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진행하고 나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찾아오곤 했다. 저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이렇게 극복했구나, 행복한 순간이 찾아왔을 땐 이렇게 행동함으로 감사를 표현했구나 하는 것들을 생각하며 나는 힘들 때 어떻게 행동해왔는지, 기쁠 때 어떤 마인드를 가졌었는지 돌아봤다. 나보다 좋은 반응들엔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부정적인 반응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했다.
이런 인터뷰들이 쌓이고 쌓여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간의 인터뷰 태도를 통해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내가 원하고 바라는 인터뷰이를 만날 땐 설레어했다. 그렇지만 의무적으로, 내가 맡은 꼭지이기 때문에 나간 인터뷰는 그리 설레지 않았다. 어느 정도 대화의 기술도 습득했다. 상대의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침묵이 필요하다는 것도 배웠다. 내가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하면 오히려 대화가 끊기거나 (단절) 기존의 방향과 다르게 흘러갔다. 하지만 침묵은 상대에게 정리할 시간을 주었고 더 나은 대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며 여유롭고 편하게 자신의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대화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당신의 이야기가 즐겁고 흥미 있다는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호응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답을 끌어낼 수 있는 묘책도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부분을 터치해 밑거름이 되는 대화를 만들어 갔다. 그럼 그다음 이야기들은 술술 나왔다.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직업이라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상대가 자리를 뜨고 그가 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앉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 눈을 감고 기억한다. 오늘 우리가 나눈 대화, 상황, 그 사람이 풍기는 특유의 향기, 분위기. 눈을 감고 그것들을 충분히 내재화시킨다. 그리고 한 줄이라도 글을 쓴다. 그 사람에 대한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그 사람을 글로 기억한다.
글을 쓸 때면 딜레마에 빠질 때도 많다. 다른 매체에 보도된 것과 다르게 매너도 없고 지적만 난무하던 사람이 있었다. 본인의 이야기보다 상대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지 지적하기 바빴다. 나를 만나기 직전에 누구랑 싸우고 오셨나 싶었다. 그 사람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하니 막막했다. 그 모습 그대로 글로 담아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하면 안 됐다. 사실을 그대로 적시하는 게 때론 공격이고 비난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딜레마에 빠졌다. 그때 누구에게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담임목사님이 나를 부르셨고, 혹여 사람에 대한 글을 쓸 때 실망하거든, 나쁜 점을 보지 말고 사람 자체를 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어떻게 아셨지? 싶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인터뷰에 실망할 때면 그 말을 기억한다. 내가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섭외를 요청한 사람이라면 나쁜 사람일 확률은 높지 않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 그 사람 자체를 바라보자.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1을 100이라고 과장해 말하는 사람인가, 100을 1이라고 축소해 말하는 사람인가. 그 사람은 거짓말하는 게 아니다. 자기가 느끼는 바를 그렇게 표현할 뿐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떻게 표현하는 사람인지, 그 사람에 초점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전하고자 하는 알맹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니 그 사람이 재해석되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과의 모든 대화가 이렇게 재해석되진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재해석이 필요 없는 건강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극소수의 사람에게서 필터를 사용해야 할 순간이 오는 것이다.
대화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 하지만 인터뷰는 하면 할수록 내공이 쌓였다. 대화가 주고받음이라면 인터뷰는 주고 주고받고 받고의 커뮤니케이션이랄까. 상대방의 내면을 이끌어내기 위해 밑거름을 주고 시간을 주면 두배로 내면의 이야기를 받을 수 있는 것. 인터뷰의 매력이었다. 나는 그것을 습득해 나갔다.
결국 모든 인간관계는 진짜 내 알맹이를 바라봐 줄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취향이 같기 때문에, 가치관이 같기 때문에, 성향이 비슷하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알맹이를 다른 사람보다 더 쉽게 파악하고 호응한다. 그리고 그렇게 알맹이를 발견해 주는 사람과 대화가 통한다고 말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게 된다. 대화는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의 교류다. 이보다 위대한 주고받음은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