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나는 가끔 온전한 내가 되고 싶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콤한 바람, 해 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많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드라마 <눈이 부시게>
누군가에게 인생 드라마이자, 인생 명언인 드라마 <눈이 부시게> 마지막 대사. 이를 연기한 김혜자 선생님은 이 배역으로 제55회 백상 예술대상 TV 부문 대상을 수여하고 수상 소감으로 이 대사를 읊었다.
엄마로서의 삶이 시작됐을 때, 30여 년간 나를 위해 살아오던 삶과 엄마로서의 삶 사이에 마찰이 생겼다. 모든 게 내 위주로 돌아가던 내 삶에서 타인이 주가 된 타인 위주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자 누군가의 무엇으로 살아가는 삶이 때론 가치 없어 보였고, 때론 초라해 보였다. 누군가의 무엇이 행복으로 다가오다가도, 다시 그저 ‘나’로서 존재하고 싶어 눈물겹게 출구를 찾아 헤매기도 했다.
그렇게 눈물 콧물 흘리며 나를 찾는 어느 날, 이 대사를 읽으며 마음에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느라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 오늘과 같은 내일이 올 예정이라 내일에 대한 기대가 없던 날.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는 말이,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말라는 말이, 무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날 마시는 따뜻한 핫초코 같았다. 내 마음을 녹이는 건 물론, 달큼함에 힘도 나고 카페인에 정신도 차려지는 기분이었다.
경험이란 게, 경험에서 녹아난 글이란 게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위안을 주는지 이 대사를 통해 깊이 깨달았다. 그리고 누군가의 무엇 역시 ‘나’이기에 오늘을 살아갈 가치가 있음을 다시금 가슴에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