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을지 모른다
스펙 쌓기에 대학 생활을 쏟아붓고, 불평등 앞에 좌절하고, 흙수저로 꾸역꾸역 밥을 퍼먹던 90년대 초반생들.
헬조선을 탈출하지 못했다면 지금쯤 사회생활 2-4년 차가 되어 벌건 눈을 비비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4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스브스뉴스에 근무하며 10명이 넘는 대학생 인턴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같은 20대라는 이유로 그들이 나를 친구처럼 대해주길 바랐다. 3살 터울이 나는 친동생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들과 장난도 많이 치고, 편하게 농담도 던지고, 동네 언니처럼 수다도 떨었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보니 굉장히 불편했다. 이 불편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깜빡 잊은 게 있었다. 영원히 1년 차 사원일 줄 알았지만 시간이 있는 힘껏 흘러버렸던 것. 사원증 속 깨끗했던 취업사진도 희끗하게 벗겨졌다. 난 어느덧 직장상사가 되어 있었다. 죽도록 욕하던 그 상사가 이제 나다.
6개월간 최선을 다해줬던 대학생 인턴 유니가 학교로 돌아갔다. 그리고 오늘 새로운 대학생 인턴이 조연출로 문명특급 팀에 합류했다. 발전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새로 온 조연출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텍스트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1. 근무시간 외 연락 금지
혼자 야근하다 가끔 촬영본 백업 폴더를 못 찾을 때면 조연출에게 급하게 연락을 했다. 조연출이 퇴근하기 전 충분히 물어볼 수 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게을렀다. 급한 용무라서 어쩔 수 없었다? 닥치고 반성하자.
2. 모니터 쳐다보기 금지
편집이 어느 정도 됐는지 빨리 확인하고 싶어서 조연출의 모니터를 쳐다봤다. 남의 컴퓨터를 들여다볼 땐 노크가 필요하다. 뒤에서 잠깐이라도 후배의 모니터를 쳐다본 적이 있다면 그건 바로 염탐이다. 더 나아가 모니터에 켜놓은 PC카톡을 외면하지 않고 본 적 있다면 무릎 꿇고 사과하자.
3. 저녁 사주기 금지
점심 약속은 괜찮지만 개인적으로 선배와의 저녁 약속을 정말 싫어한다. 대학시절부터의 경험에 따르면 술 먹고 실수하는 모습을 더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후배들도 선배인 나와의 저녁 약속을 싫어할 수 있다. 선배들과의 저녁 술자리는 꺼리면서 후배들과의 술자리는 즐긴다면 반성하자. 후배들이 나를 정말 진심으로 의심의 여지없이 좋아해서 술을 사달라고 먼저 졸랐다? 더 창피당하기 전에 입을 다물도록 하자.
4. 옷 평가 금지
어떤 후배와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스 브레이킹 짬바를 보여주기 위해 어떤 얘기라도 하고 싶은 욕구가 차올랐다. 애인 있냐는 질문은 당연히 금지고, 어디 대학이냐는 질문은 최악이고, 고향에 대한 질문은 진부하다. 마침 여름이라 옷을 시원하게 입고 왔길래 칭찬을 해줬다. 다음 날부터 후배는 긴 바지를 입고 왔다. 내 칭찬이 의도와 다르게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후배가 뭘 입던 제발 참견하지 말자. 칭찬도 하지 말자. 칭찬은 어련히 후배의 실친(실제 친구)들이 해주고 있을 것이다.
5. 철벽 치기 금지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후배와 관계 맺기 자체를 포기하는 것도 금지다. 업무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상사가 되기 위해 시간을 쓰도록 하자. 후배에게 근무시간 외 연락하는 이유는 내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후배의 모니터에 관심이 가는 이유는 내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기 때문이다. 후배와 술자리를 만들려는 이유는 업무 때 표출할 수 없었던 내 역량을 술자리에서라도 과시하고 싶기 때문이다. 후배의 외면을 평가하는 이유는 내가 보이는 것에 가장 신경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후배 탓 하지 말고 본인의 능력치를 키워서 철벽을 허물도록 하자.
내가 상사 짓을 하면 로맨스고 남이 상사 짓을 하면 불륜이다. '내로남불'의 전형이 되기 전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우리도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90년생은 프로불편러라는 수식어를 창조한 영광의 첫 세대다. 우리처럼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후배를 응원하자.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말하는 후배를 외면하지 말자. 마지막으로 우리가 분노했던 어른들의 모습을 절대로 잊지 말자.
Side note:
이 글을 읽고 뭔가 기분이 나빴다면 당신은 꼰대 초기 증상.
후배들에게 SNS 친구 신청도 조심하라는 의미로 이 영상을 첨부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C6Qt9efRI0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