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 거절당할 용기

by 이혜미인

인터뷰를 요청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듣기까지 시간이 소요된다. 그들도 인터뷰지와 인터뷰 내용을 검토하고 스케줄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회의가 이뤄진다. 나는 그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인터뷰를 할 수 있는지 확인 전화를 하게 된다. 이때 10에 8은 거절이다. 스케줄이 맞지 않는다, 지금 활동이 너무 많아 시간 내기 어렵다, 지금 활동이 없어 활동할 때 인터뷰하고 싶다. 대부분 이런 유의 거절이다.


확인 전화를 하지 않으면 그 거절 내용을 듣지 않게 되는데, 나는 확인해야만 하는 입장이기에 거절될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거절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전화를 건다. 거절하면 "그렇군요. 다음에 다시 한번 연락드릴게요. 감사합니다."하고 끝나면 되는데 그 전화를 걸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그 거절마저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거절당할 용기가 없는 사람이 나였다.


그들은 '나'라는 사람 자체가 싫어서 거절하는 게 아닌데도 나는 나를 부정당한 것 같은 느낌에 그 순간을 피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하루 이틀 전화를 미루기도 했다.


나는 거절을 불편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상대가 나를 거절할 기미기 조금이라도 보이면 먼저 거절했다. 내가 제안한 게 있으면 회수했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이후로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먼저 표현해 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4학년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고 그때 딱 한 번이었다.) 거절당할 용기가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엔 동네 '전도 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는 곳마다 전도를 하고 다녔다. "아줌마, 교회 다니세요? 예수님 믿으세요? 제가 이거 도와드릴게요. 이번 주에 교회 오실래요?" 가족끼리 외식을 해도 나는 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전도하느라 식사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활발하고 붙침성 좋던 나는 언제부터인가 얌전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실 얌전한 게 아니라 얌전한 척하는 사람이다.)


둘이 있으면 편했지만, 여럿 있으면 말을 아꼈다. 그게 하나의 성향이 되었고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데에는 수많은 다짐과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 리더십 있게 말을 잘하는 사람을 동경했다. 내성적이고 야리야리한 사람 말고 강하고 남자다운 남자를 선호한 이유도 그랬다. 나는 A에게 마음이 있지만 B가 내 마음을 더 잘 받아줄 것 같으면 의지적으로 B를 좋아했다. 이 정도면 병 같다. 거절당하는 게 무서워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만 만나왔다. 상대가 나에게 더 이상 호감이 없어 보이거나 내가 그의 관심 밖이 되어버린다고 생각이 들면 선수 쳤다. 나쁜 년이 되는 게 거절당하는 거보다 100배는 더 나았다.


'인터뷰'라는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지난 10여 년간 200여 명의 사람을 만났다면, 나는 400여 건 정도의 거절을 당했을 거라 추측된다. 그 정도 거절을 당했으면 익숙해질 만 한데 나는 아직도 그게 익숙하지 않다. 이제 머리로는 안다. 이게 상처 받을 일이 아니고 상대에게도 사정이 있으니 충분히 거절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별 일 아니니, 훌훌 털어버리면 될 일이라고. 머리는 알지만 마음은 머리만큼 따라주지 않는다. 아직도 전화를 걸지 못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면 말 다 했다.


어느 누가 거절당하는 게 익숙하고 좋겠나. 내 말에, 내 마음에 모두가 ok면 또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머리로 인지한다면, 부디 거절받을 용기가 조금씩 쌓여 조금은 무뎌졌으면 좋겠다.


이제, 다시 전화를 걸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