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 디자이너 박시영
섭외를 하던 조연출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섭외 메일을 잘못 보낸 것이다.
상황은 대충 이렇다.
원래 문특의 영화 굿즈 특집으로 000(익명) 디자이너를 인터뷰하려 했다. 000 디자이너는 사정상 출연이 어려웠고 우리는 차라리 영화 포스터 쪽으로 방향을 틀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던 중 굵직한 상업 영화 포스터를 만든 박시영 디자이너를 찾았다.
To. 박시영 디자이너
안녕하세요 문명특급입니다
평소 000 디자이너 님의 작품을 감명 깊게 보던 중 이렇게 섭외를 드리게...
조연출은 박시영 디자이너에게 000 디자이너에게 보냈던 메일을 실수로 잘못 보냈다. 주어가 바뀐 섭외 메일을 보면 얼마나 황당할까. 이건 마치 SBS 지원서에 KBS에 꼭 입사하고 싶습니다!라고 쓴 것과 같다. 겉으로는 조연출에게 괜찮다고 안심시켰지만 사실 나도 식은땀이 주룩 났다. 섭외가 되더라도 우리 팀에 대한 첫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촬영 또한 걱정이었다.
그런데 박시영 디자이너의 답변은 내 예측과 달랐다.
To. 문특
평소 문명특급의 팬입니다. 000 디자이너와 친한 사이인데 섭외가 안 되신 거면 제가 대신해드릴까요?
삔또가 상해도 모자랄 판에 역 섭외라니? 처음 보는 캐릭터였다. 그를 직접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졌다. 조연출은 우리의 사정을 잘 이야기했고, 영화 포스터에 대한 썰을 풀어달라며 그를 섭외하는데 성공했다.
직접 만난 박시영 디자이너는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이상했다.
1. 꿈이 뭐예요? -> '웃상'이요
2. 포스터 왜 이렇게 잘 만들어요? -> 배우가 잘한 건데?
3. 포스터에 감정이 느껴지는데 비결이 뭐예요? -> 영화가 그런 건데?
4. 그림도 잘 그리시네요? -> 사진 보고 베낀 건데?
5. 후배들 잘 챙기시네요? -> 있어 보이려고 그러는 거죠
6. 영화 좌석 차등제에 대한 생각은? -> C*V가 잘못하고 있는 거죠 부동산 투기도 아니고
7. 요즘 포스터 디자인 트렌드는? -> 개판 아니면 좀 나아지는 편
8. 이렇게 다 얘기하셔서 이제 일 안 들어오는 건 아닌지? -> 벌 만큼 벌었으니까 이런 얘기 하는 거예요
9. 망할 작정한 김에 더 얘기할 게 없으신지? -> 노동 강도. 꿈을 빌미로 밤샘 작업을 시키면 안 되죠
10. 소신 있으시네요 -> 꼰대죠 꼰대 왕꼰대
이런 꼰대라면 환영이다. 편집을 끝내고 나니 15년 뒤 내 모습이 그와 비슷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독자들도 같은 생각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Side note:
1. 이번 편은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문특 만의 톤을 만들기 위한 도전이었다. 농도 조절을 잘못해서 우리의 의도가 어중간하게 전달될까 봐 두려웠다. 최근 제작한 영상 중 가장 스트레스가 컸던 것 같다.
2. 야니가 영화 굿즈에 대한 아이템을 가져왔는데 난 생각하지 못했던 분야다. 야니는 아이템을 보는 시야가 훨씬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