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뷰론 복원 프로젝트, 그 첫번째 이야기
최근 HMG 저널은 티뷰론을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30년 가까이 된 차의 안팎을 신차에 가까운 상태로 되돌리는 고난도의 과정이었죠. 청춘을 만끽하던 시절, 티뷰론을 통해 자동차를 즐기고 꿈을 키웠던 이의 염원이 담긴 프로젝트였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출고된 지 30년 가까운 세월을 겪은 티뷰론과 이 티뷰론의 복원에 나선 허장혁 씨입니다. 현재 독일계 자동화 설비 회사의 한국 지사 대표를 맡고 있는 허장혁 씨는 한때 티뷰론 대표 동호회인 TOG(Tiburon Owners Group)를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티뷰론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만큼, 이번 복원에 대한 의미도 남달랐을 텐데요. 허장혁 씨는 “지금에 와서 티뷰론을 복원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차원을 넘어 당시의 감정과 추억 그리고 지금의 저를 만든 과거의 순간을 눈앞에 다시 데려오는 엄청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듯 깊은 추억이 담긴 티뷰론은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에서 어떤 존재였을까요. 티뷰론 복원 프로젝트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 담긴 티뷰론의 의미와 가치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국내 경제의 초고속 성장과 맞물려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지난 1975년 대한민국 첫 고유 모델인 현대자동차 포니가 출시됐을 당시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20만 대 남짓이었지만, 오늘날은 약 2,500만 대에 이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약 424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해 글로벌 Top 5의 자리를 지켰죠. 아울러 최근 현대차는 누적 생산 1억 대를 넘겼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도로 위에서 각양각색의 차를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품은 세단과 SUV, 크로스오버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죠. 운전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마니아를 위한 고성능차나 수억 원을 호가하는 럭셔리 스포츠카도 적잖이 보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스포츠카 시장이 활발했던 것은 아닙니다. 발단은 1990년 등장한 현대차 스쿠프였습니다. ‘SLC(Sport-looking Car)’라는 개발 코드명에서 드러나듯 ‘스포티하게 보이는 차’로 만들어진 2도어 쿠페였죠. 당시 흔치 않았던 역동적인 외모 덕분에 젊은 층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1991년에는 현대차가 처음으로 독자 개발한 알파 엔진을 얹은 모델이 나왔고, 이후 현대차 최초로 터보차저를 장착한 모델도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1996년 4월, 마침내 현대차의 첫 독자 개발 스포츠 모델인 티뷰론이 등장하면서 국산 스포츠카 시장의 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티뷰론은 콘셉트카 HCD-1 및 HCD-2에서 영감을 받은 날렵한 디자인과 독자 개발한 베타 엔진 기반의 파워트레인, 그리고 아반떼(2세대) 플랫폼 기반의 섀시 등 오롯이 현대차의 기술력만으로 완성된 스포츠카였죠.
출시와 동시에 젊은 세대의 드림카로 떠오른 티뷰론은 도로 위 풍경을 바꿔 놓았습니다. 국내 모터스포츠와 자동차 튜닝 산업의 새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자동차 동호회 활동이 활발해지는 계기를 마련한 주역도 티뷰론이었고요. 다른 차종과 비교해 판매량이 눈에 띄게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티뷰론을 매개체로 인연을 만들고 자동차 문화를 즐겼던 오너들의 열정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습니다.
현대차 브랜드헤리티지팀 권규혁 책임매니저는 “디자인은 물론 엔진과 플랫폼까지 모두 독자 개발한 티뷰론이야말로 첫 국산 스포츠카였죠. 여러 해외 매체들은 현대차가 주목할 만한 쿠페를 세상에 내놨다고 소개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처럼 아반떼(J2) 플랫폼을 기반으로 성능을 높이고 개성을 가미한 티뷰론은 기술 독립의 의미 외에도 기본기와 실용성을 모두 갖춰 많은 사랑을 받았죠. 당시 미국 〈카앤드라이버(Car and Driver)〉나 영국 〈오토카(Autocar)〉와 같은 글로벌 자동차 매체들이 티뷰론을 주목한 것이 바로 이런 점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상에 출연한 이동희 칼럼니스트는 티뷰론의 등장 덕분에 국내 모터스포츠 산업이 활발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내 모터스포츠는 1980년대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데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죠. 1995년 용인에 에버랜드 스피드웨이가 들어서면서 온로드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고, 당시 스피드웨이를 주름잡던 경주차는 현대차 스쿠프 터보와 기아 콩코드였습니다. 일본차 기반의 콩코드는 일본의 튜닝 부품과 기술을 접목하기가 수월해 튜닝 자유도가 높았던 것으로 유명했죠.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티뷰론은 국내 모터스포츠의 판도를 뒤바꾼 모델로 주목받았습니다. 준중형 차체에 고출력의 2.0ℓ 베타 엔진을 장착해 우수한 동력 성능을 확보한 데다, 이 엔진은 주철 블록에 알루미늄 헤드를 조합해 내구성까지 상대적으로 뛰어났습니다. 덕분에 티뷰론은 단숨에 모터스포츠 대회 상위권으로 올라섰고, 티뷰론을 통해 모터스포츠에 참여하는 팀과 후원사가 늘면서 대중의 관심도 많이 늘어났다는 게 이동희 칼럼니스트의 설명입니다. 티뷰론 경주차를 보고 내외관을 바꾸거나 성능을 높이는 튜닝을 따라 하면서 국내 튜닝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죠.
티뷰론이 국내 모터스포츠 분야에 미친 영향력에 대해 당시 레이서로 활동했던 전 아주자동차대학 박정룡 교수는 “티뷰론이 등장하면서 국내 레이싱 대회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고, 압도적인 성능을 앞세운 티뷰론이 대세가 되면서 모든 경기가 원메이크 레이스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참고로 박정룡 교수는 대한민국 1세대 레이서로 초창기 국내 대회에서 수많은 우승을 기록했으며, 1988년에는 ‘죽음의 랠리’라고 불리는 파리-다카르 랠리에 한국인 최초로 참가한 바 있는 국내 모터스포츠의 산증인과 같은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티뷰론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 이야기는 현대차 N브랜드매니지먼트실 박준우 상무에게 직접 들어보는 게 빠르겠군요. “지난 2021년 아반떼 N 월드 프리미어 영상에서 차를 좋아하는 아이가 성장해서 티뷰론으로 처음 운전을 익히고, 레이스 트랙에서 운전을 즐기는 모습이 등장했습니다. 이야말로 N브랜드의 진짜 스토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박준우 상무의 말처럼 티뷰론에는 차와 운전을 좋아했던 이들이 점차 성장하고 꿈을 실현해 온 과정과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당시 티뷰론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 차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자동차 제조사, 부품 및 튜닝 업계, 모터스포츠 산업 등 자동차 관련 분야로 뻗어 나가 지금의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을 일구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주인공 허장혁 씨 또한 티뷰론과 함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서킷 주행에 푹 빠져 지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티뷰론으로 재미 삼아 서킷을 주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 활동하던 동호회원들과 국내 최초의 원메이크 레이스로 개최된 클릭 스피드 페스티벌에 참가한 것이죠. 2003년 현대차의 후원으로 처음 개최된 이 대회는 국내 모터스포츠 대중화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차를 좋아하는 많은 일반인들이 참가해 열정을 불살랐던 대표적인 아마추어 레이스였죠. 허장혁 씨는 그 시절의 열정을 되살려 티뷰론과 다시 함께 트랙을 달려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허장혁 씨의 바람처럼 티뷰론이 서킷 주행까지 가능하도록 복원되려면 어떤 작업이 필요할까요? 한때 현대차 사내 스타트업 ‘옛차’를 이끌며 올드카 복원, 진단 및 가치 평가, 거래 중개 등 올드카 플랫폼 사업을 추진한 경험이 있는 현대차 MLV프로젝트5팀 원명원 연구원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운동 성능까지 신차 상태로 복원하려면 차체는 물론, 파워트레인 및 배선과 같은 전장류까지 모두 교체하는 게 좋습니다.”
허장혁 씨의 바람은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추억 속의 시간을 꺼내서 티뷰론과 함께했던 그 당시의 젊음과 열정을 다시 느껴보는 것입니다. 그의 바람처럼 티뷰론은 성공적으로 복원될 수 있을까요? 다음 이야기에서는 티뷰론에 담긴 현대차 최초의 독자 개발 디자인 스토리를 비롯해 개발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글. 이세환
영상. HMG 저널
사진. 조혁수
자료협조. 자동차생활(https://www.instagram.com/carlife_archives/),
모터매거진(https://www.motorm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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