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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Nov 16. 2018

바닷길과 하늘길,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 인천

세계로 이어지는 도시, 인천의 면면을 여행했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도시였던 인천은 조선의 개항기, 서양의 근대 문물이 대거 유입되는 중요한 관문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 인천에 남아있는 근현대 건축물들을 통해 우리는 이 시기 한국에 영향을 미쳤던 다양한 외국 문물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조선의 대표적인 무역항이었던 인천은 이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는 등 한국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오늘날 인천은 하늘길과 바닷길을 열어 두고 세계의 관문이 되었습니다. 동북아시아 허브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을 비롯하여 간석지를 개발해 건설한 국제도시는 인천이 여전히 한국 역사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천의 작은 중국, 차이나타운


우리나라 최초의 기차역이었다는 인천역에 내리면 ‘중화가’라는 현판이 쓰인 화려한 패루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패루는 중국의 전통적 건축양식의 하나로 문(門)을 상징합니다. 이 패루에 들어서면 인천 차이나타운이 시작되는데, 온통 붉은색과 금색으로 화려한 장식을 한 상점이 즐비합니다. 차이나타운은 개항 시기 인천에 청나라 조계 지역(치외법권 지역)이 생기자 화교들이 들어와 살면서 형성된 곳으로 당시 조선에서도 부유한 화교들이 밀집된 곳이기도 했습니다. 중국 음식 하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짜장면도 이곳 인천 차이나타운에 자리했던 ‘공화춘’이라는 곳에서 출발했습니다. 사실 짜장면은 정통 중국 음식이 아니라 당시 인천 부두에서 일하던 청나라 노동자들이 춘장에 국수를 비벼 먹던 것이 시초가 되어 발전한 것입니다. 현재 공화춘 건물은 짜장면 박물관(등록문화재 제246호)으로 등록되어 건축물로서의 가치는 물론 그 시대 생활상을 보여줍니다. 



좀 더 위로 걷다 보면 삼국지 이야기를 벽화를 통해 쉽게 보여주는 삼국지 벽화거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영웅들의 활약을 그림으로 보며 한 걸음씩 옮기다 보니 어느새 자유공원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을 수행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인천 앞바다를 등지고서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승기를 잡았다는 의미로 조성된 곳이라고 하나,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눌 수밖에 없었던 지난 우리 역사를 동시에 마주하는 가슴 아픈 장소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의 흔적, 인천개항누리길 & 아트플랫폼


청국 조계지 계단을 경계로 오른편으로 일본 조계지가 시작됩니다. 마치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영화 세트장에 들어선 듯 낯설고도 익숙한 풍경입니다. 옛 일본 영사관이었다는 인천시 중구청까지 이어지는 거리 양쪽으로 2, 3층짜리 일본식 목조건물이 줄지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와와 달리 좁고 곡선이 거의 없는 진회색 기와가 땅을 향해 수직에 가까운 모습으로 뻗어 있습니다. 격자무늬의 목조 창문은 흰 벽과 더불어 담백한 미(美)를 드러냅니다. 앞서 화려하고 섬세한 중국식 건축물과 비교하면서 걷는 즐거움이 쏠쏠합니다. 조금 더 가면 근대 건축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일본은행거리가 나타납니다. 인천근대건축전시관은 일본 제18국립은행 인천지점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인천의 근대 건축물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 중입니다. 



그 옆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은행이자 일본 제1은행으로 지금은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사용 중인 건물이 나타납니다. 박물관 외관은 위에 작은 돔이 올라가 있고 출입구는 반 아치형으로 디자인되어 서양과 일본의 건축양식이 혼재된 느낌입니다. 내부는 개항 이후 철도(경인선)도입 역사를 비롯하여 인천 지역의 변천사를 볼 수 있는 전시관이 운영 중입니다.



일본은행거리에서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인 대불호텔전시관도 만날 수 있습니다. 개항 이후 많은 외국인이 인천에 드나들기 시작하자 숙박 시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무역상 일본인 호리 히사타로가 이곳에 대불호텔을 건립했습니다. 서양식 3층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입한 커피와 서양 음식으로 식사를 제공했다고 합니다. 이후 경영난으로 중국인이 매입하여 ‘중화루’라는 북경요리집으로 운영하였으나 이후 건물이 철거되었고 지금과 같이 복원하여 대불호텔전시관으로 사용 중입니다. 



일본은행거리 아래로는 인천아트플랫폼이 조성되어 지역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돕고 있습니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창의적인 조형물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포토존처럼 역할을 합니다. 활기찬 거리 한쪽 세월에 바랜 그림처럼 묵묵히 서 있는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건물이 보입니다. 당시 대한제국의 해운 업무를 독점해 쌀과 물자를 수탈했던 곳으로 비록 뼈아픈 역사지만 잊지않고 기억하겠다는 측면에서 원형 그대로 보존·관리되고 있습니다.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따라 추억 속으로


배다리라는 지명은 ‘배를 타기 위한 다리가 놓여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한국전쟁 직후까지 이곳 배다리에서 다양한 물자 교환이 이루어졌는데 특히 서적이 모이면서 헌책방거리가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인해 궁핍한 삶이지만 지식에 대한 갈구는 어쩌지 못한 모양입니다. 산업화와 도시 개발이 진행되면서 헌책방도 거의 사라지고 몇 군데밖에 남지 않았지만 최근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진 덕에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찾는 관광객들이 조금 늘었다고 합니다. 



헌책방거리를 지나 신포시장 방향으로 걷다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이라는 애관극장과 인천시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가톨릭 건축물인 답동성당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애관극장은 정치국이라는 조선인이 ‘협률사’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이래 친일파와 일본인 경영자에 의해 운영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애관극장은 인천시 최고의 극장으로 인천 시민의 사랑을 받았으며 요즘과 같이 대형 멀티플렉스가 주도하는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철거 대신 극장 보존을 위한 운영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외부에 위치한 매표소와 그 시대의 향수를 온전히 담고 있는 극장 간판의 서체, 복층의 상영관 구조는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지키고 싶은 소중한 추억일 것입니다.



극장 건너편의 작은 언덕을 오르면 답동성당입니다. 이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세 개의 종탑이 있습니다. 내부에 들어서면 아치형 창에 장식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지는 햇살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세계로 향하는 하늘길 그리고 국제도시 인천


인천국제공항은 세계항공서비스평가 부문에서 1, 2위를 다툴 만큼 우수한 시설과 서비스 품질을 자랑합니다. 최근에는 제2여객터미널까지 개장하며 확대되는 항공 수요를 차질 없이 수용하는 등 세계적인 공항으로 재도약하고 있습니다. 인천 영종도 하늘정원에서는 인천국제공항을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낮은 고도로 비행기가 지나가기 때문에 어디 국적기인지 화물기인지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드넓게 펼쳐진 하늘로 시원하게 활강하는 비행기를 보고 있으면 어디든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도 일렁입니다. 인천은 섬이 많고 갯벌이 많아 필요한 간척지를 매립하여 도시를 개발해왔습니다. 이를 통해 탄생한 송도와 청라지구 국제도시는 이제껏 봐왔던 인천의 근현대 및 산업화 시대의 풍경과는 확연히 다른 신도시로서의 인천을 보여줍니다.


세계 검도인들이 찾은 인천


올해는 제17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해입니다. 30년 만에 한국에서 개최되는 이번 국제대회는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진행됐습니다. 대회 일주일 전부터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56개 국가의 검도 국가대표 선수들이 입국하였고 공항 근처와 대회장 근처의 숙소와 음식점은 다양한 국적의 외국 선수들로 북적댔습니다. 검도 강국인 한국과 일본은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를 비롯한 서양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검객들로 인천의 낮과 밤은 다문화 축제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경기장에 들어서자 중앙의 태극기를 중심으로 참가국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습니다. 총 6개의 경기장에서 동시에 시합이 진행되었고 경기장 주변은 자신의 차례를 진지하게 기다리며 호흡을 가다듬는 각국 선수들의 에너지로 보는 사람마저 땀에 흠뻑 젖을 지경이었습니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검도는 예(禮)에서 시작하여 예(禮)로 끝나는 운동입니다. 따라서 검도는 승자의 세레머니를 보기 드뭅니다. 그만큼 겨룬 상대를 끝까지 존중하고 배움을 얻는다는 정신이 담긴 ‘무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날 만난 검도 8단 교사(敎士) 서남철 사범은 “세계검도선수권대회는 3년마다 열리는 국제 단일 대회입니다. 이번 한국 개최를 계기로 검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앞으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검도 종목이 채택된다면 보다 많은 검도인이 생겨나고 한국 검도 또한 세계적으로 실력을 더욱 인정받을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의지를 다졌습니다.

검도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목의 국제대회가 인천에서 열리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세계의 관문으로서 인천이 가진 지리적 이점 덕분이 아닐까요? 과거 역사적 아픔을 짊어지고 세상과 통해야 했지만 이제 인천은 스스로의 힘으로 세계와 한국을 통하게 하고 있습니다.




글. 문나나(홍보지원팀 과장)
사진. 이승우(홍보지원팀 차장)
 
 

현대모비스 사보 2018년 10월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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