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없는 자녀들
“엄마의 암 소식을 처음으로 영원 이모에게 전해 들으며, 나는 그때 분명 내 이기심을 보았다. 엄마 걱정은 나중이고, 나 이제 어떻게 사나. 그리고 연하는 어쩌나. 나는 오직 내 걱정뿐이었다. 그러니까, 장난희 딸, 나 박완은. 그러니까, 우리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어라? 이 장면 일시정지 해야 해! 대사를 좀 주워 담아야겠어!’ 하는 마음이 가장 많이 들었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엄마의 친구들, 나이가 각기 다른 여섯 명의 이모들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딸이자 작가의 이야기다. 멀리서 보면 딸이 엄마 친구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 가까이서 보면 그저 노년의 삶 이야기다. 첫 화에 이모들 이야기를 소설로 쓰라는 이모의 제안에 딸이자 작가인 고현정은 “안물안궁”으로 답한다.
“요즘 누가 꼰대들 얘기를 돈 내고 읽어? 요즘 지들 부모한테도 관심 없어.”
문득 노년의 삶을 그려보게 됐다. 그저 멀게만 느껴지던 노년의 삶이 어쩌면 그리 멀지 않았단 생각이 들었다. 이유인즉,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다. 이들이 기어 다니기 시작하고 걷기 시작하고 말하기 시작하는 일련의 과정을 나는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만 할 뿐인데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러갔다. 이 아이들이 자라나는 걸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것 같은데, 이들이 자라면 난, 노년이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 생각하니 티비 속에서만 보던 노년이,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지금 나와 같은 순간이 있었을 거다. 그들에게도 충만한 로맨스의 시간이 있었고, 첫아이를 안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있었고 그 시간이 영원할 줄 알았던 순간도 있었다. 엄마도 그랬겠지?
지금까지 엄마의 젊은 날을 제대로 그려본 적 없는 나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바라봐 온 나는, 그래서 엄마로서의 마음을 한 번도 헤아려본 적 없는 나는, 그러니까 엄마의 딸, 나 이혜미는 너무나 염치없으므로 여기서 마침표를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