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운 초여름 날. 인터뷰를 위해 당도한 곳은 일산이었다. 인터뷰를 하러 왔다고 이야기하고 난 후, 나는 이 건물 저 건물을 지나 인터뷰이가 있는 곳에 당도했다. 홀트아동복지회.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인터뷰이는 조병국 의사 선생님이셨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의사 선생님. 초등학교 5학년 때 대한민국이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생님의 나이를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옛날이야기를 듣지 못했던 것에 갈증이 조금 있었다. 진짜 이 나라의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할 즈음, 그 시절을 살았던 내 조부모의 생생한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내가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했을 땐 이미 물어볼 수 있는 시기를 놓친 때였다. 그래서인지 조병국 선생님을 만나는 날, 조금 기대했던 것 같다.
선생님과의 대화는 기대 이상을 넘어섰다. 선생님의 삶은 역사 교과서였다. 그 안에 일제강점기가 있었고, 해방이 있었고, 한국전쟁이 있었다. 선생님의 조부모가 겪은 이야기, 부모가 겪은 이야기, 선생님이 겪은 이야기를 합치면 그저 역사서였다.
조금 더 내 조부모에게 관심과 애착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아빠는 막내였고, 아빠와 엄마가 결혼할 때 양가 조부모님은 모두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그러니까, 내가 어리광을 부리며 옛날이야기를 들려달라며 치댈 수 있는 분들이 아니었다. 그나마 대화를 할 수 있었을 땐 조부모님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친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가만히 앉아서 자꾸 몇 시냐고 똑같은 질문만 하시는 모습이었고 친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오빠와 나를 많이 차별했지만 언제부턴가 오빠가 아닌 나에게 쌈짓돈을 몰래 주셨던 모습이었다.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 외적인 모습만 어렴풋이 남아 있고 외할머니는 그나마 최근까지 나를 가장 사랑으로 대해주셨던 분이셨다.
조병국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조부모님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때는 이미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선생님과의 대화가 좋아, 자꾸 조부모님을 떠올렸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가득 받고 싶었던 어린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
상대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의 여러 요소들과 마주한다. 작게는 가정환경에서부터, 크게는 나라와 세계의 정세까지. 그 당시 그가 살아온 발자취는 그 문화와 환경에서만 해석 가능하기에 문화와 환경, 배경을 다시 마주해야만 한다. 그래서 같은 연배의 사람보다 다른 연령과의 대화가 신기하고 기대가 되는 이유다. 물론 비슷한 연령은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 흥미를 유발한다.
선생님과의 대화는 내가 가보지 못했던 공간과 시간으로 나를 인도했다. 나는 당시의 선생님이 되어 함께 고민하고 결정했다. 그렇게 나는 상대에게 이입되는 대화를 이어갔다.
감정이 이입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인터뷰와 상담은 비슷하다.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가 겪었던 아픔을 나눠야 한다. 하지만 가장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극복된 현재의 기쁨 역시 나눌 수 있다는 거다. 이 메리트가 과거의 아픈 대화를 아름답게 승화시킨다. 나는 함께 그 대화에 들어가지만 결국 겉핥기 대화밖에 할 수 없는 이유다.
단지 인터뷰가 겉핥기일 뿐일지라도, 나는 그 삶에 들어가 그와 함께 살아가는 인터뷰가 좋다. 계속해서 대화하게 해 주고 그 사람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는 일. 한 부분을 전문적으로 들여다보는 외과 전문의가 아닌, 전체를 아울러 봐야만 하는 정신과 전문의 같은. 이 일이 좋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