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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Aug 23. 2024

선을 넘는 즐거움, 캐스퍼 일렉트릭 시승기

현대자동차가 엔트리 SUV 캐스퍼의 영역을 소형 전기차로 확장했다.


현대자동차가 국내 최초의 경형 SUV인 캐스퍼를 출시하고 시장에 반향을 불러일으킨 지 어느덧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출시 당시 캐스퍼는 ‘경차’가 아닌 ‘엔트리 SUV’임을 강조했다. 이제 캐스퍼 일렉트릭을 마주하고 보니 더더욱 와닿는 말이 되었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길이가 230mm나 늘었지만 준수한 차체 비율을 자랑한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기존 캐스퍼보다 길이 230mm, 너비 15mm를 각각 늘이며 경차의 범주를 벗어났다. 특히 실내 공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휠베이스는 무려 180mm나 길어졌다. 선을 확 넘은 데서 오는 쾌감이 있다. 그런데 차체 옆모습은 “원래 캐스퍼가 이런 비율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방심하고 뒷좌석 문을 열었다가 널찍한 실내 공간에 놀라게 되는 반전이 있다. 



늘어난 휠베이스는 2열 공간 확대로 이어졌다


뒷좌석에 앉아 앞좌석 등받이와 무릎 사이에 주먹이 몇 개나 들어가는지 가늠해 보다 헛웃음이 나왔다. 사실 이렇게 작은 차에서 이런 여유가 가당하기나 한가? 한술 더 떠서 등받이 각도를 뒤로 잔뜩 기울여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보면, 뒷좌석 VIP를 위한 소형 리무진이 이 차의 정체성인가 싶다. 앞좌석 등받이를 앞으로 접어 테이블처럼 활용하거나 그 위로 다리를 올릴 수 있는 기능은 여전하니 말이다.


사실 뒷좌석 착좌 기준점이 뒤로 80mm 이동하지 않았다면 앉는 자세가 어색했을 것이다. 배터리를 차 바닥에 탑재해 실내 바닥이 꽤 높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넉넉한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하기 위해 차체를 연장한 결과 뒷좌석을 더 뒤로 옮길 수 있게 됐고, 덕분에 시트를 일부러 앞으로 밀지 않는다면 별다른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캐스퍼 일렉트릭의 최대 적재 용량은 280ℓ에 달한다


확장된 공간의 묘미는 뒷좌석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데 있다. 캐스퍼가 엔트리 SUV로 내세운 특장점을 이어받아 5:5로 분할된 뒷좌석을 앞뒤로 움직일 수 있기에 탑승 공간과 짐 싣는 공간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앞뒤로 덩치 큰 사람들이 탈 때는 뒷좌석을 최대한 뒤로 밀면 되고, 적재 공간을 많이 확보하고 싶다면 그 반대로 하면 된다.


100mm 길어진 캐스퍼 일렉트릭의 적재 공간으로 적재 용량은 내연기관 캐스퍼보다 47ℓ 늘어난 280ℓ에 달하고, 뒷좌석을 앞으로 밀면 최대 351ℓ까지 확보할 수 있다. 적재 공간 위를 가리는 러기지 스크린도 뒷좌석 위치나 등받이 각도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캐스퍼 일렉트릭 1열 공간은 사용성 측면에서 향상됐다


공간적인 여유로움이 추가된 것은 1열도 마찬가지. 내연기관 캐스퍼의 4단 자동변속기 레버는 센터페시아에 솟아 오른 형태로 배치됐지만, 캐스퍼 일렉트릭에서는 스티어링 휠 뒤로 자리를 옮긴 전자식 변속 칼럼으로 달라졌다. 덕분에 센터페시아 부피가 줄어 앞좌석 양쪽을 오가기가 더욱 수월해졌다.


기존 캐스퍼의 장기였던 1열 풀 폴딩 시트를 이어받았기에 앞좌석을 앞으로 접고 뒷좌석에서 휴식을 취하기, 동반석 쪽 앞뒤 시트를 폴딩해 긴 짐을 싣기, 네 개의 등받이를 모두 접어 차박 공간을 만들기 등이 모두 가능하다. 기존 캐스퍼의 커스터마이징 상품 중 하나인 에어매트의 길이가 180cm일 정도로 이미 성인이 눕기에 괜찮은 수준이었는데, 여기에 공간 여유가 더욱 늘어난 셈이다.



시트를 모두 앞으로 접는 1/2열 풀 폴딩 기능을 지원한다


특히 캐스퍼 일렉트릭은 차박에 대해서만큼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 기존 캐스퍼는 두 다리를 뻗고 누울 수는 있을지언정, 다른 내연기관 자동차들과 마찬가지로 실내 냉난방에 있어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캐스퍼 일렉트릭도 그저 그런 도심용 전기차에 머물고자 했다면, 이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차급 대비 넉넉한 배터리를 탑재한 덕분에 캠핑이나 레저 활동에 사용 가능한 필요 충분한 전력을 확보하게 됐다.



센터페시아 하단을 수납 공간 및 스마트폰 무선충전으로 꾸몄다


실제로 폭염특보 속에 감행한 이번 시승의 경우 한낮 땡볕의 주차장에 세운 캐스퍼 일렉트릭 안에서 두 시간을 보냈다. 차량 디스플레이에 표시된 외기 온도는 40°C 남짓. 유리창에 틴팅 필름 시공이 되지 않은 상태이고 햇빛 가리개도 없는 극한의 조건이었지만 풀 오토 에어컨을 작동해 적당한 실내 온도를 유지하면서 나름 호사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엔진 소음 및 진동, 열, 배기가스를 방출하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달리, 캐스퍼 일렉트릭은 약간의 에어컨 바람 소리가 실내에 전해지는 것 말고는 쾌적함을 유지했다. 참고로 두 시간 동안 배터리 전력은 6%, 주행 가능 거리는 25km 줄어드는 데 그쳤다. 



실내 V2L 기능으로 각종 전자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캐스퍼 일렉트릭은 차 안 또는 차 밖에서 전원을 사용할 수 있는 V2L 기능, 차량 전원(시동)을 켜지 않고도 에어컨 등의 편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유틸리티 모드를 제공한다. 주차 후 도어만 잘못 열어놔도 배터리가 방전될 수 있는 내연기관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고, 주행 가능 거리가 짧은 전기차에서는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없다. 



캐스퍼 일렉트릭의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는 315km이다(15인치 타이어 기준)


49kWh 배터리를 탑재한 캐스퍼 일렉트릭은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가 315km(*15인치 타이어 기준)에 달한다. 물론 제원상 수치만 ‘300km 이상’에 맞춘 것은 아니다. 시승차는 무거운 17인치 휠을 끼웠고, 전비에 불리한 자동차 전용도로 주행을 많이 했으며, 경제 운전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몰았음에도 클러스터 상에서는 배터리 80% 기준 300km 이상의 예상 주행 가능 거리를 제시했다. 참고로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120kW 급속충전기 기준 30분이다. 이에 따라 일주일에 한 번만 충전하고 평일 출퇴근을 모두 소화하거나, 한 번 충전해서 서울에서 광주까지 가거나, 근교에서의 캠핑 및 레저 활동 같은 중장거리용까지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10.25인치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사용성이 확대됐다


캐스퍼 일렉트릭의 가장 큰 장점은 그러한 여정들이 단순 이동에 그치지 않고 충분히 편안하고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도록 구성된 점이다. 운전이 익숙지 않은 이들이건, 운전 재미를 찾는 이들이건 모두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주행 품질 측면에서도 확실하게 차급을 뛰어넘는 만족감을 준다. 



10.25인치 클러스터는 한결 더 풍성한 주행 정보를 제공한다


운전석에 앉으면 기존 캐스퍼 대비 개선된 고급스러움과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계기판 가운데의 4.2인치 컬러 LCD가 이제 클러스터 전체를 구성하는 10.25인치로 커졌고, 차 크기에 비해 작다고 할 수 없었던 8인치 내비게이션 화면마저 10.25인치로 넓어졌다. 여기에 블랙 하이글로시 마감과 LED 조명들을 보강해 세련된 느낌까지 더했다. 크래시패드와 앞좌석 도어 포켓에 적용된 앰비언트 무드램프는 드라이브 모드에 따라 색이 바뀌거나 과속 주의 구간 안내를 하기도 하고, 다채로운 색상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스티어링 칼럼으로 자리를 옮긴 변속 레버(전자식 변속 칼럼)


차급을 뛰어넘는 첨단 고급 사양에 대해서 일일이 열거하기 곤란할 정도지만, 실내 분위기를 격상시킨 일등공신은 훨씬 큰 전기차 모델에서 가져온 스티어링 휠과 전자식 변속 칼럼, 그리고 방향지시등/와이퍼 레버이다. 운전자가 가장 빈번하게 조작하는 부분들이 상위 차급의 부품으로 업그레이드됐으니 보고 만질 때마다 흐뭇하다. 스티어링 휠에 충전 등 차량 상태를 표시하는 인터랙티브 픽셀 라이트는 첨단기술이 담긴 자동차임을 과시한다. 기존 캐스퍼의 디자인을 생각하면 픽셀 라이트가 생뚱맞을 뻔했으나, 캐스퍼 일렉트릭은 실내외에 픽셀 패턴이 더해졌기 때문에 조화롭게 보인다.



캐스퍼 일렉트릭의 운전석 주변 구성은 사용자를 고려한 세심한 디테일로 가득하다


틸트만 가능했던 스티어링 휠은 거리 조절 기능인 텔레스코픽까지 더해져 알맞은 운전 자세를 잡기가 더 수월해졌다. 패들 쉬프트를 이용해 회생제동 시스템의 강약을 조절하거나 스티어링 휠의 통합 주행모드 버튼을 눌러 스포츠 모드를 선택하는 등 적극적으로 운전 재미를 좇을 수 있다. 처음에는 다소 크게 느껴졌던 스티어링 휠이 어느새 손에 익고, 더 나아가 차급 이상인 주행 성능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게 된다.




차체가 길어지긴 했어도 여전히 경차 전용 주차 구역에 쏙 들어가는 크기인 만큼 좁은 길이나 뒤엉킨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재미가 참 좋다. 특히 전기차 특유의 순발력과 가속감이 더해지니 복잡한 도심에서는 고성능 차가 부럽지 않다. 캐스퍼 일렉트릭의 최고출력은 84.5kW(약 115마력)로, 아이오닉5 2WD의 절반이지만 즉각적이고 시원한 가속 성능을 보여준다.




작은 차가 이렇게 잘 나가면 되려 불안할 수 있는데, 캐스퍼 일렉트릭은 안정감 또한 뛰어나다. 차 바닥에 깔린 배터리로 인해 무게 중심이 낮고 휠베이스가 연장된 이점 덕분이다. 차체 폭이 15mm 늘어난 만큼 좌우 바퀴 중심 사이 거리인 윤거도 넓어졌다. 그래서 17인치 휠이 이 차에는 썩 잘 어울린다. 내연기관 캐스퍼 대비 300kg이나 무겁지만, 엔진 굉음이나 진동 없이 매끄럽게 속도를 붙여나가는 기세에서는 오히려 더 사뿐하고 가볍게만 느껴진다. 


여유로운 힘을 함부로 과시하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든다. 가속 페달 반응이 민감해 움찔움찔 반응하는 차는 출발할 때마다 운전자를 긴장하게 만드는데, 캐스퍼 일렉트릭은 적당히 느슨해서 부드러운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특성은 가다 서다가 반복되는 교통 정체에서 빛을 발한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비해 태생적으로 이런 환경에서 스트레스가 적은데, 캐스퍼 일렉트릭에는 기존 캐스퍼 대비 오토홀드와 완전 정차까지 지원하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스마트 회생 시스템까지 추가되어 오랜 시간을 주행해도 피로가 한결 덜하다.


참고로 스마트 회생 시스템이란 전방 교통 흐름, 운전자 감속 패턴 등을 바탕으로 회생제동량을 자동으로 조절해 효율성과 주행 편의를 향상하는 전기차 주행 특화 사양으로 감속이 필요할 때는 회생제동으로 에너지를 회수하여 주행 효율을 높인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이처럼 풍부한 주행 편의 사양 덕분에 내연기관 자동차 중에서는 어지간한 고급차와 견주어도 손색없을 것 같다.




높은 과속방지턱을 처음 넘을 때는 차체가 가볍게 튀거나 뒤쪽이 무겁게 떨어지면서 탑승자에게 큰 충격이 전달되진 않을지 살짝 긴장했는데, 차체가 위아래로 크게 움직일 뿐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평온을 되찾아 머쓱했다. 자잘한 요철을 통과하거나 도로 이음매를 넘을 때, 지하철 공사장 복공판 위를 지나거나 평탄한 자동차 전용도로를 일정한 속도로 달릴 때도 실제보다 훨씬 큰 차를 타는 듯한 착각이 들곤 했다.


사실 캐스퍼 일렉트릭에서 가장 의외인 것은 정숙성과 승차감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유리할 것 같지만 각종 소음과 진동을 가려주는 내연기관이 없는 만큼 노면 소음이나 풍절음과 같은 다른 소리와 떨림이 부각되기 쉽다. 특히 경차나 소형차는 이 부분이 더 취약하기 마련이다. 그만큼 캐스퍼 일렉트릭은 소음, 진동 저감 대책을 충실하게 마련했다.




내연기관 캐스퍼가 경차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처럼, 캐스퍼 일렉트릭은 전기차 대중화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가장 저렴한 전기차, 혹은 가장 작은 전기차가 시장에 추가됐다고 해서 잠시 주춤한 전기차 수요를 빠르게 확대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소형 전기차의 매력과 가치를 유감없이 담아낸 잘 만든 차라면 얘기가 다르다. 바로 캐스퍼 일렉트릭처럼 말이다. 



사진. 최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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