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속상하게 하는 연애
“1985년 5월 22일, 이 동네에 여자아이 하나 태어났죠. 성은 미요, 이름은 친년이. 나를 닮아서 미웠고, 나를 닮아서 애틋했습니다. 왜 정 많은 것들은 죄다 슬픈지. 정이 많아 내가 겪은 모든 슬픔을 친년이도 겪을 거라 생각하니, 그래서 미웠고 그래서 애틋했습니다. 차고 오던 깡통도 버리지 못하고 집구석으로 들고 오는 친년이를 보면서 울화통이 터졌다가 또, 그 마음이 예뻤다가. 어떤 놈한테 또 정신 팔려 간, 쓸개 다 빼주고 있는 친년이. 그게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응원하는 사람이 되어주면 그래도 덜 슬프려나. 그딴 짓 하지 말라고 잡아채 주저 앉히는 사람이 아니라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좀 덜 슬프려나. 그래서 오늘도 친년이 앞에 앉아 이 짓을 합니다.” -드라마 <또 오해영>
딸의 남자친구 도시락을 함께 준비하는 엄마의 내레이션이다.
나도 엄마를 속상하게 하는 연애를 한 적이 있다. 하지 말라는 연애를 했고 헤어짐에 아파했다. 엄만 처음으로 사랑에 아파하는 딸을 마주했다. 일주일이면 괜찮아지겠지, 한 달이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엄만 나에게 온갖 정성을 쏟았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응원해 줬고 사고 싶어 하는 것을 사줬고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만들어줬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나는 괜찮아질 줄 모르고 엄마의 마음을 후벼 팠다.
하루는 대성통곡하며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고, 하루는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혼이 빠져있기도 했다. 두 달쯤 지났을까. 또 질질 짜고 있는 나에게 엄만 버럭 소릴 질렀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니?!”
나는 혼내면 더 우는 돌 지난 아기처럼 더 힘껏 엉엉 울었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이었고 참고 싶지도 않았다. “나보고 어떡하라고!!” 나도 나를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다 난 점차 괜찮아졌다. 다시 그 사람과 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를 울게 했던 사람과 다시 만난다고 하면 엄마가 속상해할 것 같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혼날까 봐 무서웠다.
결국 엄마와 난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를 설명하고 엄마를 이해시키려 했다. 아니, 그보다 엄마가 나처럼 그 사람을 사랑해 주길 바랐다. 난 엄마에게 혼날까 봐 무서워했던 게 아니라, 사랑하는 엄마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까 봐 무서웠던 거다.
얼마 후, 엄만 나와 함께 그 사람과 나눠먹을 도시락을 쌌다. 엄마도 저 드라마 속 엄마처럼 나를 뜯어말리고 싶었을까? 난 엄마 품에 안겨 엉엉 울어버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계속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고 엄만 뭐가 미안하냐며 괜찮다고, 다시 잘 만나보라고 했다.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은 밤이다.
그때 그 사람은 지금 내 사랑스러운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