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친해질 수 있을까?
요즘 애들은 TV도 안 보는데 왜 굳이 TV판을 하려고 그래?
이번 추석 특집을 제작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웹 예능인 <문명특급>이 TV에 꾸역꾸역 얼굴을 내민 이유는 밀레니얼 세대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세상에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지상파에서 우리 세대(필자도 밀레니얼 세대이다)를 ‘요즘 애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밀레니얼 세대를 타자화 했고 우리의 문화를 분석해야 하는 소재로 소비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대부분 4050 세대가 자리 잡았다. 그에 따라 출연자와 진행자도 맞춰졌다. 결국 ‘요즘 애들’이라고 불리던 우리의 동년배들은 지상파에서 자취를 감췄고 자신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유튜브로 이동했다. 지상파와 밀레니얼 세대는 마치 권태기가 온 연인처럼 공감대를 찾지 못하고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논스톱>, <주먹이 운다>, <품행제로>, <헤이 헤이 헤이>, <X맨>, <느낌표- 0교시 폐지>를 보면서 자라온 나로서는 젊은 층의 이야기가 지상파에서 사라진 것에 대해 큰 공허함을 느꼈다. 이것이 우리가 <문명특급>을 기획하게 된 이유다. 밀레니얼 세대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문명특급>은 90년대생부터 00년대생의 신문명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자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진행자인 90년대생 연반인 재재는 수면 아래에 있던 신문명을 체험하며 고군분투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문명특급>의 기획 의도를 가장 잘 담고 있다. 재재는 당시 새롭게 등장한 결혼 문화인 ‘비혼’을 소개하고 ‘비혼식’을 직접 올렸다. 5화에서는 간편한 후드티가 교복인 고등학교를 소개하며 불편한 교복을 입던 다른 중고등학생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17화에서는 디지털 포렌식을 소개하고 ‘디지털 장례식’을 기획해서 구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그 외에도 초등학생, 중학생, 대학생, 사회인들만의 문화를 보여주며 소재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문명특급> 소재의 결정권은 90년대생 제작진들에게 있다. 이를 절대적으로 지켜준 정연 전 팀장님과 하현종 대표님께 이 글을 통해 감사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정했던 이런 소재들은 방송계에서 마이너 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뉴미디어라는 플랫폼도 방송계에서는 아웃사이더로 취급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우리는 2017년도부터 매주 꾸준히 방송을 만들어왔지만 TV에 걸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송도 안 만들어 본 것들’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방송계의 무관심(이라고 쓰고 무시와 비웃음이라고 읽고 싶다) 속에서 <문명특급> 제작진은 우리의 플랫폼에서 시청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매주 목요일 5시마다 정기적으로 방영했고 이제 160회를 앞두고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애초에 지상파 진출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다. 제약이 많은 지상파를 포기한 대신 제약 없는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자유로운 포맷과 편성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실례로 코로나로 인한 '마스크 대란'이 젊은 층에서 큰 화제가 됐을 때 직접 마스크를 사보는 콘텐츠를 하자고 30분 만에 회의로 결정했다. 진행자 재재는 4시간 동안 줄을 서서 직접 마스크를 샀고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3시간 만에 편집을 마무리했다. 정규 편성은 목요일이지만 시의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금요일에 긴급 편성을 했다. NCT127이 출연했을 땐 평소보다 큰 호응이 있었다. 분량 때문에 아쉽지만 편집해야 했던 장면들을 모아서 후공개 콘텐츠로 재편집했다. 마찬가지로 정규 편성은 목요일이었지만 토요일에 깜짝 편성을 했다. 후공개 콘텐츠 역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애국가도 4절까지 있지 않은가. 2차 후공개 영상을 일요일에 한번 더 편성했다. 시청자들은 끊임없이 생성되는 미공개 영상에 즐거워했다. 본편과 후공개 영상 2개를 합치면 유튜브 분석 상으로도 가장 높은 시청수를 기록했다. 본편 이외에도 다양한 콘텐츠로 시청자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편성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무기였다. 자유로운 콘텐츠 덕에 시청자는 점점 늘어갔다. 마이너와 아웃사이더 대신 파격과 새로움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모순적이게도 지상파 진출을 염두하지 않았던 우리에게 지상파 진출의 기회가 왔다. SBS 추석 특집으로 금요일 밤 11시 편성이 확정됐다. 추석 특집 콘텐츠를 만들기 전에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 번째는 지상파에 맞춘다고 <문명특급>의 본질을 흐리지 말자. 두 번째는 TV에서는 빠르더라도 평소 하던 편집의 텐션을 유지하자. 세 번째는 <문명특급>의 기존 플랫폼을 메인으로 TV를 서브로 두자. 우리 목표는 기존 TV 시청자의 유입도 있겠지만 유튜브를 보던 젊은 층을 TV 앞으로 끌어오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원칙을 세우고 기존 문법에 따가지 않기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먼저 TV의 강점인 스케일과 영향력을 가장 영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했다. SBS가 이미 가지고 있는 인프라를 이용하고 싶었다. 스치듯 봤던 구독자의 댓글이 생각났다.
문명특급에서 숨듣명 콘서트 해줬으면 좋겠다
콘서트라면 이미 시스템이 갖춰진 SBS에서만 가능하다. ‘숨어 듣는 명곡’은 <문명특급>에게 오리지널리티가 있다. 두 가지의 강점을 가장 잘 섞을 수 있는 기획을 구독자를 통해 얻었다. 웹 예능인 우리의 도전은 지상파에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를 전파하는 과정이었다. 우리는 <숨듣명 콘서트>를 기획하여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노래들을 다시 끌어올리기로 했다. 티아라 완전체를 소환했고 SS501을 재결합시켰다. 유키스와 틴탑의 콜라보인 틴키스도 선보였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숨듣명 콘서트>를 통해 10년 전을 추억했다. TV 방영본을 <문명특급> 유튜브에도 함께 올렸는데 구독자들의 댓글로 직접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영 후 CJ E&M이 발표한 콘텐츠 영향력 부문에서 비밀의 숲과 청춘기록의 뒤를 이어 3위를 기록했고, 2.3%의 시청률로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명특급> 팀은 작은 공 하나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지상파에 밀레니얼 세대의 이야기가 더욱 넘쳐나길 소망한다. "요즘 애들 TV 안 보잖아?"라는 생각으로 밀레니얼 세대를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우리는 어떤 세대보다 능동적인 시청자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TV 구입까지 마다하지 않을 의욕 넘치는 시청자라고 보증한다. 웹에는 밀레니얼 세대의 이야기가 가득하다는 장점이 있고 지상파는 스케일이 크고 건강한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강점이 있다. 두 채널이 콜라보한다면 젊고 건강한 콘텐츠가 탄생할 것이다. 하지만 콜라보는 단발성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최근 사례에서 봤 듯 웹상의 검증되지 않은 출연자를 섭외하고 논란이 생겨 나중에 급하게 다 편집해야하는 수고를 반복할 수도 있다.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웹과 지상파를 모두 넘나드는 킬러 콘텐츠를 기획해야한다. 현재 밀레니얼 세대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오픈 채팅방도 들어가보고, 그들만의 커뮤니티도 접속해보고, 친구 동생의 사촌동생이라도 섭외하여 무엇을 좋아하는지 인터뷰 해야한다. 책, 영화, 신문보다 훨씬 얻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다. 밀레니얼 세대가 반응하는 킬러콘텐츠가 무엇일까 다 함께 고민해야 한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지상파와 밀레니얼 세대의 권태를 극복할 노력이 방송계에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다.
(한국방송작가협회 기고글입니다)
Side note: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 2편을 첨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