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빳빳하게 채웠던 셔츠의 목 단추를 툭, 하고 풀어내는 순간이 있습니다.
어깨에 들어갔던 긴장감이 스르르 풀리고, 비로소 내 원래의 호흡대로 숨을 쉬게 되는 찰나.
대만의 남쪽 항구도시, 가오슝(Kaohsiung)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 딱 그렇습니다.
수도 타이베이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흑백 시계라면,
가오슝은 바닷바람에 몸을 맡긴 채 느릿느릿 굴러가는 컬러풀한 자전거와 같습니다.
일 년 내내 따뜻한 남국의 볕이 내리쬐는 곳.
조금은 게을러져도 좋은 가오슝에서 만난, 3가지 여유로운 풍경을 소개합니다.
가오슝의 첫인상은 '재생'입니다.
바다와 맞닿은 옛 부두, 버려진 거대한 물류 창고들이 지금은 가장 트렌디한 예술가들의 놀이터로 변신했습니다.
페인트가 벗겨진 녹슨 철길 옆으로 감각적인 조형물들이 툭툭 무심하게 놓여 있습니다.
과거 화물을 나르던 낡은 철도는 이제 잡초가 무성한 산책로가 되어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이끕니다.
주말이면 창고 사이사이로 플리마켓이 열리고, 젊은 예술가들이 만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주인을 기다리죠.
완벽하게 새것으로 밀어버린 도시가 아니라, 낡은 것의 주름을 고스란히 남겨둔 채 그 위에 색을 입힌 다정한 공간입니다.
구시가지인 구산 페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고작 5분 만에 전혀 다른 분위기의 섬에 닿습니다.
야자수가 흔들리는 가오슝의 작은 휴양지, 치진 섬입니다.
이 섬을 온전히 즐기려면 반드시 '전기 자전거'를 빌려야 합니다.
페달을 밟지 않아도 스르륵 나아가는 자전거에 앉아, 해안 도로를 따라 달리는 기분.
왼쪽으로는 이국적인 열대 나무들이, 오른쪽으로는 짙은 회색빛을 띠는 '검은 모래 해변(치진 하이수이위창)'과 시원한 파도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바닷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를 굳이 정리할 필요 없는 곳.
해 질 녘 해변가에 앉아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는 시간은, 가오슝 여행의 가장 평화로운 클라이맥스입니다.
해가 지면 가오슝의 낭만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 '아이허(愛河)'로 모여듭니다.
이름조차 '사랑의 강'인 이곳은, 밤이 되면 강변을 따라 늘어선 노천카페와 가로등 불빛이 물결 위로 쏟아지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강변을 따라 천천히 산책을 즐겼다면, 이제 가오슝의 진짜 심장 박동을 느낄 차례입니다.
가까운 '류허(Liuhe) 야시장'으로 걸음을 옮기면, 항구도시 특유의 활기가 펄떡입니다.
숯불에 구워내는 신선한 해산물 냄새, 대만의 소울푸드인 달콤한 쩐주나이차(버블티)와 무더위를 식혀주는 파파야 우유 한 잔.
강물의 고요함과 야시장의 뜨거운 열기를 번갈아 오가며, 가오슝의 밤은 가장 맛있고 다채롭게 저물어 갑니다.
가오슝은,
여행자에게 '무언가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강박을 주지 않는 너그러운 도시였습니다.
그저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고,
망고 빙수 한 그릇에 행복해하고,
목단추를 푼 채로 느리게 걷는 것.
그 사소하고도 완벽한 자유가 그리워질 때,
당신의 다음 비행기는 가오슝을 향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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