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이구 이 인간아
결론부터 말하면 사람은 변한다. 우리는 분명히 고쳐쓸 수 있다. 2023년이 되면서 나는 거의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왜 하필 올해 이런 변화가 생겼는지 나조차 의문이다. 이런 걸 터닝포인트라고 표현하는 걸까. 나를 평생 지켜본 엄마와 아빠는 변한 내 모습을 보고 "천지가 개벽했다”라고 말했다. 10살 때부터 친구인 근영이는 “너 개과천선 컨셉이냐”라고 물었다. 상반기가 끝났으니 지금까지 변화한 부분을 정리해보겠다.
첫 번째로 개과천선한 부분은 식단이다. 예전에는 살기 위해 먹었다면 이제는 나와 맞는 음식을 찾고 싶어졌다. 평소에 점심은 잘 먹지 않고, 저녁은 회사에서 챙겨 먹어야 하기 때문에 내 손으로 준비할 수 있는 건 아침 식사다. 매일 아침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시간만큼 어울리는 아침 식단을 고르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공복에 먹고 몸의 컨디션이 좋아졌던 건 사과, 요거트, 커피, 아몬드, 계란 2개, 베이글, 통밀빵, 닭가슴살, 오이, 당근, 토마토, 초콜릿이다. 무거움을 느꼈던 건 우유, 버터, 치즈, 밥, 고기류였다. 내 컨디션을 좋게 만들어주는 음식들을 조합해서 건강한 식사를 만든다(의학적 근거는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5분만 더 자려고 애쓰던 내가 아침 식사 덕분에 30분 일찍 일어나고 있다. 나는 확신의
야행성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만든 프레임이었다. 의외로 밤 시간보다 아침 시간을 길게 활용하는 것이 내 몸에 더 잘 맞는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두 번째 천지가 개벽할 일은 능동적으로 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일평생 ‘운동은 오히려 건강을 해친다’고 주장했다. 작년까지 아주 억지로 운동을 했었는데 식단을 신경쓰면서 몸에 대해 긍정적인 관심이 생긴 듯 하다. 도대체 나도 내가 왜 이러는 지 모르겠는데 올해는 아예 요일을 정해서 두 가지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드디어 미친 걸까) 월요일, 금요일, 토요일은 운동을 1순위에 두었다. (진짜 미쳤네) 편집이 남아도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퇴근해 버렸다.
올해 마침 좋은 필라테스 선생님을 만난 것도 신의 한 수다. 나는 골반과 어깨가 특히 안 좋았는데 선생님을 만나고 이 지점이 개선됐다. 덕분에 러닝을 할 때도 금방 피로해지지 않는다. 상반기에 유독 체력 소비가 심한 해외 출장이 많았는데 탈이 나지 않은 걸 보니 운동은 건강을 해친다는 주장은 철회하겠다.
세 번째는 가장 믿기 어려운 변화인데 기록하는 습관을 갖게 된 거다. 심지어 3단계로 나눠서 기록을 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비몽사몽 오늘 하고 싶은 일을 오전 / 오후/ 밤으로 나눠서 기록한다.
2023/ 06 / XX
오전 / 건강한 식사, 스트레칭
오후 / 기획 회의, 편집, 브레인스토밍
밤 / 영어 공부, 명상
그리고 일상을 보내면서 1-2시간 좀 더 짧은 단위로 있었던 일을 기록한다. 문장형으로 쓰기 귀찮아서 키워드 단어들만 나열하는 편이다.
2023/ 06 / XX
스트레칭 / 두부 계란 2개 요거트 / 출근 폭우 /엄마가 만든 쑥떡 3개 / 샤이니 편 편집 마무리 / 기획 회의 / 촬영 준비/ 경영지원팀과의 대화 / PPL 관련 미팅 / 수빈 지녕 만남 / 송희와 당근케이크 / 가족과 대화 / 아이엘츠 리딩 3문제 / 취침
마지막으로 잠들기 전에 일기를 쓴다. 앞선 기록들과는 다르게 긴 문장으로, 사실보다는 감상 위주로 쓰면서 하루를 정리한다.
2023/ 06 / XX
어제는 하루종일 엘리베이터를 눈앞에서 놓쳐서 짜증이 났는데 오늘은 하루종일 엘리베이터를 눈앞에서 잡았다. 어제가 망했다고 해서 오늘까지 망하지는 않는다.
1달 동안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던 출입증을 어이없게 가디건 주머니에서 찾았다. 복잡하게 안 풀리던 일은 언젠가 아주 예상치 못한 순간에 황당할 만큼 쉽게 풀린다.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이런 변화의 계기는 회사에서 연초에 명목상(?) 나눠주는 다이어리를 받은 일이다. 다이어리를 쓰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회사 다이어리를 받겠다고 신청한 적이 없다. 그런데 올해 내가 신청도 하지 않은 회사의 다이어리가 내 책상에 올려져 있었다. 아직도 이것이 누군가의 실수인지, 하늘에서 뚝 떨어졌는지 알 길이 없다. 다이어리가 내 손에 들어온 이상 이 것을 유용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겼다.
날짜별로 간단한 메모와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것이 용도라고 한다. 정석대로 사용해 줘야 다이어리도 제 몫을 할 수가 있다. 어색하게 날짜를 적었다. 하루를 기록하는 일은 급식 시절 이후로 처음이다. 초딩 때 방학숙제도 3일 전에 몰아서 쓰고, 고3 때는 선생님이 시켜서 억지로 했으니까 자발적으로 일기를 쓴 적은 머리털 나고 처음인 거다. 일기를 쓰다 보니 기록하는 일이 내 하루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됐다. 기록을 하면 일상이 심플해지고 아이디어가 정리된다. 그래서 더 자주, 많이, 편하게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2023년에 일어난 이 변화들은 나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있기때문에 쭉 유지해보려고 한다. 오늘도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먹고 운동하고 기록한다. 연말까지 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면 개과천선은 컨셉이 아닌 사실인 걸로 근영아 좀 믿어줘라.
Side note:
2023년 상반기의 마무리는 영원한 밥친구 샤이니와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