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소현에게

by 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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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상담을 가면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는 네가 있어. 아니지. 망설인다기보다는 정말 아무 생각 없다는 게 더 적확해. 네가 아픔을 꽁꽁 잘 숨겼기 때문일까. 뭐, 이제껏 이렇게 살아온 삶,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 체념한 걸까. 그런데 그런 네가 상담에 가면 무슨 얘길 할까 고민하기 시작한 거야. 너를 찬찬히 들여다보겠다는 첫 마음가짐인 거지.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 너는 무엇이든 크게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걸. 좋은 감정을 숨김없이, 아낌없이 표현할 줄 아는 넌 정말 사랑스러워. 여전히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반응하거든.


다만 부정적인 감정도 너무 크게 받아들인 나머지, 자꾸만 없애고 회피하려고 해. 되게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이야.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게 기를 쓰고 노력하다 뜻대로 안 되면 없는 척했지. 더 밝게, 더 화사하게. 그중 가장 큰 감정은 불안이었어. 이 뿌리에서 모든 가지가 뻗어나갔으니까.


결국 넌 트라우마 치료를 받기로 했어. 진정으로 널 마주할 자신이 있냐는 물음에 '이건 보통 일이 아니구나’ 예감했어. 스물여섯의 내가 열일곱의 너에게 ‘소현아’ 부르는 것만으로도 북받쳤어. 다 자라지 못한 너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 그래도 삶의 경험이 참 유용한 게 그만큼 더 많은 것을 겪은 나라서 해줄 수 있는 말도 있더라. 오히려 스물여섯의 내가 스물여섯의 너에게 어떤 말도 해주지 못했어. 그래서 더 미안해. 머지않은 날에 지금보다 조금 더 자란 나라면 너에게 해줄 말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해. 물론 그때까지 널 내버려 두겠다는 건 아니야. 늘 그랬듯 방법을 찾을 거고, 뭐든 다 해볼 거야. 트라우마 치료를 끝으로 너에게 쓴 편지를 다시 전해. 부디 너무 춥지 않은 곳에 네가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친애하는 소현에게.


안녕. 여전히 넌 네 삶을 바다에 비유하는구나. 바다는 부서지는 파도에 굉장히 요동치는 것처럼 보여도 그 속은 어떤 것보다 잔잔하다는 걸 넌 알고 있었지. 깊고 어두운 심연이 쌓여야 비로소 네가 마주하는 바다가 된다는 것도. 꼭 불안하리만큼 그 누구보다 밝고 쾌활한 네가 실은 꽤 어두운 사람이라서 넌 스스로 바다를 닮았다고 여겼어. 너도 어찌할 수 없는 바다.


네 성정은 바다일지 몰라도 넌 꼭 바다에 빠진 것 같은 삶을 살아왔잖아. 그래서 네 바다, 네가 있는 바다는 어때? 아직도 허우적거린다고 생각하겠지만 넌 흘러가는 물결에 몸을 맡기던걸. 이제야 네 바다를 마주할 준비가 된 것 같아서 다행이야.


넌 닿지 않는 발아래만 보더니 점점 물속에만 머물러 있느라 몰랐겠지만 네 바다는 틈틈이 반짝이곤 해. 햇볕에 비치는 윤슬이 그렇고, 달빛에 비치는 은파가 그래. 서서히 올려다봐. 자유롭게 헤엄쳐서 네 세상을 봐. 얼마나 아름다운지 넌 상상도 못 할 거야.


널 상징하는 단어 있잖아. Luminous(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그런데 넌 어디서든 빛나는 아이였어. 부정하고 외면하느라 바빴겠지만. 네 바다에 안부 전해줘. 칠흑 같이 어두운 망망대해에 홀로 버둥거리는 나는 이제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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