를 망친 적도 없다." 같은 맥락에서 흄은 이런 말도 남겼다. "Be a philosopher; but amidst all your philosophy, be still a man." ⠀ 흄은 철학이 삶과 동떨어진 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철학자보다는 문필가(literati)라는 호칭이 더 어울린다. 그는 철학책 뿐만 아니라 각종 논평과 역사책, 자서전과 좋은 삶에 관한 글도 남겼다. 그는 삶을 사랑했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의 선현들과도 닮았고 자기 자신을 정직하고 명철하게 들여다보았다는 점에서 몽테뉴와 같은 프랑스 모럴리스트들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 그래서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의 철학을 탐구하는 일에 못지않게 즐거운 일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바지니는 이렇게 평한다:
흄의 철학이야말로 더 나은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준다. 그의 가문 모토는 '끝까지 참될 것'이었다. 흄은 끝까지 진실했고, 자신의 회의론을 지켰으며, 죽음을 맞이할 때도 살 때와 다름없이 정직했다. 그의 철학은 대부분 오늘날에도 진실의 힘을 잃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오류 투성이인 우리 인간이 단체로 종말을 맞이할 때까지는 말이다.
바지니가 쓴 책이 언제나 그렇듯 이 책은 쉽다. 너무 쉽게 풀어쓰려 한 나머지 흄의 철학을 다루는 부분은 때때로 산만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이 점은 약간 아쉬운데, 보다 깊이 있는 해설서로 보충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흄의 삶을 다루는 이야기들은 유익하고 흥미진진하며, 그의 철학과 삶이 연결되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특징인 현지 컬러 사진 덕에 여행 책 읽는 느낌도 든다. 요즘 같은 때에 특히나 기분 좋은 독서 경험이다. ⠀ 위대한 철학자 흄을 소개하는 마땅한 입문서가 없던 참에 바지니의 저작은 반가웠다. 독자들은 이 책으로 흄에 입문한 다음 서광사에서 나온 《흄의 《인간 오성에 관한 탐구》 입문》을 거쳐 흄의 저작을 직접 읽어보는 순서로 나아가도 좋을 것이다. 한편 흄과 스미스의 관계를 다룬 데니스 라스무센의 《무신론자와 교수》도 좋은 책이다.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역사적으로 다룬 책으로는 이영석의 《지식인과 사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