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와 미라클모닝, 그리고 배신

배신에 관한 아주 가벼운 단상

by 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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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나를 배신하곤 한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도 이따금씩 분수에 맞지 않달까 천성에 맞지 않달까 어쨌거나 나와는 맞지 않는 성향이나 생활양식에 눈독을 들이곤 한다. 이를테면 미니멀리스트의 삶이나 미라클 모닝이라거나 하는 것들.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그날, 나는 잘 입지 않는 옷을 모조리 정리했다. 그리고 며칠 후, 15개 정도의 마스킹 테이프를 그대로 놔두고 3개의 마스킹 테이프를 더 사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미니멀리스트로서는 며칠이라도 살아봤지 미라클 모닝의 경우는 더 빠르게 배신당했다. 첫날 일찍 일어나기 위해 야심 차게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포기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 날 아침 나는 그냥 더 많이 자고 개운하게 일어난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럴 때면 내가 한심해 보이기도 하고 왜 이렇게 의지력이 부족할까 자책도 꽤나 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이젠 그냥 뭐 어쩌겠나 싶은 마음이다. 또다시 쿨하고 멋져 보이는 것들을 발견하면 배신당할 걸 알면서도 발 살짝 담가보고 역시나 배신당하면 '원래 나대로 사는 게 더 행복하긴 하다 그치?' 하며 살던 대로 살아가야지.


나에 대한 나의 배신은 (바람직하지 못하게도) 이제 내 삶의 일부가 된 것 같다. 그래서 '원래 나대로 사는 게 더 행복하다'는 정신승리를 하게 되는데,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으면서 내 기분이 나아지면 정신승리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세상에 쓰고 보니 이것조차 정신승리였구나...!


그래도 가끔씩 멋진 것들에 꾸준히 기웃거리다 보면 한 번은 나에게 배신당하지 않는 날도 오지 않을까 하는 조금의 기대를 머금고, 다음의 배신은 조금 더 여유롭게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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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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