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선 소속사를 거쳐야 한다. 일부 소개에서 소개로 이어져 인터뷰가 진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길게 이어지기란 쉽지 않기에 소속사 컨텍이 불가피하다. 수많은 소속사를 만나게 되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고 감사한 마음도 많이 들었다.
그들에게 상처 받은 것 역시 대화였다. 나는 을의 입장에서 소속사에게 연락해 인터뷰이의 스케줄과 인터뷰 의사를 확인해야 했고 최대한 우리 매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이야기를 전달해야 했다. 어떤 내용의 인터뷰이며 어떤 촬영이 진행되고 어떤 매체를 통해 누구에게 전달될 것이다. 명확하고 혹할 수 있는 내용을 전달해야 했다. 매번 나름 최선의 방법으로 전달했지만 대답은 최선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한 번은 인터뷰를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장소와 시간, 날짜를 정해서 알려달라고 하기에 선택지를 만들어 전달했더니 그 후로 연락을 끊어버렸다.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했지만 소용없었다. 내 번호를 차단했나 싶었다. 다시 소속사에 연락해 의사를 물었더니 인터뷰할 거란다. 그래서 다시 일정 선택지를 남겼더니 대표까지 더 이상 내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있을 수 있나 싶었다.
인터뷰할 의사가 없으면 스케줄이 안 된다거나, 곤란하다거나, 충분히 초장에 거절할 수 있었다. 근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여러 방법으로 차단하는 모습에 농락당한 기분이 들었다. 일 처리를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다. 인터뷰를 못할 것 같으면 못 하겠다고 말하면 될 텐데, 두 번이나 재차 한다고 거듭했다가 나를 차단한 이유가 뭔가.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았다.
하지만 그것에 크게 매몰되진 않았다. 저런 사람이구나, 저런 소속사구나.
반면 커뮤니케이션에 완벽한 소속사도 있었다. 아니, 대부분이 완벽했다. 소속사에 연락하면 인터뷰이를 관리하는 매니저나 실장, 이사의 연락처를 제공해주는데 그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곧 소속사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그 중간 관리자가 소속사의 이미지, 인터뷰이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준 사람은 굉장히 많았다.
인터뷰를 진행하면 나는 을의 입장이라고 생각했다. 커뮤니케이션의 최악은 나를 진짜 을로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최고의 커뮤니케이터는 나를 동등한 입장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었다. 동등을 넘어 나를 존중해주고 내가 하는 인터뷰를 존중해주는 사람들. 그들은 인터뷰에 진심이었고 그들의 태도를 통해 기대하는 인터뷰이는 역시 그 이상의 존중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들이 있어 나는 다음 인터뷰이를 컨텍하는 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다. 작은 단어의 선택, 흘려 넘길 수 있는 뉘앙스들에서 사람의 태도가 나오고 대화의 흐름이 잡힌다. 그 작은 대화의 포인트들은 대화를 긍정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게도 하지만 한없이 부정으로 몰고갈 때도 있다. 대화란 재미있지만 참으로 조심스럽다.
온전하고 건강한 대화를 많이 나누고 싶다. 누군가를 하대하면서 나를 높이는 대화, 나를 올리기 위해서 남을 낮추는 대화, 잘못된 언어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대화는 그만하고 싶다. 하지만 그건 또 나의 바람일 뿐. 세상은 넓고 사람은 제각각이기에 대화의 태도가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또 상처를 받을 거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화를 중단할 순 없다. 중단하기엔 대화는 너무나 큰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