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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G 저널 May 19. 2017

작은 차를 타는 즐거움에 관하여

혹시, 경차 좋아하세요?

좋은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과, 때론 혼자서. 
경차와 함께 한국 방방곡곡을 휘젓고 다녔던 몇 년의 경험담을 공개합니다.



친구들은 못 미더웠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겨울이었어요. 셋이서 스키장에 가기로 했습니다. 친구 둘은 스키가 없었고 저는 있었어요. 그러니까 남자 셋이 한 차에 타고, 제 스키 장비와 부츠를 싣고, 각자의 가방도 실어야 했던 겁니다. 그렇게 강원도까지 가기로 했어요. 2박 3일 일정이었으니까 짐이 적지도 않았습니다. 한 친구는 꽤 큰 배낭을 가져왔고 다른 친구는 큼직한 가죽 보스턴 백을 가져왔습니다. 한 겨울이었으니까 갑자기 눈이 올지도 몰랐고, 기본적으로 도로는 얼어있을 게 뻔했어요. 가파른 언덕 몇 개를 넘어야 할 거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주파해야할지도 몰랐습니다. 위험하다면 위험할 수도 있는 여행길이었습니다. 적어도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어요. 제 차는 경차였거든요. 하지만 경차로 꽤 긴 여행을 떠나는 게 전혀 불편한 일이 아니라는 걸 전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제 차로 여행을 다닌게 한 두번도 아니었어요. 물론 여럿이 이동한 것도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한계령은 몇 번이나 넘어봤습니다. 겨울이나 여름이나, 히터나 에어컨을 켜고도 아주 신나게 달렸어요. 꽤 덩치가 큰 형들 둘을 태우고 스키 장비까지 싣고 여행을 다녀온 경험도 이미 있었습니다. 그때도 우리는 차 안에서 참 많이 웃었어요. 언덕에서 속도가 좀 느려지는 것처럼 느껴지면 “힘내! 힘내!!” 응원하기도 하고, 내리막에선 욕심껏 달리면서 신나기도 하면서요. 실제로 그렇게 힘이 달리는 순간도 아니었어요. 그저 신이 나서 했던 응원이었습니다. 차와 우리가 서로 마음을 도닥이면서 달리는 기분에 가까웠어요. 별 것도 아닌 일로 삼십대 중반, 사십대 초반의 다 큰 남자들이 그렇게 까지 웃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 여행의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했습니다.


가는 길엔 참 많이 쉬기도 했어요. 급할 것도 없었습니다. 마음이 동할 때 휴게소에 들렀다가 다시 마음이 동하면 달리길 반복했어요. 그렇게 조금 늦게 달리다 보니 지금까지의 자동차 여행은 그저 목적지 중심이었구나, 그런 것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정해놓고, 최대한 빨리 가서, 고기 굽고, 한 잔 하고 잠드는 흔한 첫날 밤 같은 거 있잖아요. 자동차는 이런 식으로 여행과 삶의 속도를 조율하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경차를 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편견과 싸워야 합니다. 하지만 그 편견을 이겨내는 순간, 경차만의 매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경차를 정말로 즐겁게 타려면 말예요, 아무 것과도 비교하면 안됩니다. 스스로 떳떳하면 그만이에요. 사실 성능은 충분합니다. 준비가 필요한 건 마음 뿐이죠.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도 불필요하고 다른 사람을 나에 견주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경차는 작은 차예요. 엔진도 작고 공간도 좁습니다. 그러니까 힘도 좀 달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한국은 택시를 타도 중형차 이상이니까, 경차는 소유하지 않으면 경험하기 힘든 차이기도 하죠. 특히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이러 저런 걱정이 앞설 수도 있어요. 우리는 이미 더 넓은 차를 경험해봤고, 엔진은 적어도 2,000cc 정도는 돼야할 것 같고, 성인 다섯 명이 편하게 탈 수 있는 정도의 공간은 있어야 기분 좋은 여행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왜 아니겠어요? 처음에는 저도 그랬어요. 불편할 것 같고, 거리에서 괜히 눈치 보일 것 같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말예요, 그게 다 걱정에 불과하다는 걸 오래 경험한 사람은 압니다. 게다가 경차야말로 한국의 오랜 편견에 실속으로 맞서고 있다는 것도 경차를 가진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는 귀한 경험일 거예요. 믿어도 좋습니다. 제가 경차만 5년 넘게 타고 있거든요.



모닝의 운전석에 앉아보면 꽤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경차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안락하고 넉넉한 공간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관심 갖는 경차, 기아 모닝의 경우를 한 번 볼까요? 문을 열고 앉는 순간 온갖 편견이 다 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실내는 생각보다 넓고, 왠만한 편의장비는 다 갖추고 있습니다. 안전장치는 물론, 초고장력 장판을 쓰는 비율도 전보다 훨씬 높아졌어요. 모닝의 경우에는 거의 두 배나 더 썼습니다. 작지만 단단하고 편하다는 뜻이에요. 운전을 해보면, 어쩌면 반성을 하게 될지도 몰라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도 않고 오해하기만 해서 미안하다고, 모닝에게 사과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겁니다. 제가 계속 장거리 여행 얘기만 했는데, 시내 운전이야말로 경차가 제격이라는 건 다들 알고 계시죠? 1,000cc가 채 안 되는 가솔린 엔진으로 꽤 당차게 달리거든요. 게다가 오르막이나 코너에서도 안정적이고 요철을 넘을 때의 감각도 꽤 성숙합니다. 도로나 골목에서도 얼마나 편한지, 주차할 때의 마음은 또 얼마나 가뿐한지. 마음 먹고 장점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이 할 수 있을 정도예요.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경차의 세계관 또한 팽창에 팽창을 거듭한 결과입니다. 한국에 경차가 처음 출시된 게 1991년이었죠? 지금은 2017년입니다. 그때 그 수준을 생각하면 정말 곤란합니다. 사실 요즘 경차한테는 ‘경차’라는 단어조차 좀 어색하게 느껴져요. 제가 처음 경차를 타고 아버지를 만나던 날, 한 번 운전해보고 싶다던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도 아직 생생합니다.


“야, 경차가 이렇다면 나도 하나 갖고 싶다.”


적어도 2,000cc, 크게는 3,000cc 승용차에 몸이 익어계시던 아버지께서도 경차의 품질을 예전 그 기준으로 생각하고 계셨던 거예요. 경차가 처음 등장하던 당시에는 경차를 둘러싼 시답잖은 농담도 많았죠. 지금은 그게 다 농담인 걸 알면서도, 경차를 갖는 일을 좀 어려워하는 경향은 남아있는 것 같아요. 작으니까 불안하다거나, 불편하다거나 하는 편견을 그대로 가진 채 말예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이미지는 강력한 거니까. 하지만 경험하는 순간 박살나고 만다는 것도 이미지의 한계입니다. 어떠세요? 한 번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좀 드세요? 그래서 우리 여행은 어땠을까요? 강원도 스키 여행도 즐겁게 다녀왔을까요? 



살다 보면 분명 큰 차가 필요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하지만 경차가 가지는 편의성은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종류의 것입니다. 세컨드 카로 경차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입니다


그때 같이 갔던 친구들과, 여름이 너무 깊어지기 전에는 바닷가에 가기로 했습니다. 친구 중 한 명이 서핑을 배우고 싶다면서 보드부터 샀다는데, 그걸 싣고 갈 수 있을까요? 물론 서핑보드를 싣고 둘이 가는 여행이 가능하다는 건 압니다. 정말이에요. 앞좌석을 뒤로 최대한 눕히고 트렁크를 연 다음 뒤에서부터 스르륵, 넣으면 됩니다. 짐은 트렁크에도 넣고 앞좌석과 뒷좌석의 남는 공간을 활용해도 되겠죠. 여러분, 요즘 경차가 그 정도를 해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셋은 좀 곤란하지 않을까 해서, 그렇다면 루프 캐리어를 달아볼까, 그런 생각도 하고 있답니다.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이 웃을까요? 우리가 바다로 향하는 길에도 산이 있고 언덕이 있고 휴게소가 있겠죠? 그걸 다 같이 쉬엄쉬엄, 느긋하게 떠나는 여행길이 너무 기다려집니다.


하지만 저도 그런 생각은 가끔 합니다. 언젠가 가족이 생기면 차를 한 대정도 더 갖게 되지 않을까. 그때는 SUV나 세단을 사야하지 않을까. 실은 그때 어떤 차를 사면 좋을지, 몇 대 생각해두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차를 사더라도 지금 갖고 있는 이 경차를 팔 것 같지는 않아요. 장거리 여행은 물론 시내에서도 이보다 편한 선택이 없으니까. 이 소중하고 당찬 한 대의 경차로부터, 다른 어떤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채, 오로지 자기만의 속도로 달리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도, 저는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요. 





글. 정우성

이 글을 쓴 정우성은 12년 차 기자다. 자동차, 고전음악과 인터뷰를 어쩔 수 없이 사랑하며 한국과 당신, 우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쓴다. <레이디 경향>, <지큐>를 거쳐 지금은 <에스콰이어>에서 일하고 있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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