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1 가장 어려운,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소통

by 이혜미인

십여 년 동안 많은 사람과 대화했지만 내 생애 가장 큰 소통의 장벽, 대화의 장벽은 남편이었다. 30여 년을 다른 문화권에서 다르게 살아온 사람이 갖고 있는 가치관과 신념, 그러니까 그 사람의 문화 자체가 나의 문화와는 너무나 달랐다. 연애할 때도 그 문화를 어느 정도 인지하곤 있었지만 이렇게 다를 줄은 몰랐다. 연애할 때는 그 다른 면에 호감이 가기도 했고 더 멋져 보이기도 했었다. 그게 삶과 연결되면서 부딪히는 요소가 될 줄은 몰랐다.


아니, 그렇게 문화가 다른 사람이어도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소통에 능한 사람이 있었다면 문제는 달라졌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소통에 능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소통이 필요한 순간엔 부딪히기 일쑤였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수없이 듣고 듣고 또 듣는 입장에 있던 나는, 왜 집에만 오면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는 입장에 있는지. 인터뷰에선 공감하고 공감하고 또 공감하던 사람이 왜 집에선 반대하고 맞불 놓고 으르렁거리는지. 나도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남편에게 이해를 바라는 게 우스워 보였다.


결혼에 대한 상념과 어떤 부분이 결혼을 선하다고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했었다. 그즈음 인터뷰이를 만났고, 그즈음 다양한 방법으로 같은 메시지가 들어왔다.


"기다림"


그때 만난 인터뷰이도,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의 선교사님도, 오랜만에 다시 만난 직장 동료도, 하나같이 '기다림'을 이야기했다. 나는 기다림에 능하지 않을뿐더러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이 같은 메시지가 동시에 들어오는 걸까. 되려 화가 났다. 누군가 나에게 남편을 이해하고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싫었다.


"대부분 용서하지 못하고 참지 못했을 때 헤어져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내 생각만 관철시키려 할 때, 내 주관대로 지시하고 야단치고 혼내고 할 때는 헤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 사람을 인정하고 포용하고 안아줬을 때, 모든 게 회복되고 용서가 일어나요. 위기가 닥쳤다고 생각이 들 때. 그때가 그 사람을 인정하고 포용하고 안아주고 용기를 줘야 할 때예요. 그게 당신도 살고 상대방도 사는 길이에요. 이런 마음을 갖지 못할 거라면 저는 결혼하지 말라고 말해요. 또 하나의 불행이 시작될 뿐이거든요."


사람이 살다 보면 한 번씩 업그레이드될 기회가 찾아온다. 그 기회의 파도를 잘 타는 사람의 성숙의 단계로 들어가지만 그 기회의 파도를 무시하는 사람은 물을 먹고 녹초가 되어 다시 첫 단계인 바닷가 언저리에서 첨벙거리게 된다.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사실 나는 아직도 파도에 도전한다. 그 기회를 잘 타고 싶어 도전하는데 매번 물 먹는다. 그래서 아직 가장 가까운 사람과도 성숙하지 못한 대화를 이어간다. 그렇지만 희망이 있다고 보는 건, 다시 기회의 파도를 탈 의지가 있다는 거다. 우리가 소통의 장벽에 부딪히게 되고 기다림의 미학을 지나 파도가 내게 온다면, 나는 또 한 번 올라 탈 기회를 엿볼 것이다. 또 상대를 기다리지 못하거나 나를 제어하지 못해서 파도를 놓쳐버린다 하더라도 물 밖에 나와 다른 삶을 살 생각은 없다. 또 다른 파도를 기다리고 또 다른 기회를 엿볼 것이다. 십 년 동안 인터뷰했던 것처럼, 적어도 십 년은 파도를 탈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