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 초창기였다. 한 사회적 기업 대표분의 인터뷰였다. 좋은 일을 선하게 풀어나가는 기업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대표와의 대화가 기대됐지만 어르신인지라 걱정도 됐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3시간 넘는 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법을 잘 모르던 때라 대화만 이어가면 되는 줄 알았다. 말을 끊고 잇고의 개념도 없었고 무조건 반응하고 웃는 게 전부라 생각했다. 그래서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최고의 리엑션을 하며 웃느라 인터뷰 끝나고 나오는 길에 광대가 내려오지 않는 경험을 했다. 몸과 마음은 힘들어 축 쳐져 있는데 광대만 한껏 올라가 내려오지 않았다.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대화에서 끊고 잇고의 과정이 꽤나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길어진다 싶을 때 끊어야 하고 너무 단답이다 싶을 땐 이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는 길게 하고 싶어 하고 관심 없는 분야는 짧게 하고 싶어 하기에 좋아해서 장황하게 늘어놓는 말을 끊기란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넘어가도록 유도해야 했다. 대화의 흐름을 만들며 내가 원하는 답을 유도해야 했다.
친구와 만나 킬링타임으로 흘려보내는 대화가 있는 반면, 이유와 목적과 시간이 정확해야 하는 대화가 있다. 인터뷰는 대화라는 큰 범주에 속하지만 명확히 후자에 가까운 대화였다. 그걸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나는, 인터뷰가 무조건 잘 들으면 되는 대화라 착각하고 3시간 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3시간 이상 듣기만 했던 인터뷰를 마치고 기사를 작성하려다 보니, 기사에 넣을 말이 없었다. 대화의 의도와 다른 종류의 대화만 3시간 넘게 이어졌으니, 적을 말이 없는 게 당연했다. 나는 그 인터뷰를 통해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인터뷰는 목적이 분명하고, 그 목적에 따른 대화를 해야 함을 다시금 새겼다. 인터뷰이의 태도가 아닌 대화자의 태도에 머물러 있던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런 대화를 반성하고 다른 인터뷰를 나갔다. 대화를 잇고 끊는 게 어려웠던 나는, 이번에 모든 대화를 끊어 버렸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목표했던 대답들은 한 줄 이상 쓸 수 있도록 얻었다. 하지만 그가 대화를 마치고 떠난 자리를 바라보며 그에 대한 분위기나 느낌 등 감정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담을 순 없었다. 정확하게 일에 의해 나눈 대화가 전부였다.
대화의 흐름을 잡기 위해, 그 대화의 흐름에 익숙해지기 위해 나는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아직도 미완의 대화에 스스로 머리를 치기도 하지만 어느 한쪽에 치우친 대화를 하지 않으려 애쓴다.
상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이라고 생각해서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만 내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대화를 하는 당시의 감정이나 느낌까지 더불어 이야기하는 사람, 대화의 목적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대화만 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라도 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인터뷰에서의 대화는 일상의 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머리와 몸과 입에 배어버렸기 때문. 입은 하나이고 귀는 둘이기에 말은 줄이고 듣기를 더해야 한다는 옛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오늘도 입보단 귀를 연다. 그리고 겉도는 대화의 방향을 잡는다. 그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지 않았어도 알맹이가 있는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킬링타임으로 주고받는 대화도 좋지만, 우리 오늘 대화 잘했다고 돌아볼 수 있는 대화가 더 좋지 않을까. 몇 시간 넘게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남는 게 없는 핑퐁보단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